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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를 덮으며

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by 해나책장


[오늘 뭐 먹지?]를 덮으며

기운을 차리고 의욕이 생기면 문을 열고 청소부터 한다.
이불을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다.
물건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는 것을 보면 내 미래도 질서 정연하고 단정하게 차곡차곡 행운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청소를 끝내면 요리를 한다. 냉장고엔 항상 신선한 재료들이 있다. 요리를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는 탓이다.
최대한 자연을 아프게 하지 않은 맑은 재료들로 음식을 차리다 보면 내 미래도 아프지 않고 맑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권여선 작가님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는 작가의 일상과 추억이 녹아있는 4계절과 간절기의 음식과 추억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글이 짧고 카테고리 구성이 깔끔하고 작가님의 위트 있는 글이 재미를 더한다. 음식에 대한 묘사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싶게 생생하고 맛깔스러워서 읽고 나면 마음도 배부르다.
재미있고 배가 부르면 행복해진다. 나중에 독립출판에 혹시나 관심이 생긴다면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
사소한 것 같지만 나에겐 매우 중요한(!) 요리 에세이 같은 책.

저자의 계절 음식은 이런 것이다.
봄에는 순대, 만두, 김밥, 부침개 꽃.
여름에는 물회와 땡초전, 가을에는 냄비국수와 가을무를 넣은 갈치조림, 겨울에는 감자탕, 꼬막 조림, 어묵, 그리고 환절기의 음식은 오징어튀김과 고등어, 간짜장이다. 읽다 보면 너무 진지하고 너무 웃긴다.

작가는 원고 마감을 앞두면 김밥을 싼다. 그런다고 글이 더 잘 써지는 건 아니지만 김밥을 준비해두면 글에만 집중할 수 있고 글 쓰다가 배고프고 우울해져 다 때려치우는 자포자기 사태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추억의 음식을 생각하면 냄비국수가 떠오르는 데 가족이 많아 음식은 나눠먹어야 하는 줄만 알아 늘 배고팠는데 냄비국수는 인당 하나씩 냄비를 채로 줘서 오로지 나 혼자 먹어도 되는 음식을 처음 경험하고 몹시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에너지는 밥심에서 나오는 거고 좋은 식재료로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먹은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사람을 헤치긴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여유와 인성은 어떤 면으론 풍요에서 나오니 잘 먹고 많이 베풀 일이다.
입맛 없고 의욕도 없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읽다 보면 기분도 가벼워지고 뭔가 먹고 싶어 진다.
배달 음식 말고 잘 차린 집밥 같은 거.



#해나의책장을덮으며
#오늘뭐먹지 #권여선 #한겨레출판




나는 밥 한 숟가락에 조린 무 한 점을 얹고 그 위에 갈치를 얹는다.
햅쌀밥과 가을무와 갈치 속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삼단 조각케이크를 나는 한입에 넣는다.
따로 먹는 것과 같이 먹는 건 전혀 다른 맛이다.
정말 이렇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밥과 무와 갈치가 어울려내는 이 끝없이 달고 달고 다디단 가을의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게다리를 넣어 구수한 단맛이 도는 무된장국을 한술 떠먹는다.
그러면 내 혀는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 물든다. (가을. 다디단 맛) p.168/ 169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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