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영화 후기
영국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 다이애나는 1981년 7월 스무 살의 나이에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근엄한 왕실과는 다른 자유분방한 매력으로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로열 패션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연인으로 이목을 끌었으나 그녀의 삶은 불행했다. 남편 찰스 왕세자에겐 결혼 전부터 깊은 연인이었던 커밀라 파커 볼스가 있었기 때문. 자선과 구호활동에 헌신하며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길 기다렸고, 다섯 번의 자살 시도에도 남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뭇 남성과의 연애 기사로 타블로이드 신문 연애 1면을 다루면서 3년의 별거 끝에 다이애나는 이혼한다.
"이 결혼 생활은 남편과 나 자신, 커밀라 세 사람의 결혼이었다.
그래서 좀 붐볐다고 할 수 있다."
다이애나는 이듬해 8월 파리에서 연인 도디 파예드와 차로 이동하던 중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결국 사고로 숨진다. 이 죽음으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던 사람들과 파파라치의 괴롭힘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슬픈 인생을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이다.
영화 스펜서는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가 불행한 결혼 생활과 왕실과의 불화 끝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3일간의 연휴를 담은 작품.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다음날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감독 파블로 라라인은 다이애나의 불안한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영화 내내 극적인 갈등과 전개가 없음에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바로크 음악의 포맷 위에 프리 재주 연주가 흘러가며 혼란스러운 다이애나의 심정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순간순간 불협화음이 고막에 꽂힌다.
"진짜 자신을 찾고자 했던 다이애나의 결정은 그가 나중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규정할 결정이었고, 그가 남긴 정직함과 인간성은 아직도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라라인 감독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재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네루다) 등의 실존 인물을 스크린에 담아 온 감독이다.
실존 인물을 가져왔을 뿐 영화 속의 다이애나의 감정은 픽션에 가깝다.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기구했던 다이애나의 삶의 이면을 짐작하게 한다.
이 영화 속에 한 권의 책이 등장하는데 <앤 불린>의 이야기이다.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으로 후궁과 결혼하려는 남편에 의해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로 처형당하는 인물이다. 다이애나는 그녀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만든 환상 속에 앤 불린이 등장한다. 앤 불린이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을 말을 다이애나에게 던진다. 다이애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앞두고 그녀가 자신을 구했다고 말한다.
다이애나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영화로 27개의 여우 주연상 트로피를 거뭐진다.
아름다운 외모와 섬세한 표정연기는 다이애나 그 자체인데, 그녀는 다이애나의 생전 영상과 인터뷰를 분석하며 영국식 발음을 익혔다고 한다.
폐쇄적인 영국 왕실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제외하면 굳게 단힌 곳이었다. 영화 속에서 다이애나의 남편 찰스 왕세자는 말한다.
"실제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 두 개의 모습이 필요하다."
영국 왕실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이 곳에서 심한 긴장감과 압력을 느끼며 거식증, 공황, 정신착란을 느끼며 자해를 했던 다이애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불행한 삶을 위로하는 헌사처럼 느껴졌다.
불행과 절망의 끝에서 자기다움을 선택하는 과정.
고통스럽게 외로운 시간을 통과한 다이애나의 인생을 애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