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의 전시회 가는 길
즐겨보는 유튜브 <최광진의 미학방송>에서 독창성의 3요소를 '개성, 민족성, 시대성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시대성이 반영되어야 과거 작품과의 차별화가 생기고, 우리 삶의 양태가 바뀌는 만큼 시대성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족성이 반영될 때 다른 나라와의 차별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동시대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성, 시대성, 개성을 잘 반영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쌓아나갈 때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진 예술을 발현해 낸다'는 말이 무척 공감이 되었다.
예술을 감상할 때도 이 '개성, 민족성, 시대성'이라는 프레임을 토대로 바라볼 때 좀 더 다채로운 해석과 함께 작품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발견할 수 있는 다채롭고 풍성한 전시이다.
우리나라의 과거, 현재가 쌓인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전시. 2022년을 마무리하며 전시를 봤고, 2023년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소개하게 된 것도 내겐 의미가 있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 3천 개가 넘는 섬을 보유한 나라이다. 바다와 산, 섬을 빼고 이 나라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전시를 보고 나오며 나는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를 모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출강을 위해 매주 서울과 대전을 오가던 화가 유근택이 13미터 화폭 안에 담아낸 서울과 유성, 23만 장의 방대한 기록을 담아낸 김근원의 산, 40여 년간 수많은 낮과 밤을 평창에서 보내며 얻은 김영일의 사진 연작 <평창의 산>,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를 담아낸 김영갑의 사진과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강요배 작가님의 제주의 태풍. 그리고 사진과 그림과 영상을 통해 만난 걷는 도시 군산, 목포, 대구의 풍경, 그리고 이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 등 우리 삶을 둘러싼 산과 바다, 시간과 공기의 흐름과 삶의 변화를 풍성히 다룬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거대한 자연과 시간의 축적 앞에서 나의 작은 연민과 삶의 고통들은 참 티끌 같고 안개 같게 마련.
자연을 대면해야 만나는 그 삶의 진실이 좋아 산과 바다를 찾게 된다. 자연을 자주 보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새해가 되었다. 나의 속좁음과 잦았던 눈물, 해결하지 못한 기다림은 2022년에 두고 성큼 해를 넘어왔다.
산과 바다를 둘러싼 이 공간과 시간 안에 나는 무엇을 다시 쌓아가고 싶을까?
우선은 빈 공간을 들여다보고 싶다.
천천히 조금씩 시간의 흔적을 만들어 가고 싶다. 바삐 가도, 천천히 가도 나는 이 거대한 자연 앞에 미물일 뿐, 나의 결과물들도 그렇게 대단할 필요 없으니 편안하고 겸손하게, 그러나 무해하고 단호하게 작은 흔적들을 쌓아가고 싶다.
나는 이 전시가 해외에서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라, 내 조국의 산과 바다, 도시들을 생생하게 걷고 있는 것 같은 뭉클한 마음이 드니까.
고국을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줄 것 같아서. (그러나 바로 운송비, 보험료, 대여료 등등 엑셀로 먼저 그려지는 예술경영학도의 머릿속...ㅠㅠ)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 지나오고 나도, 지나온 길들이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길은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_김훈, <자전거 여행>
모든 길은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라고 김훈 선생님은 말했다.
맞다. 올해는 국내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다시 걷고, 새로 마주하며 잘 여물게 빚어 내 속의 고유한 '개성, 민족성, 시대성'을 구축해 가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9zTKfyagg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