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당신의 오늘 하루는 무탈했는가?
무언가 자꾸 안 풀리고 복잡한 일들이 생기는 어떤 날에는 마음이 움츠러들고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이야기에도 예민해지고 나의 일상이 후줄근하게 생각된다.
그러다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문득 잃게 된 어느 날, 그렇게 후줄근하게 여겨지던 하루하루 속에 있던 나의 당연한 일상들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문지안 작가의 [무탈한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 중 하나이다.
화자는 암 선고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일상을 찾는다.
그런 그녀에게 무탈한 일상은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j3566VfXc
무탈한 오늘 소개
이 책의 장점
작은 행복을 누리게 해 준 것들에 감사와 경외를 담아
해나의 한 줄 요약 : [무탈한 오늘]은 마음이 가난해질 때 차오르는 행복이다
책 속의 화자는 암 선고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다행히 재발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일상과 건강을 잃어봤기에 그녀는 안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한다.
가끔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들에 압도되어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이 책을 꺼내 읽곤 했다.
작가님의 시선도, 사진도, 글도 정말 좋다.
지난여름 같이 사는 고양이 테오가 악성 종양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즈음에도 나는 우연히 이 책을 읽고 있었다.
테오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질 때라 책 속 문장들이 구석구석 깊이 와닿았다.
이 책은 가구 공방 에프터문의 디렉터 문지안 작가님의 일상의 이야기이다.
6마리의 고양이, 8마리의 개, 그리고 아름답고 잔잔한 취향을 가진 한 쌍의 부부가 등장한다.
글도 너무 좋고 사진도 너무 좋은데 시선도 너무 좋아서 읽다 보면 '이건 좀 반칙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읽다가 모든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의 목차>
Prologue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의 행복
Part 1. 따뜻한 존재와의, 오늘
Part 2. 당신과 보낸 언젠가의, 오늘
Part 3, 싱긋 웃게 만드는 우리의, 오늘
Epilogue 그래서, 이제 녀석은 우리와 함께 산다
책에는 나와 나의 일상을 둘러싼 세상과의 연대가 아름답게 빛나는 글들로 가득하다.
늙어서 가족이 된 개 상근이를 보며,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말하고
4일 동안 먹지도 않고 여행 간 주인을 기다린 뭉이를 보며
"우리는 목이 빠지게 기다린단 말도 하고
기다리다 지친다는 말도 하지만
아무 말 않고
내색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는 존재도 있다." p.35 말한다.
겁이 많고, 귀가 어둡고, 다리를 절지만 주인을 위해 온 몸으로 큰 개와 대치하는
사랑스럽고 용맹한 나루가 화자의 일상에 등장한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일에 필요했던 것은
나에게는 작은 결심이었고
나루에게는 필생의 용기였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도 같은 무게가 아니었다.
약한 존재에게 찾아오는 결단의 순간들은 때로
생을 담보해야 할 만큼 절실하다.
배신, 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것임을 본다.
이 늙고 초라한 개가
자신의 평생으로 그것을 알게 해 주었다." p.41
당연하다는 듯이 머물러 있던 일상은 언젠가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할 일상이 될 거다.
가족과의 일상, 반려동물과의 일상,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들은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존재가 주는 정신적 평화로움은 결코 연약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에 탁한 것들이 스며있으면 소중한 일상이 가려지고 예민해진다.
'나만, 나는, 나에게는...'이라는 단어들을 앞세워 부정적인 생각들을 쏟아놓는다.
그 탁한 것들을 잘 덜어내고 건강한 일상의 에너지를 회복해야 한다.
나는 그럴 때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새벽에 깨서 물을 먹으려 일어나니
누운 모양 그대로 털이 뻗친 녀석이
눈에 잠을 그렁그렁 달고 따라온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 불면의 새벽을 지켜보는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
십수 년째 성실한 다정함.
얼른 자리에 누워 팔을 내어주면
다시 다가와 금세 쌔근쌔근 잠든다.
그 잠을 깨우지 않으려 꼼짝 않고 누워있다가
나도 스르르 잠이 든다.
이 작은 존재의 연약한 숨결에
외로움이 가시는 새벽.
다정함의 결과는 언제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는 종종 잊고 있었다." p.77
1. 책 속 존재들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작가의 성숙한 시선
책 속에는 6마리의 고양이와 8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화자는 이 존재들과의 에피소들을 하나씩 담아낸다.
작가의 성숙한 시선과 다정한 사색이 빛나는 책이라 책 속 존재들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읽다 보면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당신은 긴 인생 중 십여 년 그들을 사랑하지만
녀석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시간은 그들의 평생이다." p.81
2. 반려 동물을 성숙하게 사랑하고 보내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
책을 읽다 보면 반려 동물과 함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떠나보낼 때 잘 보내주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화자는 애프터문이라는 가구 공방을 운영한다.
