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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론가 Mar 19. 2017

11. 여행의 참맛

여행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 수만 가지 감정과 만나다.

여행.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선덕선덕하게 해주고, 오늘의 거지 같은 회사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단어, 여행. 내게도 역시 그렇다. 여행은 가볼수록 아름다우며 행해질수록 용기가 생기니 여행이야 말로 정말 '세상이 인정한 합법적인 마약'이 아닐까 싶다. 주변의 사람들만 봐도 여행의 횟수가 어중간한 사람은 거의 없다. 좀 다녀본 사람들이 참 많이 돌아다니고, 안 다녀본 사람들은 정말 여행의 횟수가 극히 적다. 이래서 고기도 먹어본 자만이 안다는 말이 생긴 걸까.


나는야 전자.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다. 물론 요즘 점차 많아지고 있는 젊은 여행가들처럼 수많은 나라를 수없이 가본 정도는 절대 아니다. 20대 중반이 가지는 평균을 기준으로 '내'가 정한 것이니 너무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대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여행?! 이것은 정말 내게 먼 당신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바빠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기 힘들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닥친 학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갈 수 없었고 무엇보다 여행의 참맛을 모를 때기도 했다.



내 진정한 여행의 시작은 바로 2011년 12월 25일에 떠난 인도 여행!

이전에 가족끼리 함께한 일본 여행이 있었지만 패키지여행이기도 했고, 얼떨결에 떠난 첫 여행이라 그냥 가이드분을 쫓아다니기 바빠 기억에 남는 것도 많이 없다. 냄새나는 나라의 사슴공원과 오사카의 도톰보리시 정도.

인도는 동생이랑 나랑 단둘이, 처음으로, 어른 없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첫 여행지였다. (참,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 나이가 20살이었으니 나도 '어른'이긴 했네) 홍콩에서 경유하고 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홀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에 경유까지. 약간은 무리한 일정이었으나 과감히 도전했다가.... 그렇게 비행을 놓칠 뻔했다.  Boarding Time은 개나 주고, 그저 비행기 출국 시간에 맞춰 게이트 앞으로 가면 된다는 그 위험한 생각은 어쩌다 하게 되었는지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릭샤를 타고 인도 뱅갈로르를 달리다!



이렇게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추억 등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참 열심히 다녔다. 베트남, 캄보디아, 호주 2주(멜번~케언즈 캠핑카여행), 홍콩, 마카오, 유럽 1달(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까지. 인도와 일본까지 합한다면 11개국을 다녀왔으니 참 은근히 많이도 다녔다. 물론 아직도 여행에 목마르지만. 하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 많지만 인간의 모든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에 난 여행이 좋다. 설렘부터 기쁨, 짜증, 허탈까지- 수만 가지의 감정을 여행하는 동안 가질 수 있으며 내가 이 감정을 발산하고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직접적이고 빠르게 깨닫는 때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역시 설렘. 여행의 시작은 '예약'! 비행기가 됐든 기차가 됐든 버스가 됐든 숙소가 됐든 '예약'이 여행의 시작을 알리곤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렘 가득. "몇 시에 도착하니까 도착해서 점심부터 먹고...", "이왕 가는 거 이번에는 좋은 곳에서 자볼까? 여기 콜!"... 출발하는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두 번째는 짜증. 짧은 여행이면 여행 전에 느낄 수 없는 감정일 수 있겠다. 1달 간의 유럽여행을 가족여행으로 잡았던 나는 여행 가기 전, 약간의 짜증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피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하기에 편해야 하는 숙소와 교통편, 오차 없는 4명의 비행기표, 숙소 예약,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책으로 담아보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했던 가이드북 제작까지. 정말 여행 가기 전까지 그냥 차라리 여행을 안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인도 난디힐에서 만난 일출


세 번째는 행복. 설레고 짜증 나고 힘들어도 그래도 여행지에서 자연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해지는 게 인간의 마음. 여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이런 곳도 존재하는구나를 매번 느끼게 해준다.


네 번째 허탈감.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굳이 여행 책이 없어도 여행지 곳곳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여행 가기 전에 맛집, 예쁜 카페, 사진 찍기 좋은 곳까지 항상 찾아보고 가곤 하는데 실패할 때가 참 많다. '인터넷은 이래서 믿을 수가 없어'라고 하지만 또 막상 여행 계획 세울 때면 막막한 마음에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게 인터넷.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감정은 '허탈감'


다섯 번째 당황스러움. 내가 예약한 게 확실한데 내 이름이 예약자 명단에 없다고 말하는 직원과 마주할 때, 인쇄해 온 티켓이 대체 어딨는지 찾을 수가 없을 때, 버스에 내려 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을 때 등. 여행을 하면서 당황스러움이라는 감정과 만나지 않았다면 이것은 여행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 여행에 돌아오면 순탄했던 순간들보다 당황스러웠던 순간, 아찔했던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고 두고두고 말할 추억거리가 되는 것은 언제나 불변의 법칙이었다.


터키에서의 일몰


여섯 번째 아쉬움. 3일을 여행하든 5일을 여행하든 언제나 돌아오는 날은 항상 그렇게 아쉽다. 아직 보지 못한 곳들만 생각나고, 다음에 또 언제 같은 곳을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끊임없이 마음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쉬움. 그래도 이 아쉬움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주는 것 같다. 항상 그다음을 기대하고 만들어주고, 그 마음이 또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게 해주는 것일 테니까.



여행은 항상 옳다, 내가 오늘은 어떤 감정과 마주했었는지도 놓친 채 살아가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쉼표 같은 존재가 되어주니 말이다.


이번에 가는 여행에는 내가 어떤 감정과 만나 여행을 이어가는지 짧게 짧게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이렇게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홀로 코웃음을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힘들겠지만
알이즈웰(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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