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베리스는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다. 특히 워터스포츠(카약, 카누, 패들보딩, 스쿠버다이빙 등)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잔잔하고 깨끗한 호수가 있어서 해가 쨍한 날이면 계절에 상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을 향해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경치에 취해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다.
웨일스는 슬레이트가 나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슬레이트 박물관이 꽤 많다. 그중에서 시설이 가장 깔끔하고 볼 만한 전시가 많은 박물관은 Llanberis 슬레이트 뮤지엄이다. 입장은 무료이지만 주차비를 내야 하는데, 옵션은 없고 All day 5파운드를 내면 된다(볼거리가 많아 시간이 잘 가서 나중에는 주차비에 대한 화가 누그러짐). 박물관은 호숫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구경을 하고 나와 호숫가에 앉아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며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노라면 마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비싼 자릿값을 내고 먹는 근사한 식사처럼 느껴진다. 박물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예전 슬레이트 광산 광부들이 이용하던 병원 건물이 있는데 그곳을 구경하고 나오면 랜베리스 호수와 스노우도니아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놓치지 말고 언덕 위의 병원도 함께 구경해 보시길 추천한다.
Llanberis lake railway 표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기차에 올라타면 4km 정도 되는 호숫가 기차 여행이 시작된다. 증기기관차라 냄새가 좀 나지만 경치를 더 잘 감상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창문을 연다. 중간에 포토존(간이 플랏폼)에서 잠깐 멈춰주니 기차에서 내려 호수와 기차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루트라 어린아이들과 타기에도 부담이 없다. 표가 있으면 타임테이블에 잘 맞춰 Llanberis 타운 내 다른 역에서 내렸다 다시 탈 수 있다(hop on&off 가능). 나는 한국에서도 관광기차든 레일바이크든 자주 타는 편이었고 여행지에 기차가 있으면 꼭 타보는데, 이곳 Llanberis 기차는 경치가 단연 으뜸이었다. 기차 운행 중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던 걸 보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으리라.
웨일스 어딜 가나 작은 성들이 있는데 Llanberis에 있는 Dolbadarn 성은 보존이 잘 되어 있지는 않지만 성 꼭대기에 올라가 랜베리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입장료도 없으니 랜베리스를 관광하고 있다면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계곡을 통과해 입구를 찾아야 하지만 이정표만 잘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모든 오래된 성의 구조가 비슷하지만,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회전형 계단을 따라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야 해서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그 끝에 만나는 탁 트인 공간은 청명한 하늘과 맞닿은 듯 시원하고 아래로 보이는 호수는 하늘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파랗고 깨끗하다. 이 작은 성 안에서만 포토존이 수십 군데이니 인생샷을 의도하지 않고 찍어도 아름다운 사진이 수십 장 남는다.
이 지역에는 The Lonely Tree라는 유명한 나무가 있는데 호수 안에 덩그러니 혼자 자라고 있어서 흡사 물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나무 하나로만 수천 장의 이미지들이 재생산되고 있고, 이 지역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The lonely tree의 존재를 알고 있다. 바로 앞에는 이 나무의 이름을 딴 카페도 있다.
이 나무가 있는 호수는 수심이 얕고 깨끗해서 많은 사람들이 패들보드나 카약을 타러 오는 곳이다. 주차 공간이 좁지는않지만 날씨가 좋으면 너도나도 차에 인플레이터블 패들보드나 카약을 싣고 오기 때문에 오전 중에는 이곳에 도착해야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만약 패들보드를 사기 부담스럽다면(크기와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인용은 150파운드, 2인용은 200파운드 내로 살 수 있음), Lone Tree cafe와 같은 건물에 Snowdonia Watersports라는 패들보드 대여점이 있으니 하루 빌려 쓸 수 있다. 어린아이들에 서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분들까지 모두 함께 카약이나 패들보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경험이 많을수록 더 재밌게 탈 수 있는 스포츠이다 보니 특히 할아버지에게 패들보딩을 배우러 함께 온 손녀손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Llanberis에서는 스노우든 마운튼기차를 탈 수 있다. 기차를 타고 해발 1000미터 이상 올라가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만 운행한다.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각각 한 시간씩, 중간에 30분 스톱오버가 있으니 총 2시간 반정도 소요된다. Snowdoia 국립공원은 영국인들 버킷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고, 특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휴가를 내고 며칠씩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남편 역시 아들이 조금만 더 크면 스노우도니아의 모든 아름다운 산길을 다 걸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데, 관악산 연주암(관악산 안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살았지만)도 한 번 등반한 후 몸져누워 두 번은 엄두도 못 냈는데 스노우도니아를 언제 정복?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음 이야기 5. LLANGOLLEN_커넬을 따라 여행하기, 피크닉 중 만난 젖소들 그리고 또 Cas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