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칸나 Nov 07. 2015

야생 고양이 #9 <네팔> 몬순 멜로디

아시아 표류기 :: 배낭여행

일상: 몬순 멜로디 Monsoon melody

비가 오고 온 세상이 촉촉해지는 밤이다. 그리고 아침이 된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새 아침을 맞이한다. 비가 내리고 아이는 빗물을 담아보려 손을 뻗는다. 세상의 온갖 것들 것 신기하다는 듯한 그 두 눈을 빗방울에 올려둔다.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것이다.

이 동네는 카트만두에서도 떨어져서 도시 같지 않은 그러나 조금 나가면 도심이 있는 동네이다. 무엇보다 외국인이 거의 없어 현지 네팔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동네를 산책하는 일상이 평화롭다. 색색으로 예쁘게 페인트칠 되어있는 네팔의 집들은 얼기 설기 바람이  이곳 저곳 통과하는 미완성 건물이 많다. 세련되고 완전한 집이 별로 없지만 그래서 더 서툰 인생과 완성할 수 없는 불완전함과 닮아있다. 효율성이나 과학과는 조금 거리가 먼 풍경들이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몬순 : 어원적으로는 아라비아어인 ‘mausim(계절의 의미)’에서 비롯되었는데, 아라비아 해에서 약 6개월을 교대로 부는 남서풍과 북동풍을 가리킨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의 몬순은 미작에 필요한 우계(우기: rainy season)를 주로 가리키고 있다.


너는 왜 종교가 없어? 이곳에는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꽤나 많다. 사람들은 또 각자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가슴속에 아픔 하나, 불 하나쯤 가지고 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할머니의 아침 차 시간을 기다린다. 블랙 티에 도넛 두 개, 시장이 반찬이다. 오늘도 부연 하늘로 하루가 채워진다. 이제 일주일도 안 남은 이곳 생활. 어떻게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또 전기가 안 들어온다. 오늘은 몇 시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개미들이 커튼을 지나다닌다. 옥수수를 춤추게 하는 빗방울이 좋다 하던 시인이, 지금 내가 보는 장면을 사랑할 것 같다.


크리슈나가 내어준 내 방. 초록 공간 안에 있다. 모기향을 슬쩍 켜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가야금, 해금 음악을 듣는다. 지나간 사람들이 떠오른다. 콩과 감자 반찬이 아직 질리지 않았다. 이런 식사와 일상이 좋다. 누군가 오고 가고 하지 않는 안착된 어떤 날들이 안정감을 준다. 오늘 새로 만난 친구를 일주일 뒤에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아마도 나에 대한 호기심들이 줄어들겠지만, 오랜만에 일상이 형성된다. 옆 마을에 생긴 어린 친구들, 그리고 나를 좀 어색하게 바라보는 네팔 학생들, 그리고 익숙한 이 방, 여전히 불투명한 모든 것들이지만 애정을 둘 만 하다.


언제쯤에나 산 너머 히말라야를 보려나

몬순이 끊임없다.

물동이 이는 빨간 사리 우산을 씌워주고

단녀밧, 단녀밧.

*(단녀밧: 감사합니다)


아침밥을 먹는다. 무말랭이를 우적우적 씹는다. 위생이야 어떠하든 간에  살아 남고자 열심히 먹는다. 두 시간 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또 하늘이 맑다. 대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침 햇살 아래에서 발로 밟아대며 한 빨래는 즐겁다. 시내가 더러워지는 것에  한몫을 더하는 것을 눈으로 본다. 바로 옆이 논밭인 그곳에서 빨래를 한다.



아윱 Ayup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한다고 다녔지만 그래도 그곳을 전부 알기는 쉽지 않다. 아윱은 8학년이지만 동급생 아이들보다 2살이 많다. 삐죽 직모 머리가 인상적인 그는 기타 치기 삼매경에 빠져 여러 가지를 꿈꾸며 기독교 시설에서 다른 아이들과 랄리뿌르의 날들을 보낸다.

