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를 덮으며
여름 휴가지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세 권을 추천하고 싶다.
단연 으뜸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심재휘 시인의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이라는 시집,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오늘 소개할 책이다.
백수린 작가의 단편소설집 <여름의 빌라>
이 책을 읽으면 그라데이션처럼 미세하고 섬세하게 나의 경계가 확장되었길 소망하게 된다.
어느 시절의 풍경 속에서 단아한 성장을 꿈꾸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은 여덟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단편은 화자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어느 풍경을 담고 있다.
각 단편 속에는 계층 간의 경계를 넓혀가도록 제안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계층은 인종이 되기도 하고, 경제적 격차로 인한 사회의 구조적 사다리가 되기도 하고, 여성의 주체성이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은 직선적이거나 섣불리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백수린 작가는 가장 다정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이야기 속 풍경을 그려준다.
그게 너무나 정중하고 선하고 섬세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가 던진 화두와 질문들을 함께 생각했고, 인물들의 선택을 지켜봤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풍경과 계절, 온도의 변화를 활용하는 방법들에 매료되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세 개의 단편은 <여름의 빌라>, <고요한 사건>, 그리고 <흑설탕 캔디>.
이 중 <흑설탕 캔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할머니와 프랑스 할아버지의 러브 스토리.
이 소설을 통해 할머니의 시대적 상황과 현실이 준 좌절, 그러나 끝내 봉합되지 않은 주체성과 갈망을 손녀의 꿈과 상상을 통해 해방시켜준다. 그 과정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나는 당신이 안온한 혐오의 세계에 안주하고픈 유혹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 쪽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는 이 여름, 그런 당신의 분투에 나의 소설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_작가의 말'
작가는 안온한 혐오의 세계에서 안주하고픈 유혹에서 언제나 사랑 쪽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백수린 작가가 제안하는 섬세하고 다정한 경계의 확장에 많이 공감된다.
안전함과 평온함이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가 쟁취해낸 것들을 지키는 데서 오는 건 결코 아닐 거다.
<여름의 빌라>를 읽다 보면 안정과 사랑은 확장과 사랑에서 오는 게 아닐까 되묻게 된다.
섬세하고 다정하게, 절대적 환대를 통해서 말이다.
사회의 성숙, 나의 성장,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 환대는 그 확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어느 시절의 풍경 속에서 단아한 성장을 소망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가장 우아하고 정중하게 사랑을 제안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WAE01ghbK5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