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의 기록 출간 전시, 사랑과 존경을 담아, 윤형근

해나의 전시회 가는 길

by 해나책장

나는 말주변도, 글 주변도 없다.

마음을 준 것들을 이야기하긴 힘든데, 특히 너무 좋아하는 것들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력해진다.

윤형근 선생님의 작품을 이야기해야 할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윤형근 작가는 김환기 선생님의 사위이다.

김환기 선생님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책 속에 등장하는 '영숙아, 너는 색감과 붓끝 재주는 있다면 있는 편이겠지. 그러나 너는 열심히 그리지를 않아." 하던 그 영숙이 바로 윤형근 선생님의 아내.


윤형근 작가는 일제 강점기에 청주에서 태어나 서예와 사군자를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며 도시로 나온 그에겐 여러 번의 좌절이 지나간다.

미군정이 주도한 국대안 반대 시위(국립 서울 대학교 설립 안)에 참가했다가 제적.

6.25 전쟁 직후에는 대학 시절 시위 전력으로 인해 보도 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탈주하여 목숨을 건진다. 이후의 삶을 그는 덤이라고 생각하며 사셨다.


김환기 선생님의 도움으로 홍익대 서양학과에 편입하고 졸업 후 청주여고 교사가 된다.

그러나 4.19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가 부당한 발령을 받고 사직한다.

1956년에는 전쟁 중 피란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었다는 이유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복역하게 된다.

그 시절의 체제 속에서 계속해서 꺾이고 꺾이는 경험은 이후에도 내내 이어진다.

재벌가 자녀의 부정 입학을 따져 물은 게 화근이 되어 그는 유신체제 권력에 밉보이게 된다.

즐겨 쓰던 베레모가 레닌의 것과 닮았다는 명목으로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는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그의 측근인 조각가 최종태 선생님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데 그는 이 사건 이후 10년 유신시절 동안 윤형근의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듣고 그는 울분을 토한다.

'예술은 똥이여, 사람들이 픽픽 죽어가는 데 예술이 다 뭐 말라죽은 거여.'

그렇게 그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간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그의 후기 작품들은 훨씬 미니멀하고 간결해진다.


선생님의 일대기를 보면 느껴지듯이 그는 마음속에 품은 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성정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그 올곧음과 청렴함을 대할 때 추사 김정희의 작품들이 많이 생각나는데, 실제로 윤형근 선생님은 그의 화풍이 '추사 김정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매운 계절을 예술과 학문의 본질에 기대어 돌파해나간 인생도 닮았다.


올 가을 PKM 갤러리에서 [윤형근의 기록] 출간 전시가 열렸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대했을 때 나는 그 앞에서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는데, 보는 내내 울음을 밀어 넣으며 그림을 보았다.

궁금했다. 내가 그의 사연을 알아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아마 몰랐어도 그렇게 눈물이 났을 것 같다.

그의 작품 속에는 울분과 견딤, 내려놓음이 가득 담겨있다.

아주 단순하지만 누구나 그릴 수 없는 그림을 세상에 내놓으셨다.

너무 좋아서, 너무 슬퍼서, 너무 위로가 되어서 마음에 파도가 크게 일렁이는 기분.


이 전시를 나는 두 번 보러 갔다.

한 번은 혼자, 한 번은 친한 지인과.

두 번째는 윤형근의 찐팬으로서 도슨트 역할도 하고.ㅋ

무엇을 얻지 않아도 마음에 가득 담고 가는 힘, 위로를 얻고 돌아선다.

나의 척박한 계절에 떠올릴 큰 사람이 이렇게 내겐 있다.


이번에 출간된 [윤형근의 기록]을 통해 선생님의 직접적인 일기와 편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 김영숙 여사님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김환기, 남편이 윤형근이란 건 어떤 인생일까?

내가 짐작하는 두 분의 성정을 생각할 때, 그의 딸, 그의 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전과 다름없이 성실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살아갈 것 같다.


[윤형근의 기록]을 읽으며 선생님의 말버릇을 찾아냈다.


'전과 다름없이 성실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올해 뒤라스를 읽으며, 윤형근 선생님 전시회 소개를 준비하며 유난히 내가 심취하는 주제가 고독이라는 걸 알았다.

혼자서 돌파해가야 할 장벽들을 넘어가며 견뎌낸 시간들이 많아서일 거다.

그걸 너무 알 것 같아서 그 긴 시간, 이 사람 무슨 생각을 하며 견뎠을까 그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시절들, 척박한 시기가 인생엔 찾아오기 마련인데, 결국 지나간다.

그런데 그 시절을 돌파할 때 무엇을 남겼는지를 통해 증명되는 일들이 있다.

윤형근 선생님이 남긴 것은 올곧고 고결한 정신, 그리고 그걸 보고 치유받는 위로이다.

이렇게 주관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건 어렵다.


그냥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된다. 그것이 많은 말보다 더 무언가를 말해줄 것 같다.

2021년 가을은 내게 윤형근이었다.


_사랑과 존경을 담아, 윤형근



https://www.youtube.com/watch?v=gac30PXPm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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