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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7. 2015

야생 고양이#8  <네팔> 작은 동네 이야기

아시아 표류기 :: 배낭여행

가난한 나라

12인승 하얀 봉고는 카트만두 Kathmandu 를 중심으로 외곽지역까지 이어지는 중심 역할을 하는 버스이다. 지역마다 버스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작은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자주 있는 이 봉고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사람이 꽉꽉 들어차면 차는 출발한다. 정류소는 임의적으로 정해져 있어 현지인이 아니면 어느 마을인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후두둑 내리는 빗방울에 차 유리창이 깨진다. 차가 얼마나 오래 되었으면 그 지경이 난단 말인가. 사람들은 놀라지만 차는 멈추지 않는다. 임시방편 비닐로 그곳을 대충 막고 다친 사람이 없는 지 서로 살피지만, 운전자는 말만 할 뿐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오랫동안 몰아온 중고차를 수입해서 쓰는 사정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음이 울퉁불퉁하다. 네팔은 좋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이다. 그런데 정말 가난한 나라다. 세련된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들 이적나라 하게 드러나 있다. 수로는 산에서 내려오고 쌀은 집 앞 논에서 찾아온다. 쓰레기는 이 근처 땅에 묻히거나 태워질 것이다. 그저 쓰레기통에버리면 되고 수도 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대형 마트에서 사 왔던 잘 포장된 식료품들의 날 것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그 모든 판타지 같던 세련됨으로 가려진 편리의 진실은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 있다. 물이 있는 곳이 빨래터, 그 모든 대지가 쓰레기통, 혼란스러운 정부의 나라이다. 예쁜 개는 그대로 예쁠 수 없다. 얼굴이 예쁘다고 바라보면 다리 하나가 없다. 그렇게 누구나 보여지도록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드러난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아프고 불편하다.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소독된 세계는 살균되어 아름다워 보이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들만을 공유한다. 그래서 상처나 슬픔은 자제되고 보이지 않아야 한다. 물론 가난이 슬픔을 준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예쁘게 포장된 세계에 살다 이곳에 사람들의 이 적나라한 살아가기의 족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느낀다. 그것은 불편함이고 또한 세련된 세계가 감추고 있는 상처이고, 무게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구걸은 하지 않는다. 모두 큰 상처 하나, 큰 짐 하나 동여매고 비탈길을 오른다. 나의 이런 시선조차 부끄럽게, 그들은 묵묵하게 살아간다.



호스텔

나와 수업을 같이 하고 있는 12명의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지내고 있는 기독교 관련 시설에  초대받는다. 90%에 가까운 숫자가 힌두교인 네팔에서 기독교 활동을 하는 네팔 목사 부부가 운영하는 시설인데, 그곳은 여자아이 6명 남자 아이 8명 정도를 거두고 있다. 그들은 다른 서방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생활을 이어간다. 아이들은 고아인 경우, 아픈 경우, 혹은 부모가 사정이 여의치 못해 카트만두로 그저 보내진 경우 등이다. 자신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귀의해 그곳을 통해 학교를 다니고 먹고 지낼 수 있다. 그곳 아이들은 서로 돕고사는 데 익숙하다. 언니나 오빠는 아래 동생들을 챙기고 밥을 만들고 허드렛일을 돕는다. 또 축구를 보고 네팔을 응원하면 인도를 기분 좋게 2:1로 이긴다. 짜이티를 내어주고 기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빨래하는 마니샤도 보고 뒹굴 누워있는 프레티마, 귀걸이를 건네주는 디파를 본다. 아이들 이모모(만두와 비슷한 것)를 대접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들의 낭만이 흐른다. 깜빡하고 모자를 두고 떠나 갔더니 어느새 뛰어와 건네준다. 좋은 사람들, 네팔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각자 작은 꿈을 가슴에 안고 산다. 아이들은 그곳을 호스텔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곳에 자주 방문했다.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그래 도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저런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하면서 마을 주민이 된 듯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일상과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같이 꿈꿔주기를 원한다.  단지 그뿐이다.


바랏 Bharat: 자본주의 아래 인간관계

랄리뿌르 Lalipur 타이바 Thaiba 동네 산책을 하던 중 어떤 아주머니가 그곳이 위험하다며 돌아가라고 권유하던 차, 그녀의 아들이 영어를 할 줄 알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집은 논밭을 지나 시냇가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중심가에서도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 우린 친구가 되었는데 바랏은 20살 의대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순박한 그는 축구하는 걸 좋아하고 모든 생활을 자신이 공부하는 의학/과학과 연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넙스, 뇌, 세포, 신경, 여러 가지 이야기를 수려한 영어로 풀어낸다. 갓 스무 살이 된 바랏은 세계에 대해서 배우긴 했지만 그곳이 실질적으로 어떤 곳인지 모른다. 나는 그의 첫 외국인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나를 손님처럼 반갑게 맞이 해 주었고  차를 대접해주었고 가끔 밥도 주었다. 나는 네팔의 실상에 관해 궁금해 질문을 많이 했고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두기도 했다. 바랏은 믿을 만한 의학도생이다. 설명도 많이 하고 질문도 많이 한다.


어느 날 집에 쌓인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려는데, 분리수거를 해둔 물건들을 어디다 버려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바랏에게 물어 봤는데 타이바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말한다. 플라스틱이나 종이 박스를 모아서 팔기도 하는 세상인데, 왜 아무것도 없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참을 쓰레기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해 그대로 돌아온다. 심지어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은 청정지역에 버려야 더 잘 썩는다는 그의 말은 충격적이다. 동네  이곳저곳에 쓰레기가 많고 플라스틱에 대한 교육이 잘 되지 않아 그저 태우면 없어지는 것으로 쓰레기를 인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그저 불태 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다 괜찮은 듯이.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리는 경제 이야기를 한다. 내 여행, 방문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질문이 시작된 탓이다. 그리고 세계의 임금 수준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런 세상 물정에 대해  알지 못했던 바랏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충격을 받는다. 네팔에는 아르바이트라는 것은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고, 의사를 하고 교장선생님을 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이 월 50만 원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 대화를 기점으로 우리의 관계는 변하게 된다. 길을 가다 더워서 무언가를  사 먹게 되면 그는 당연히 얻어먹는 쪽이 되었고, 나와의 대화는 모두 그런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로 바뀐다. 또한 자기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나에 대한 경계심이나 거리감으로 드러난다. 슬프게도 나는 대한민국의 안 좋은 현실에 관해서,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사회, 과도한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높은 자살률을 들먹이며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장 단점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자국에 대한 비관적 시선과 불편함을 해소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신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결론을 다시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만나기를 피했다. 이런 현실적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친구가 더 이상 친구일 수 없게 되는 이유가 나라의 경제적 이유라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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