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p.17
보뱅은 푸르름 안의 꽃의 웃음과 같은 웃음소리를 책 속에 담는다.
보뱅의 푸르른 조각들은 뭐 하나 소소한 것이 없다.
깊고 섬세하고 날카롭고 풍부한데 이 모든 조각들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 발견된 것이다.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것.
1.3배 속으로 영상을 소비하고, 긴 글을 읽지 않으려 하는 일과 속에선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
우리의 무언가가 훼손되어도,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
전쟁 같은 세상에서 웅덩이를 지날 때 찰나처럼 발견한 천사의 별 같은 것.
보뱅의 심미안은 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그런 진주 같은 순간들을 발견해낸다.
어두움을 경험하고 나와서 미소 짓고 있는 문장이 있다면 보뱅의 파랑이 그럴 거다.
보뱅은 집시와 길고양이, 고서점과 굴렌 굴드의 음악과 바흐의 연주 속에 이런 것들을 숨겨 두었다.
16개의 챕터마다 문이 열린다.
그곳에서 어김없이 보뱅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다시 평범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자신이 되었음을 인식한다.
그에게 빛나는 영감과 발견을 준 세계, 그리고 물리적인 공간 속의 자신의 세계. 어느 세계가 진실일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보뱅은 그 풍부한 세계를 살아가고, 매번 문을 만들고 나를 초대했다.
나의 세상이 그의 파랑으로 물든다.
이런 작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보뱅과의 여행을 마쳤다.
문을 닫고 나온다.
그리고 나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나의 파랑을 써야 한다.
그래서 당신만 괜찮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
새벽에 마주한 고요한 찻잔 속에서, 같이 사는 고양이의 콧수염 속에서, '나의 걸음은 오늘 조금 더 무거웠습니다'라고 썼던 일기 속에서, 사랑하는 화가가 죽기 직전 그린 <또 다른 빛을 향하여>라는 그림 앞에서 발견했던 나의 촘촘하고 풍부했던 파랑을.
보뱅을 알고 나서, 나는 조금 더 '빛'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찰나의 순간에 길어 올리는 보석 같은 세계를 신뢰하게 되었다.
내 슬픔과 전쟁 같은 고뇌 속에 이슬 같은 파랑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글 속에 담는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는 환희의 인간 서문에서 보뱅이 사용한 마지막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