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 제철소
"하루키는 나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경험을 안겨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작가의 저작과 함께 보내게 해준 것.
그리하여 나의 내면과 삶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
그것만으로도 노밸문학상을 받든 말든
하루키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가장 특별한 작가일 터다." p.166
이 책은 제철소 인스타그램에 출간한다고 뜨자마자 기다렸다가 주문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기도 하고
책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하기도 하고
아무튼 시리즈도 좋아하는데
아무튼 시리즈를 책 이야기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키워드로 한다니 일단 읽어야지.
읽으면서 이지수 작가님 글맛이 찰져서
재미를 가미한 글을 편애하는 나는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는 하루키를 읽기 위해 전공을 정하고
하루키를 읽으며 혼자였던 시간을 견디고
하루키의 문장들로 자신의 세계관과 우정과 관계에 대해 정리한다.
그리고 애정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그가 하루키를 비판할 때마저도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난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비판할 때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베이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 그냥 조용히 침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하루키에게 입문한 계기
그리고 번역가가 된 계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도 하루키는 이지수 번역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보면 나를 그 타향의 침대 위로 데려간 것도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들과 함께 나는 내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
나날이 멀어졌갔다.
나날이 낯설어져갔다. 나날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p.23
(그 문장이 나를 데려간 곳 | 노르웨이의 숲)
"몇십 년 동안 잊지 못한 첫사랑과 재회라도 한 양
내 가슴에서는 그리움과 반가움과 즐거움과 애틋함이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먹고살기 위해 마음에 쌓아둔 담이
손쓸 도리 없이 무너지며 거기서 흘러나온 것들이 내 발을 적셨다.
아, 너무 좋아. 내가 원한 건 바로 이거야.
나는 이 일을 해야 해." p.70
(반환점에서 기다리는 것은 | 풀사이드)
"한 작가의 작품들이 닻이 되어
내 인생의 소소한 기억이 세월에 떠내려가지 않고
단단히 붙들려 있다는 게 거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건 그 작가가 아주 오랫동안 부침 없는 작품 활동을 해야만,
또 독자인 내가 그 활동을 충실히 따라가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p.165
책을 읽으며 많이 생각한 단어는 "청춘"이었다.
내가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하게 되었을 때 내 옆에 있어주던 책들,
치열한 직업 전선에서 나를 붙들어 주던 문장들,
그리고 애정하는 작가가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을 내더라도
작가에 대한 신뢰로 여전히 응원하며 책을 아껴주던 날들도.
그리고 하루키가 가진 성실함, 의연함, 철저함과 한결같음은
나 역시 늘 닮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코드로는 아무튼 시리즈 중 Top3 안에 든다.
개인적으로 작가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는
기대에 못 미치면 읽다 말게 되는데
지수 번역가님 챕터는 전체적으로 지루한 챕터가 없었다.
글맛도 유쾌하고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들에서 가지게 되는 다채로운 감정들도
설득력 있고 공감이 되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가진 힘을 좋아한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자신있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함.
https://www.youtube.com/watch?v=6Q8blmnJBW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