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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7. 2015

야생 고양이 #10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

아시아 표류기 :: 배낭여행

포카라 Pokhara

카트만두 Kathmandu 에서 버스를 타고 6시간여 서쪽으로 이동하면 작고 아름다운 마을 포카라에 갈 수 있다. 이곳에 사람들은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맥을 감상하거나 트래킹을 가기 위해 몰려든다. 비교적 짧은 코스와 아름다운 광경이 있어 많은 산악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포카라에 있는 안나푸르나 산맥은 히말라야를 오르는 많은 이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다음 두 가지가 가장 알려진 코스이다.


*ABC코스-Annapurna Base Camp : 안나 푸르나를 마주하며 산을 올라 베이스 캠프까지 가는 여정. 보통 5-6일 정도 소요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 안나푸르나 산맥을 중심으로 둘레를 돌아서 구경하는 코스. 12일-15일 소요.


우기가 끝나고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다닌다. 많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산으로 마을을 서성인다. 그 더운 날 짐이 어깨를 짓누르면 땀이 삐질삐질 기어나온다. 숙소를 찾고 있는 데 길가에 한글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간 그곳에서 한국인 S언니를 만난다.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레나의 계획은 그녀에 의해 정해지고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향한다. 우리는 짐  15kg가량을 들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포터 림부 아저씨와 함께 여정을 떠났다. 800m에서 시작해서 5500m까지 천천히 다른 고도를 즐기며 안나푸르나의 매력을 즐기는 라운딩 코스의 12일이 여정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래킹의 매력은 여러 가지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아주 더운 정글에서 시작해서, 차차 추워지는 날씨에 따라 식생이 변화하고 안나푸르나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해발 7000m가 넘는 안나푸르나 산맥은 여러 개의 봉오리로 이루어져 장관을 이룬다.



안나푸르나 Annapurna

산을 오르는 건 하루가 단순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걷고 산을 오르고 다시 걷고 먹을 곳을 찾아 쉬다가 다시 걷고 하루의 종착지를 정하고 그곳에 도착해서 다시 씻고 먹고 다시 다른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단순한 하루 명백한 목표가 있는 날들이다. 더 이상 다른 복잡한 것은 없다. 하루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인다.  그다음 밤을 지새울 곳을 찾아 끊임없이 걸으며 자연을 즐기면 된다. 덥고 지치면 수분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걷고 오르고 고픈 배를 채우는 삼시 세 끼, 그리고 다시 다음 마을까지 가면 된다. 이 산을 다 넘을 때까지 컨디션을 조절하고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다시 한걸음을 옮기는 것이 내 몫이다. 꽃잎이 실낱 같은 식물, 잎이 자잘하고 낮은 식물, 끝없는 강물, 가녀린 폭포, 여린 달빛과 수많은 까마귀와 여유로운 야크들, 지층이 다 보여 자신의 역사를 드러낸 산줄기,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마른 나무 열매들, 티벳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놓은 돌탑들과 기괴한 암석들, 때때로 보이는 독수리가 그곳의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있다.


시누리 선인장, 얼룩무늬 새, 참체 폭포, 나그네와 같이 매일 잠자리를 바꾸며 생각을 캐낸다. 나 자신과 싸우고 길 위를 즐긴다. 동행을 하고 있으니 심심할 틈도 없다.“복라교!”(배고파요~) 림부 아저씨에게 맛있는 밥을 먹자고 한다. 우리는 대체로 즐거운 분위기 속에 등반을 한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으며 안나푸르나의 뜻이 뭐냐고 물었다. Full of food(가득한 음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폼 나는 이름 안에 뜻은 더없이 인간적이다. 저 산들은 이곳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을까. 자유, 인연, 배움, 절제, 충동들. 생각의 길들, 깨달음의 걸음을 찾아서 나아간다. 땀이 뻘뻘 나고 하루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샤워를 하고 밥 먹고 꿀 같은 잠을 잔다.



동행을 한다는 것은 그저 쉬운 일이 아니다. 동행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일이다. 템포를 맞추고 의견을 조율하고 함께 해야지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또 혼자 여행을 주로 하던 사람들이라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지만 함께해서 일종의 안정감을 얻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안나푸르나를 걸으며 나는 좋은 동행자가 되지 못했다. 배려하지 못하고 오래 기다리지 못했다. 그래도 인연이란 것이 신기해서 그렇게 우연히 자연스럽게 만난 언니와 1시간 만에 같이 동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떠난 여행 치고 우린 꽤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내가 아니라 언니가 나를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더 오를 것인가 아니면 내려갈 것인가. 고집불통 유치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예상하지 못한 추억들을 나눌 수 있는 고마운 만남이 있는 날들이다.


