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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론가 Apr 20. 2017

21. 거짓말

이 글은 '하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면서 '거짓말'에 대한 생각이 세 번 정도 바뀌었던 것 같다.


거짓말.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거짓말은 하지마'였다. 그 어떤 잘못보다 가장 많이 혼났던 것도 거짓말을 했을 때였고.


거짓말.

그렇게 어렸을 때는 거짓말은 무조건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가 조금 더 크고 나면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랄까.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이 아닌 다른 이를 향한 내 마음이 만든 '착한 거짓말'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거짓말.

그리고 이제는 우리는 안다.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기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크고 작은 정도일 뿐,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아주 나쁜 거짓말인지 아닌지 정도의 차이일뿐.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기는 정말 거의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가장 가깝고 가벼운 거짓말로, 오늘 만나자는 친구의 제안에 거절이라는 미안함을 피하기 위해 '오늘 약속이 있다' 혹은 '몸이 좀 안좋다'는 뻔한 거짓말부터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꼭 해봤다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부모님을 속이는 거짓말까지.


어린 순수한 아이들에게는 물론 '거짓말은 하면 안된다'는 아주 정답을 가르쳐야 맞겠지만 꽤나 많이 큰 어른들에게는 그렇게 말한다고 받아들일까. 나같아도 콧방귀를 끼고 말 것 같은데. '거짓말' 솔직히 피할 수도 없고, 때로는 정말 필요하다. 물론 다른 이를 위한 하얀 거짓말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거짓말일지라도.



그래서 생각해봤다. 어디까지의 거짓말을 우리는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을까.

 (물론 여기서 거짓말은 '사기'는 배제한다. '사기'는 그냥 거짓말이 아니라 믿음을 악용한 아주 나쁜 범죄다.)


내가 생각해본 허용 범위는 이렇다.


'나중에 알았을 때 기분은 나쁘지만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는 그 어딘가'

'자신을 향한 상대의 믿음에 배신감을 주지 않는 어딘가'


내가 만나자고 한 날, 친구가 피곤하다고 약속을 취소했는데 그것을 나중에 안다고 해서 믿음에 배신감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리고 기분은 나쁠지 몰라도 솔직히 나도 그런 적 있어 하면서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가령 약속 30분 전에 이런 식의 거짓 약속 취소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친구들이랑 논다고 하고, 남자친구와의 여행을 떠난다던가하는 거짓말.

10대라면, 20대라면, 30대라면 할 수 있는 이런 식의 거짓말은 우리에게 때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공감대를 일으키니 '추억'이 되기도 하다. 거짓말과 남자친구와의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긴 하다. 하하.


이렇게나 다양한 거짓말들 중에 하얀 거짓말만 괜찮다는 말은 이 굴곡진 인생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짓말은 이렇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짓말은 어떤가.



인생사 모든 게 다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밝힌 '거짓말' 이야기도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일반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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