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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May 18. 2018

Travel Photo Essay_떠나야 보이는 것들

8. 골든위크의 후쿠오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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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 후쿠오카 여행이라고 말하는 내게,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후쿠오카는 무엇이 좋나요?”

에, 그러니까, 부산과 가까워서 좋습니다. 나는 정말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두 번은 쾌속선을, 한 번은 비행기를 이용했다. 두 방법 모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의 특가 상품도 꽤 많이 나온다. 이토록 가까운 도시임에도 후쿠오카는 당연히 한국이 아니며, 우리와 전혀 다른 말과 문화를 가진 타국의 영역에 속해있다. 세 번째로 이곳에 와서야 이것이 한국인으로서, 또 부산 시민으로서 내가 후쿠오카에 대해 느끼는 본질적인 매력임을 깨닫게 된다. 지근거리에 있는 낯선 땅. 전생에 만국을 유랑하는 존재이기라도 했던 것인지, 이국의 정취에는 유난히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게다가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어느 정도 쾌적한 여행을 보증한다. 거리는 깨끗하며, 소음은 적고, 차량들은 차분히 움직인다. 맛있는 먹거리들이 넘쳐나며, 어딜 가나 친절한 응대를 기대할 수 있다. 여행의 기회가 닿는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또 가게 됐다. 그리고 내가 후쿠오카에 도착한 그 날은 마침 일본의 황금연휴, 골든위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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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라는 골든위크의 막바지, 5월 4일의 후쿠오카는 유난히 더 후끈거렸다. 부산보다 기온도 높거니와,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텐진 나카스강 근처엔 축제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거리마다 늘어선 인파가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맞는 낯선 축제. 차량 통행이 통제되어 이동에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 불편이 싫지 않았다. 도로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 역시 그랬겠지. 약간의 기다림 끝에 저 멀리서부터 퍼레이드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퍼레이드를 하는 주체는 관중들을 향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리고 관중으로서의 나는 언제나 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뚱하게 보고만 있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환대에는 환대로. 이것은 몸에 배인 습관과도 같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그 정도의 태도는 장착해주어야 한다. 나와 동행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행동을 부끄러워하지만, 괜찮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남 눈치 보다가 보석 같은 순간들을 놓쳐버리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안 괜찮은’ 일이다. 아마도, 여행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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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스강 다리에서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다. 벤치에 막 자리를 잡았을 때쯤, 호객 행위를 벌이고 있는 어떤 아저씨에게 시선이 빼앗겼다. 옆에 있던 동생이 아저씨의 일본어를 알아듣고 그 내용을 알려 주었다. 다리 밑에 있는 작은 유람선을 1000엔에 탈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다리 밑에는 늘 배가 있었다. 앞선 두 번의 후쿠오카 방문 모두 나카스강에는 깜깜한 밤에만 왔고, 건물의 야경에만 온통 시선을 빼앗겼었다. 다시 말해 낮의 나카스강은 처음이었고, 그 익숙한 생경함에 매료되어 갑자기 배가 타보고 싶어졌다. 타지 않고 나를 기다리기로 한 동생을 두고 배에 탑승했다. 


탑승해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배에는 두 명의 가수가 동승한다. 마이크와 앰프, 보면대 뒤에 수줍고도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남녀 혼성 듀오. 


이 분들 덕분에 배가 운행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일본 대중가요를 실컷 들을 수 있었다. 흔들리는 배 위였음에도, 그들의 열창은 끝날 줄을 몰랐다. 처음엔 이 상황이 꽤나 당혹스러워 웃음이 날 뻔 했지만, 이들의 프로페셔널한 열정이 곧 나를 반성케 했다. 이 배의 코스는 놀랍게도 하카타 항까지 이어지는데, 파도로 인해 배가 급격하게 출렁일 때도 노래는 이어졌다. 누가 봐도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더욱 놀라웠던 건, 나카스강과 강 사이를 이어주는 많은 다리를 지날 때마다 다리 위의 사람들을 향해 정성껏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행인들은 또 그 인사에 화답을 해주었다. 방금 전 퍼레이드의 연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행인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가수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반짝였다. 그 표정이 풍경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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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물로, 아주 조금 내려왔을 뿐인데도, 익숙한 것 같았던 도시가 돌연 낯설게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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