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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해나의 전시회 가는 길

by 해나책장

https://www.youtube.com/watch?v=91UHYTJk5R0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2년에 한 번씩 뉴욕에 방문했다.

네 번을 방문하는 동안 뉴욕의 4계절을 다 경험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동네의 불빛과 대문이었다.

석양이 지고 머물던 집으로 돌아올 때의 공기와 창문 너머의 노란 불빛들이 따스했다.

문 밖의 이야기와 집 안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 온도.

나는 뉴욕을 생각하면 뉴욕 어머님 집 하얀 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나뭇잎과 건너편 집의 창문이 떠올랐다.

2층 내 방의 나뭇잎에 비치는 햇빛을 보며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했고, 건너편 창가의 비친 노란 조명을 향해 굿나잇 읊조리며 일과를 마쳤던 그곳에서의 일상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 속에는 집, 창문,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 창문 너머의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구름이 많이 끼는 이타카의 느지막이 뜨는 햇빛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에 영감을 받으며 그려갔던 그녀의 작업들.

오래되어 아름다운 집 벽에는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림자가 아름다워서 햇볕의 선명함을 더 느끼게 된다.

그림자가 있어서 빛이 아름답다는 말이 진부하다 생각했는데, 정말 그림자가 있어서 빛이 아름답구나.

그걸 마주할 때의 감동은 전혀 진부하지 않았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인공과 자연의 요소가 만나는 장면 속에 드리운 빛을 탐구하는 현실주의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가 50여 년 간 그린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80여 점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까지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나누는 경계로 시선을 옮기던 그녀의 그림은 1990년 대 중반부터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장면들로 전환된다.

바깥에서 바라본 집에도, 집 안에서 바라본 바깥에도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빛이 그녀의 그림을 관통한다.

작업하는 내내 관객에게 빛을 선물하는 작가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녀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한 것은 2000년 대 친구의 집에서 본 창가의 장면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게 된다.

햇볕에 반짝이는 물결의 윤슬과 바람에 날리는 커튼, 방의 가구들을 담지 않아 넉넉한 여백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 평온하게 만든다.

그림 속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 작가의 시선을 바라보는 나만 남는다.


그녀가 50여 년의 시간 동안 한 결의 흐름으로 작업해 온 빛에 대한 탐구는 내게 너무 멋진 도전으로 다가왔다.

내가 닮고 싶은 멋진 사람들이 죄다 40대라 나는 20-30대 내내 40대를 동경하며 살았다. 나는 빨리 마흔이 되고 싶었다.

82세에 회고전을 가진 앨리스 달튼 브라운과 그녀의 왕성한 작업들을 보며 이제는 멋진 60세가 되자고 다짐해본다.


창문 너머 나뭇잎에 반사되는 햇빛을 볼 때나 오래된 창문과 노란 조명을 볼 때면 나는 뉴욕이 그립다.

사무치게. 연애할 때나 익숙했던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전시를 본 날, 나는 뉴욕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운 곳을 그리워만 하고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분들께 창문 너머 강가에 반짝이는 윤슬과 커튼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바람을 담은 앨리스 달튼 브라운 전시를 제안하고 싶다.

그림자가 있어 빛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그렇다는 걸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당신의 그림자를 그곳에서 위로받길.

전시는 11월 7일까지.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2021. 07. 24 - 11. 07

마이아트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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