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 앞집은 차 대여섯 대를 댈 수 있는 공터를 앞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각자의 차고 위치와 현관문이 대칭을 이룬다. 어느 날, 아이와 비행기를 가지고 나와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앞집 캐서린 아주머니가 외출하시기 위해 차고 문을 여셨다. 캐서린 아주머니는 매일 인사를 나누는 친한 이웃이었지만 그녀 집의 차고 문이 열리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아주머니의 남편인 앨런 아저씨의 차를 타고 늘 부부가 함께 다니셔서, 캐서린 아주머니에게 다른 차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차고 안에 있던 빨간 스포츠카는 깨끗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차고 안에 차가 있다... 시댁에 오가며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 차는 차고 안에 둔다! 시댁의 차고는 (내 눈에는) 쓰레기장이다. 한 번 들어갔다가 길을 잃을 뻔했다. 지난 이십 년 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물건들, 남편의 40년 전 만화책들과 유치(네, 그 영구치 전에 있던 '이'들이요), 앞뒤 바퀴가 모두 터진 녹슨 자전거 등등 모두 버려져야 할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호더스다.
저장강박자 부모 밑에서 자라나 반대로 살고 싶어 18세 되던 해에 바로 부모로부터 독립해 버린 남편의 누이에겐 결벽증이 있다. 다행히 비슷한 성향의 배우자를 만나 먼지 한 톨 없는 집에서 산다. 그런 시누가 즐거운 마음으로 친정을 찾을 때는, 내가 시부모님 댁에 가 있는 동안이다. 내가 없으면 보통 당일치기로 부모님을 뵙고 가는데, 우리가 영국에 있는 동안엔 주말에 휴가까지 붙여서 삼사 일씩 지내고 간다. 시누가 이유를 딱히 말해 준 적은 없지만, 왜 그런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일시적으로 집이 깨끗해서 그렇다. 시어머님이 나를 계속 손님처럼 대하셔서 주방에 들어가기 쉽지 않지만, 시누가 온다고 하면 주방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시댁에 놀러 갔는데 멀리 사는 시누네 부부가 우리를 보러 왔다. 이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며 주방 쪽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문 뒤에서 시누가 자기 남편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배는 고픈데 이 주방에서는 아무것도 먹기 싫어, 너무 더럽잖아." 그 뒤로 난 시누가 온다고 하면 청소를 해 둔다. 어머님이 부담스러워하시지만, '줄리(시누 이름)가 깨끗한 걸 좋아하잖아요'라고 둘러대며 열심히 쓸고 닦는다. 어머님도 깨끗한 주방을 좋아하시는 걸 보면 정돈 방법을 모르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시누가 떠나면 깨끗한 주방은 다시 안녕이지만.
시부모님에게 호더스의 피를 물려받은 남편과 그 피를 또 물려받은 아들. 그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걸 내려놓아야 했다.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는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내가 가진 강박증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모으는 건 여전히 용납이 안되지만, 그들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 남편의 서재(시부모님의 차고와 같은 목적, 용도, 상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청소한다. 매년 변해가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시누는 내가 변하는 대신 남편을 훈련? 시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안부를 물을 때, cope with 혹은 put up with를 써가며('어떻게 견디니'뉘앙스)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누가 코로나로 못 만난 사이 이렇게나 많이 변한 나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