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이수지 작가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책이 무대처럼 활용된다.
책을 펼치면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그리고 또 한 페이지를 넘기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세계가.
그렇게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 게 진짜 현실인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책 속에 파고들어 그 현실 속의 모험을 즐기는 그 순간을 위해 이 장면들이 필요했던 거니까.
책을 통해 경험하는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게 아닐까. 결론이 아닌 과정, 그 과정 자체에서 함께 경험하는 모험의 여정들.
나는 그래서 상상 이상의 모험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을 아낀다.
파니 뒤카세의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도 이런 모험심 가득한 사랑스러운 동화책이다.
이야기 속에는 개성이 뚜렷한 세 명의 할머니가 등장한다. 황당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무스텔라 할머니, 레몬 타르트를 굽는 쉐리코코, 125마리의 고양이를 위해 매일 홍차를 끓이는 할머니. 그리고 꼬마 마법사 장기, 단단히 자기 분량을 차지하는 멋진 개 몽타뉴가 등장한다.
꼬마 마법사를 실제로 보게 된 무스텔라 할머니가 자신의 안전지대를 넘어가며 만들어 가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흩어져있던 개성 강한 인물들이 함께 하나의 목적을 향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책장을 넘길수록 어디가 실제 현실인지 모호해지며 페이지마다 엉망진창 유쾌하게 모험은 계속된다.
이 모험의 이야기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개연성이니 핍진성이니 하며 비판하는 촌스러운 독자는 없겠지? 제발 그러지 말자.
그 개연성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한계를 만들어 왔는지 생각하면 참담하니까.
이 책이 내게 준 소중한 울림은 이 엉망진창과 유쾌한 전개에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미래를 계산하고 대비하기보다 그냥 어떤 모험을 또 만나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
'이번 페이지는 망했어. 하지만 다음 페이지는 몰라.' 하며 쿨하게 털고 일어나는 마음.
무스텔라 할머니가 자신의 안전지대를 넘어갔을 때 이 모험이 시작되었고, 그녀가 예측한 경계가 세계의 끝이 아니었다.
모험 속에서 각자의 무대가 주어졌고,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안전지대를 만들기 위해 길을 닦고 정비해가는 과정은 장기적으로 필요하다.
나 역시 미래의 내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도록 하루 열 시간씩 소처럼 일하고 있지 않은가. ㅠㅠ
그러나 인생은 경작보다는 모험에 방점을 두고 싶다. 그리고 어떤 황당한 시련이 와도 그 무대에서 내 역할을 해내는 것, 각자의 무대를 바라보며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준비하고 싶다.
인생이 책과 같다면 나는 각각의 페이지들을 무대로 쓰고 싶다.
불안해하기보다 기대하고 싶다.
다가올 막연한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에 빠진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넨다.
모험을 엉망진창 유쾌함으로 채워가는 일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용맹할 수 있는지 알게 해 줄 테니까.
https://brunch.co.kr/@hannahbookshelf/259
<참고>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파니뒤카세 지음, 신유진 옮김, 오후의 소묘, 2022. 08. 30
이수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룡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