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왜 작가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릴까?
파니 뒤카세의 [곰들의 정원]을 읽으며 김정선 작가의 <열린 풍경> 전시가 생각났다.
꿈속에서 하늘을 날며 보았던 풍경과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뛰놀며 보았던 기억을 토대로 그린 그림들. 그의 정원 속에는 오리, 나무, 꽃과 작은 연못이 있었다.
전시를 볼 당시 나는 감당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 불안했는지 자주 악몽을 꿨다. 그날도 밤에 악몽을 꾸고 푸석한 피로감을 안고 전시를 보러 갔는데 그림을 보는 동안 잔잔하게 위로받으며 충전되었다.
'그래. 작은 쉼터에서 나만의 은신처를 발견하는 게 힐링이지. 힐링이 뭐 별건가.'
그 바쁜 시간들에 짬을 내어 전시장을 다니는 일이 내겐 일종의 은신처였다.
[곰들의 정원]에는 파피 할아버지와 페페 할아버지의 정원이 있다.
수국과 라일락이 가득한 이 정원은 색색의 기억을 홀짝이며 음미할 수 있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저녁이면 깨끗한 빨래와 젖은 풀냄새가 나는 곳.
할아버지들은 이곳에서 목욕과 체조를 하고 요리를 해 티타임을 가지고 작은 생물들을 돌본다.
파피 할아버지는 체조와 반신욕을 즐기고, 페페 할아버지는 수양버들 그늘에서 낮잠을 잔다.
라일락 나무 아래에 다가가면 페페 할아버지가 부르는 '봄을 기다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고,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정성 가득한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세상의 파도가 덮쳐오고, 분주한 업무로 일상이 망가질 때 어린 날의 기억을 토대로 조용히 자신의 안전지대를 만들지 않을까?
나는 이 책 속 뒷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파피 할아버지와 페페 할아버지의 작은 정원을 기억하는 작은 곰은 도시에 나가 직장을 다니게 된다.
빠르게 돌아가는 트렌드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계산이 분명한 동료들 속에서 소모되며 할 일을 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주말이면 작은 정원을 가꾼다.
수국과 라일락이 가득한 이 정원에서 체조를 하고 반신욕도 한다.
요거트 케이크를 굽고 티타임을 가지며 팽팽하게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잊는다.
그렇게 주말이 가고 작은 곰은 충전된 마음으로 다시 직장에 간다.
작은 곰의 마음은 따뜻하지만 갑옷처럼 단단하다.
왜 작가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릴까 생각해본다.
그 시절의 무해하고 제한 없는 상상력과 에너지, 그리고 활기는 마음의 밑바닥에 잘 저장해두었다가 가장 치열하고 소모되는 시기에 꺼내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풍경이 많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이 아름다운 책을 당신에게 건넨다.
지친 당신, 따뜻하고 단단하게 나아가길.
"색색의 추억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니며 춤을 춰.
어떤 날에는 너무 많은 기억이 밀려와.
진딧물도 별꽃도 없는 나의 정원은 사라지지 않고 늘 거기에 있어.
그리고 이제는 알아.
그곳을 떠나는 일도 더는 두렵지 않다는 걸."
_파니 뒤카세, <곰들의 정원> 중
https://brunch.co.kr/@hannahbookshelf/260
<참고>
- 도서: 곰들의 정원, 파니 뒤카세, 오후의 소묘, 2022 08 08
- 전시: 김정선, 열린 풍경, 표갤러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