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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유한 스웨터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요?

아무튼 스웨터를 덮으며

by 해나책장


스웨터를 짓는 일은 고유한 이야기를 그 속에 담아내는 것과 같았다.
스웨터를 뜬다는 건 실과 바늘, 스웨터를 뜨는 기술, 그리고 배경이 되어줄 벽난로와 음악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그 옷을 입게 될 '누군가'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옷을 지어주고 싶을까?
선하고 단단한 눈매를 가진 이,
세상으로부터 환대 받지 못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서사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본다.

어쩌면 김현 시인의 문장도 내가 마음을 열게 되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김현 시인의 [아무튼 스웨터]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잘 담아낸 책이었다.
시인의 문장이라 글이 깊고 아름다워 리디 셀렉트로 읽던 이 책을 몇 장 읽지 않고 덮었다.
종이 책으로 읽고 간직해야 할 책이었다.

그는 누구나 동경할만한 낭만적이고 세련된 삶을 사는 인물들이 아니라,
조금 쓸쓸하고 고단한 인물들, 소외되기 쉬운 인물들에게 시선을 두고 그 삶을 존중하며 아름답게 바라보고 글에 담아낸다.

김현 시인의 시 세계에서 내가 발견하던 숙연함이 이 산문집에서도 이어진 셈이다.
기쁨이 보이지 않고 슬픔이 소리 없이 잠식하고 있는 집에 두꺼운 벽을 뚫고 창문을 내어주던 여인,
그녀가 옷을 짓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이 창문과 풍경과 아름다운 것들은 그녀의 스웨터 속의 풍경이 된다.
그녀의 스웨터에는 고유한 그녀의 서사가 있었다.

내겐 이 이야기가 [아무튼 스웨터]가 어떤 책인지 잘 설명해주는 챕터 같았다.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포착하고 고유한 사람을 담아낸다.
'당신의 고유한 스웨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요?'라고 묻는 듯이.

내가 좋아하는 겨울,
겨울만큼 좋아하는 손편지,
그리고 서늘하고 청량한 계절감을 완성시키는 건 포근한 스웨터의 질감이다.

그리고 스웨터와 손편지는 닮아있다.
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쓸 수 있으니까.

이 책 역시 그렇다.
행과 행을 이어가는 길은 대체로 누군가를 향해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무언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지난 해 이맘때에 나는 뉴욕에 있었다.
언제나 가을과 겨울은 내게 날짜 변경선을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계절이었다.
올해는 가지 못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문턱을 이 책과 함께 건너왔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작은 바람에도 서늘함을 느낄 만큼 마음의 온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스웨터와 함께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참. 여담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울과 적절히 섞어 까슬함을 없앤 캐시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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