그 날 산책은 의외의 것이었다. 비가 다 내리고 난 뒤 맑은  오후해 질 녘이 가까워 오는 시간 우리는 버려진 중국 회사 공장에 산책을 간다. 텅 빈 그곳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고물 불도저가 있고, 레일과 쇠붙이 벽돌 옛날에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물들 만 파편처럼 남아 있다. 높은 탑, 양떼들 그리고 그 곳에서 학교를 결석하고 시간을 보내는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아윱은 진지하게 그 고 철로 된 공장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시골길은 오전 내내 내렸던 비 때문에 땅이 너무 질다. 푹푹 꺼지는 질펀한 진흙탕길 사이를 신발을 벗고 걸으며 시골 아이가 된다. 꾸물꾸물 한 그곳을 한 걸음씩 나아간다. 탐험을 가는 듯 흥분한 상태로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상한 노래들을 부르며 걸었다. 불안정한 음정을 타고 논밭 사이사이를 함께 간다. 그가 어떻게 살았든 앞으로 어떠하든 아윱은 아윱이다. 잊히지 않을 산책 날이 석양과 함께 만들어진다.


상기타 Shangita

수줍게 단어 하나 하나를 내려놓으며 말하는 상기타의 집을 방문한다. 그녀는 양철로 된 지붕, 대나무 살로 천장 기둥을 만든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자기 가족 사진을 주욱 늘어놓으며 내게 설명하고 비스킷과 차를 내어준다. 파란색 벽에는 간단하게 힌두교 신의 그림이 두 점 걸려있고 꽃 장식이 대롱대롱 걸쳐있다. 가족은 작은 방 하나를 쓰고 다른 가정들과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한다. 인도 드라마를 보며 오후를 보낸다. 아프가니스탄과 몰디브 대표팀 간의 축구경기를 본다. 그들의 경기 시작 전 애국가를 듣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애국가를 가졌는지 처음 관찰한다. 그러다 그녀는 동생과 할머니와 쌀을 나른다. 30kg 쌀을 머리에 등에 팔에 온몸으로 이고 간다. 키가 150cm도 안된 작은 13살 여자아이 상기타가 2km를 그냥 걸어간다. 할머니는 쌀을 매고 동생은 낑낑 들고 간다. 내 도움의 손길은 그녀에게 민망한 것이다.


절대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어떻게 펼쳐지든 간에 한 발짝 씩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빨래를 하고 친구와 신나게 웃고 옆집 언니를 껴안아야 한다. 굳건히 쌀 가마니를 들고 제 삶의 무게를 긍정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꿋꿋이 걸어야 한다. 그 누구의 도움으로 편협하게 비굴하게 사는 게 아니라 눈앞에 놓인 문제를 직면하고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는 것을 그 작은 아이도 알고 있다. 나는 고작 돕는 시늉을 하고 돌아와 떨리는 팔 근육을 보았다.


 “You will never forgive yourself, if something happen.”

만약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넌 너 자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야.


크리슈나의 말에 따라 이집트를 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인도 뭄바이에서 요르단 암만으로 가려고 했던 계획은 이집트 사태로 인해서 변경되었다. 그래서 미리 끊어두었던 비행기표를 바꿔야 했고, 네팔에서 쿠웨이트 항공사를  찾아다니고 인도에 있는 지점을 찾아보고 내가 예매한 미국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하고 어렵게 표를 바꾸어 예정에도 없던 두바이 방문을 계획하고, 인도에서의 시간을 늘린다. 그렇게 여정은 변경의 진통을 겪는다.


풀초키 학생들과의 이별 준비

정말 조용히 매번 수업에 나와준 수디르 Sudir, 똑똑하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쉬탈 Shital , 귀엽고 발랄하고 긍정적인 블루 샹기타 Shangita , 조용하지만 정말 진심 어린 핑키 샹기타 Shangita , 깍쟁이 또 멋쟁이 바쁜 알리샤 Allisha, 능글맞은 여유쟁이 디파 Dipa , 엉뚱한 영혼과 꿈이 있는 아윱Ayup , 늘 헌신적이고 많은 과거 상처가 있지만 꿋꿋한 맏언니 같은 마니샤 Manisha , 수다쟁이 유쾌한 트레티마 Tretima, 막판에 열심히 했던 귀요미 수만 Suman, 열정 가득한 이스마엘 Ismael. 아이들이 계속 웃을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열심히 춤도 추고 이야기도 하고 놀면서 더 이해하고 희망하고 꿈꾸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기회 불평등 혹은 기회의 소멸, 빈부격차, 현실들로 인해 세속적 회의적 비관적 세계관을 갖지 않기를 기도한다. 헤어짐은 아쉽다. 생각보다 많이 아쉽다. 생각보다 많이 고맙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내 가슴 언저리를 뚫고 지나 간다. 어떤 온기가 남아있다.