죽은 뭉이를 위해 관을 짜서 죽음을 준비한다.
"우리는 늘 나무를 오래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집중했는데
나무가 바스러져 서서히 소멸할 때까지
걸릴 시간을 생각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가장 아픈 작업이었고
가장 미루고 싶은 작업이었고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가장 잘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p.87
나는 우리 집 고양이 테오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
열여섯 살의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마음 한 편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 존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성실하게 사랑해주는 거였다.
글 속의 뭉이라는 존재가 작지 않았고, 뭉이를 보내는 과정에서도 정성을 다한다.
반려동물에 대해서도 관으로 사용할 나무에 대해서도 성의와 존중을 다하는 화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3. 가난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겸손한 위로
마음의 가난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러움, 우울, 절망, 좌절감 등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가 몹시 작게 느껴지는 날'이다.
보통 무언가 시원하게 안 풀릴 때 이런 습한 생각들이 몰려온다.
이럴 때는 단순히 '내가 예민해서',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단순하게 정의하면 안 된다.
우리가 일이 굉장히 잘 풀리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거나 사랑받고 있다면 외부의 상황이나 남들의 평판에 그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는 마음이 위축되고 온갖 것들이 다 무례하게 느껴진다.
그게 당연한 마음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화자는 가난한 마음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어루만져 주며 가만히 위로한다.
"움츠러든 어깨로 길을 걷고 있을 이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후줄근한 오늘을 보냈을지언정
모든 날들이 그렇지는 않으리라 가만히 믿어본다." p.161
4. 소소하지만 빛나는 것들, 아름다운 표현
화자가 소중하다고 꺼내놓는 것들은 정말 일상에 있는 것들이다.
함께 사는 이와 반려 동물이 있어서 내가 혼잣말을 할 때 반응해주고, 그들이 주는 온기를 문득 느낄 때 날카로운 고독은 사라져 버리고, 커피 한 잔과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돈을 아껴야 하던 학생 시절에 못하던 일들을
어느덧 가볍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작은 진보를 축하한다.
지금 고민하는 일들도 뒤돌아보면 어느새 이루어진 꿈일 거라고 자신과 독자를 다독인다.
가구를 만들며 따뜻한 온도와 세월에 바래간 빛 속에 머무는 가까운 사람들의 다정한 공기를 떠올린다.
일상의 무탈함을 만드는 것들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의 안녕임을 알아서, 그러니 나의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반려 동물의 마음도, 화자가 만든 가구를 사용할 이들의 마음도 존중하고 보듬는다.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의 삶이 척박할 순 없을 거다.
아무리 척박한 일들이 위협해와도 그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살뜰히 보듬으며 살고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짧은 글로 구성된 에세이 책 중 나에게는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책이다.
"우리가 가구를 만드는 나무들 역시
누군가의 살 곳이었겠지.
사람의 필요가 어쩔 수 없는 훼손을 일으킨다면
그 훼손이 무의미하지 않게 함이 예의이기에,
오래 쓸 수 있는 가구를 만들려 한다.
아름다움과 견고함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늘 견고함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대부분의 장소 역시
나무가 서 있던 자리,
대지의 일부, 누군가의 터전이었음을 기억하려 한다.
사람이 살게 된 자리만큼
어떤 존재는 길로 몰려났음을,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p.205
화자는 가구를 만들고, 반려 동물을 키우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사물에 존중과 경외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공간에 관심이 많다.
내 작업실, 내가 살고 있는 집, 이런 곳을 어떻게 채우고 가꾸는지가 나의 일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탁한 것들을 비우고 자주 먼지를 닦아내고 채광과 통풍, 환기를 성실하게 하려고 한다.
미운 것들이나 오염된 것들이 제 소중한 공간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의 마음도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본다.
마음에 탁한 것들이 쌓이지 않게 털어내고, 비워내고 정갈하고 건강한 것들을 계속 채워주어야 한다.
문지안 작가의 [무탈한 오늘]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이 책 속에 채워진 것들이 내가 추구하는 단정하고 건강한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필요가 어쩔 수 없는 훼손을 일으킬 때, 그 훼손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오래 쓸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아침에 인사하고도 저녁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일상에 빛나는 기쁨을 안겨주는 소중한 동물들을 아껴준다.
지금 고단하고 힘들어서 마음이 가난해진 당신에게, 뒤돌아보면 지금의 고민들도 어느새 이루어질 꿈일 거라고 격려한다.
책을 읽으며 작은 행복을 누리게 해 준 것들에 대한 감사와 경외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은, 분명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할 거라고 기대해 본다.
여러분의 오늘은 무탈한가요?
부디 그런 날이길 바라봅니다.
해나의 한 줄 요약 :
[무탈한 오늘]은 마음이 가난해질 때 차오르는 등불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