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아직은 아니야. 15살 션, 버클리 진학을 미루다
합격 통지서들이 2024년 봄에 도착했다. 정말 기쁘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고등학교 9~10학년으로 분류될 나이였음에도, 미리 2년 치 대학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본인이 선택하는 그 어떤 대학으로도 바로 3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이 참 비범하고 경이로운 일로 느껴졌다. 나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자부심으로 벅차올랐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우려도 있었다.
내면적으로 엄마로서의 본능적인 마음이 강하게 솟구치며 나의 의사 결정 과정에 부인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나는 션이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도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운전면허조차 딸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학업적으로는 ‘천재’라 불릴지 모르지만 다른 많은 면에서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나이에 비해 키가 큰 덕에 다른 대학생들 사이에서 신체적으로는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15살 아이가 여러 상황들을 헤쳐 나가면서 겪어야 할 수많은 제약과 고려 사항들을 곱씹었다. 그는 여전히 집안일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잔소리가 필요했고, 어린 10대로서의 소박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 했다. 나의 개인적인 우려를 넘어, 당시 캠퍼스 분위기는 또 다른 걱정을 안겨 주었다. 광범위하고 격렬한 학생 시위대의 캠퍼스 점거 농성 등으로 한창 시끄러운 상황이 어린 션이 순조롭고 집중적으로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필 션이 합격한 그해의 캠퍼스 방문 경험은 전혀 긍정적이지 못했다.
나는 션의 대학 경험이 순수한 학문적 몰입과 개인적인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외부의 불필요한 방해나 아직 미성숙한 정신에 버거울 수 있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경험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겉으로는 인내심을 갖고 션과 그를 둘러싼 상황을 지켜보며 열린 질문을 던지며 션 스스로 진학에 대한 결론을 내리도록 도왔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션 본인의 선택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션의 관점은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중요했다. 버클리 및 다른 UC 계열 대학에 합격한 것은 션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주었고, 그의 능력과 학업에 쏟아부었던 모든 노력을 진정으로 확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캠퍼스를 둘러보고 환영 행사에 참여한 후 그는 ‘선택의 순간’이 임박했음을 인식했다. 드디어 그는 1년 더 입학을 연기하고 미라코스타에서 이제 막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수학과 컴퓨터 관련 과목들을 더 심층적으로 수강하고 싶다고 했고, 직접 학교에 가서 현장 강의를 들어 보고 싶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아직 어린 션이 학교를 나중에 가겠다고 결정한 것이 기뻤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여러 가지를 숙고해 보고, 시간을 다 써가며 고민하고, 스스로 검색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거쳐서 내린 결론이라는 것에 우리 가족은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심오한 수학 분야에서 지적인 성취로 가는 직접적인 길을 찾은 듯했고, ‘똑똑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그리하여 마침내 입학금을 결제하기 하루 전에야 결정이 내려졌다. 션은 대학 입학을 1년 미루기로 함과 동시에 이제부터 정말 본인이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어떤 길이 그의 지적인 호기심을 진정으로 불태우고 장기적인 유연성을 가장 크게 제공할 수 있을까? 바로 이때 나는 사려 깊은 조언을 건네며, 견고한 수학적 경로를 고려해 볼 것을 권했다. 결코 어떤 것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시원이의 성장기를 찬찬히 훑어 싸매다 보니, 어려운 수업을 만나 머리를 쥐어 싸매고 때론 울고 때론 벽에 머리를 박으며 한 문제 한 문제 수학 문제를 풀어 나가던 모습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새벽 세 시까지 울며 문제를 풀던 시원이는 아침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울을 보며 히죽히죽 웃곤 했다. 자칫 조울증처럼 보이는 이 증상(?)은 새벽까지 수 시간 동안 붙들고 있던 문제가 풀리지 않아 답답해하고 좌절하던 모습과 결국 그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고 난 후 스스로 자랑스러움과 후련함을 느끼는 모습이 결합한 의미 있는 부조화였기 때문이다.
다른 과목들은 확실히 달랐다. 열 장이 훌쩍 넘는 인류학 논문을 마무리하고 난 후에, 과제를 끝냈다는 후련함은 있었지만, 자신의 한계에 봉착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션은 타고난 작문 실력이 상당히 좋은 경우라 글로 과제를 제출하는 과목들은 최고점을 받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 간다는 느낌은 본인도, 주변인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지적인 성장과 미래의 선택을 위해 이젠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것에서 벗어나 난제를 받아 들고 또 수일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그 과정이 션에게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걸 끝까지 다 풀어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고통스러운 길인 줄을 알고도 그 길을 추천했고, 션 본인도 흥미를 느끼고 여름 학기를 시작했다.
이 새로운 방향을 받아들인 션은 다시 원서를 준비하며 심화된 수학 수업과 컴퓨터 공학 수업에 온전히 몰두했다. 예상대로 이 시기는 그에게 전례 없는 도전을 선사하며 진정한 시련의 장이 되었다. 그는 학습 도중 겪었던 고통과 스트레스로 눈물을 흘렸다고 생생하게 설명하며 ‘고통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엄마로서 사랑하는 내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에서 끈기를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진정 고무적이었다. 그는 결국 어려움을 이겨 내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이러한 깊은 회복 탄력성은 내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고, 자신이 이 길을 추구하기로 ‘선택’했다는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 있었다. 이렇듯 학생이 자신의 학업 결정에 전적으로 주인 의식을 가질 때, 그들은 외부의 압력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내면의 샘솟는 투지를 발휘하게 된다.
도전적이었던 이 여름 학기를 통해 이미 불붙기 시작한 수학에 대한 션의 열정은 가을 학기에 대면 수학 수업을 들으면서 더욱 활활 불타올랐다. 그는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두렵다고 표현하며, 내심 위축되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지만, 가을 학기에 현장 강의에서 만난 한 수학 교수님은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 교수님은 복잡한 수학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어렵게 느껴지던 이론들을 매력적인 퍼즐로 바꾸어 놓으셨다. 수업이 끝나면 션은 차에 앉자마자 수학 교수님의 이야기를 내내 조잘거렸다. 수와 방정식에 역사와 맥락을 더해, 그것들을 이해하기 쉽고, 거의 인간적인 감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마술 같은 능력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미적분학으로 이어지는 개념들과 씨름했는지, 혹은 특정한 수학 이론들이 현실 세계의 공학적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등을 설명해 주셨다고 했다. ‘무조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왜?’를 중요시하는 션에게 이 중요한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아직도 어린 이 아이는 단순히 ‘똑똑해 보이는 것’ 이상을 원하게 되었고, 그 교수님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에 성취에 대한 끌림이었던 것이 더 깊은 차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교수님의 영향력은 션의 결심을 굳건히 했고, 결국 션 스스로 응용수학을 선택해 4년제 대학에 가서도 그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션의 버클리 입학 연기 결정은 참으로 신중하게, 그리고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션 본인이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선택이었다.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진학을 선택하기보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생길 때까지 한 번 더 원서를 넣어 보는 결정은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매우 좋은 경험이 된다. 이렇게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도 이미 여러 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이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션이 이러한 선택의 갈림길을 헤쳐 나가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큰 힘을 얻었다. 대부분의 신입 대학생이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누릴 수 없는, 자신만의 선택권을 션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미라코스타에서의 이 추가적인 1년은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켰다. 첫째, 중요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기 전에 션이 사회적, 감정적으로 더욱 성숙해질 시간을 주었다. 둘째, 그가 자신의 진정한 열정이 담긴 분야에서 학문적 토대를 더욱 단단히 다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일 년 뒤, 훨씬 더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