 

마지막 수업시간은 아이들의 발표로 이루어진다. 이제는 정규 수업시간 중 한 과목 시간을 얻어 아이들의 발표와 지난 수업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 크리슈나와 교장선생님도 참여한다. 나의 수업 정리에 대한 보고와 총평을 뒤로 3팀으로 구성된 8명의 아이들이 ‘네팔의 축제’, ‘네팔의 역사’, ‘네팔의 언어’, 그리고 자신의 꿈(기타리스트)을 발표한다. 전지에  그리고  쓰고 기타 연주를 하는 등 작지만 소규모의 결과물을 내어놓는다. 무엇보다 아이들 이 용기를 내어 자신감을 가지고 앞에 섰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후 크리슈나는 마흔 명 정도 되는 8학년 학생들에게 영어와 네팔어로 말한다. 왜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데 누구는 열심을 다해서 이런 발표의 날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그저 앉아 있어서 변화를 꿈꾸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왜 누군가는 하기로 하다가 중간에 흥미를 잃고 그만두었고 왜 더 큰 자기 자신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아이들은 조용했다.


그 날 우리는 각자 맛있는 음식을 잔뜩 가져와 마지막 파티를 했다. 한 아이는 오늘이 학교에 들어와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한다.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 나중에 웃으며 다시 만나자.


매일 새로운 태양

중국에서 리탕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사람 프란시스 Francis를 카트만두 시내에서 다시 만난다. 그간 중국과 몽골을 천천히 여행하면서 네팔의 우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그와의 재회는 여행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사진을 찍으며 여행을 하는 그는 블로그와 각종 웹사이트에 자신의 사진으로 어필을 하며 자기 여행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몇 년간 회사에서 일한 곳을 박차고 나와 여행을  시작한 지 6개월 된 그는 앞으로 1년 반 정도를 더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한다. 급하지 않은 그는 하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시간여 여행한다. 네팔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3개월을 더 작업한 뒤 인도에 갈 것이라 했다. 자신이 원하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그는 매일매일 뜨는 태양이 새롭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So many people live within unhappy circumstances and yet will not take the initiative to change their situation because they are conditioned to a life of security, conformity and conservatism, all of which may appear to give one peace of mind, but in reality nothing is more damaging to the adventurous spirit within a man than a secure future. The very basic core of a man’s living spirit is his passion for adventure. The joy of life comes from our encounters with new experiences, and hence there is no greater joy than to have an endlessly changing horizon, for each day to have a new and different sun."
*Chris McCandless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살면서 자신의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 인생은 안정되고 정체되고 확실해 보여서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줄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도전적인 영혼만큼 단단한 것도 없다. 인간 영혼의 근본적인 핵심은 모험을 향한 열정이다. 새로운 경험에 의 직면을 통한 인생의 즐거움이다. 끝없이 변화하는 수평선 위에 새롭고 완전히 다른 태양을 매일 바라보는 것만큼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다.”

*Chris McCandless



다시 떠나야 할 때

9월이 흐르고 날이 쌀쌀해진다.

유랑하는 생활을 하며 매일같이 쓰던 내 배낭이 이곳 랄리뿌르에 정착하면서 한 곳에 처박혀 있었다. 몬순 멜로디가 흐르는 네팔, 비가 오고 습하고 그늘진 곳에 그녀를 두었더니 곰팡이가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푸른 곰팡이가 천마다 스며든다. 그녀는 제 기능을 잃고 한 곳에 박혀 앓고 있었다. 습한 몬순의 기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비우고 햇볕을 향하게 한다. 작가들은 얼마나 많은 종이를 구기며 자신의 말을 고치고  또다시 습한 곰팡이에 시달리며 응달에서 시름시름 앓았을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곰팡이가 피어나지 않게, 소중한 것을 방치하지 않았어야 했다. 곰팡이가 쓴 내 가방을, 마음 구석을 달래고 다시 여행을 갈 채비를 슬슬 챙겨야 할 때가 온다.


비가 온다. 몬순 막바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마지막, 존재의 순간을 알린다. 어느 날 밤 무섭게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집어 삼킬 듯이  정신없이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몰아 닥친다. 죽기 전 사람이 총명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보여낸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한 그 긴 밤이 지나가고 새 아침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간 듯한 그 밤에 논밭은  여기저기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찬란한 햇살이 온 세계를 다시 뒤덮는 아침이 다가올 때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모습을 드러낸다. 늘 거기 있었는데 지난 한 달 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 산맥이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 나를 부를 때 나는 카트만두를 떠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생 고양이#8 <네팔> 작은 동네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