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속 결혼

거리와 시간을 넘어, 우리 둘의 이야기

by Hannah

10월 말,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메시지를 주고받고, 잠들기 전 목소리를 나누는 습관을 놓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12월 초, 나는 한국에 들어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정식으로 결혼 허락을 받은 후 상견례를 마치고 돌아오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확산된 오미크론은 모든 계획을 흔들어 놓았다.


자가 격리에서 시작된 준비

10일간의 자가 격리 없이는 어떤 일정도 불가능했다. 결국 우리는 결혼식 일정을 지키기 위해 격리를 선택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정한 곳이 홍대 근처의 옥탑방 에어비앤비였다.

좁은 방이었지만, 두바이에서 온 나와 워싱턴에서 온 그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작은 공간에서 음식을 해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식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격리가 끝난 뒤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와, 예정된 12월 24일 결혼식을 무사히 올리는 것.


속전속결의 일정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격리가 끝나자마자 결혼식 전 사흘간 우리는 부모님과 친척들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드레스와 턱시도를 가봉했다. 결혼 준비로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정 속에서도 그는 작은 시간을 내어 정식 프러포즈를 준비했다. 사촌 형의 작업실을 빌린 그날 저녁, 문을 열자 촛불과 풍선으로 가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그는 사촌형의 반주에 맞춰 직접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서툴렀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나고 그가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이제 평생 함께하자.”
꽃다발을 건네는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늦게 건네진 고백은 오히려 더 깊게 마음에 새겨졌다.


크리스마스이브, 작은 결혼식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 당일,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양가 직계 가족만 모일 수 있었기에 하객은 25명 남짓. 규모는 작았지만, 그날의 의미는 그 어떤 화려한 결혼식보다도 컸다.

하얀 드레스 자락을 밟지 않으려 조심스레 걸어가는 순간, 나를 기다리던 그의 눈빛이 보였다. 마스크 너머로도 웃음을 감출 수 없던 가족들의 시선이 겹쳐졌다. 큰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그 소박한 자리에서 오히려 더 진한 사랑과 축복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을 마친 뒤, 우리는 예식을 했던 호텔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두 대륙을 오가며 견뎌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그 순간이, 그 모든 기다림의 답이었다.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시작이었다.


신혼의 시작, 그리고 또 다른 이별

결혼 후 우리는 일주일간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짧은 신혼여행을 보냈다. 겨울 바다, 눈 덮인 산길, 작은 카페까지—모든 순간이 선물 같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나는 다시 두바이로, 그는 워싱턴으로 돌아가야 했다. 결혼했음에도 또다시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이별 같은 신혼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다. 떨어져 있어도 이미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 믿음이 앞으로의 시간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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