해발 3000m 이상 올랐을 때부터 고산증세를 조심해야 한다. 하루를 더 쉬고 주위를 둘러보고 여유를 갖는다. 나는 굳이 하루를 쉬지 않고 근처 다른 산맥에 올라 가본다. 1000m를 오르고 내리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체력에 한계를 느끼지만 그래도 작은 호수 하나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구름이 걷히고 거대한 설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관이 펼쳐지고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배가 고파서 조금은 정신 차리지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걷고 또 걷는다. 이미 지대가 높아서 저 아래를 바라보아도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에 대한 감흥이 크지 않다. 다만 저 높은 설산들이 가까이 보이고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내가 4000m 위에 올라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뿐이다.



산맥을 지나

그렇다면 토롱라 패스 Torongra Pass, 5400m 고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 야크들 푸른 호수와 설산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 그 여유로운 티벳 사원의 종소리들이 울린다. 산들은 높고 계속해서 스스로 싸우며 도전해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지치고 고되다. 이겨내고 다시 한걸음, 산행을 배워가고 자연을 읽는다. 안나푸르나는 나보다 훨씬 오래 이 땅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새 아침을 맞이하고 세월을 흘려 보냈다. 나는 뜨내기, 너의 이해할 수도 다 담을 수도 없는 절경에 그저 셔터를 실컷 눌러 보지만 그 무엇 하나도 진짜로 알 수 없다. 저 높은 땅에, 척박한 땅에 고도는 변하고 살아가는 것들이 달라진다. 짧고 작고 단단한 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것들이 그곳에 다시 꽃을 밀어 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산 꼭대기에 다가갈수록 전기와 물은 소중한 것이 되고 낭비는 금물이 된다. 스페인 음악이 흐르는 숙소의 거실 우리는 6시 30분에 저녁을 먹기로 한다. 트래킹 8일 차, 산, 구름, 낭만, 민트 티, 고산증, 해병대 친구들, 세계 여행자들, 롯지, 계절의 변화, 림부 포터아저씨, 정수기, 전기의 중요성, 아이패드 미니의 힘, 노트북, 금전적 여유, 루피와 환전, 네팔리, 유럽 사람들, 건강한 다리, 스트레칭, 다이어리, 개인적 시간, 우연과 인연, 블랙 아이폰, 꽃무늬 테이블보, 웅성웅성, 9월의 겨울, 해발 4000M, 그들 각자의 여행기, 배터리 충전기, 얼굴이 타는 것, 노란 나비의 안나 푸르나, 별이 빛나는 곳, 달이 가득 찼다가 이제는 반달이 되어버린 시기, 석양을 찍을 수 없을 만큼 피로한 날, 이스라엘 랍비가 히브리어설교를 늘어 놓는다. 나는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고지.정상.

4400M 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5416M 토롱라 패스 고지를 넘어야 한다. 1000M를 오르고 4시간을 달려 내려와야 한다. 두통이 가라앉기를 그저 바란다. 비 오는 날 침낭, 담요 안에서 모두들 뒹굴며 몸을 따뜻하게 하며 시간을 보낸다. 심장이 뛰고 있다. 어떤 풍경과 사람을 만나게 될까. 단 하나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그날 밤 은하수를 보았다. 우리 눈보다 희한하게 좋은 카메라로 더 잘 보이는 은하수. 별들은 흩뿌려져 있고 카메라는 내 눈보다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단 하나의 별과 내가 연결되면 그곳에서 새초롬한 별은 나를 바라보고, 나도 목뼈가 아프도록 너를 바라본다. 달이 뜨기 전에, 그 전에 은하수는 길을 만들어 강처럼 흘러간다. 빛을 피해 다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당신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더 어두운 곳으로 갔다. 더 컴컴한 곳에서 더 진하게 빛난다.


마지막 토롱라까지의 여정. 그곳이 우리의 고지이다. 새벽부터 눈발이 거세서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 산을 오늘 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머리가 좀 아프고 고산증세가 있더라도 하루를 더 머물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알 수 다. 그러나 다른 많은 등산객들은 새벽 4시부터 헤드라이트를 켜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컴컴한 밤, 모두가 그 고지대를 하루에 넘기기 위한 걸음이 시작된다. 원래 건조할 때는 돌산처럼 이루어진 그 산은 그날 하얗게 범벅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고 추위를 하나씩 견디며 자신의 패턴에 맞추어 정상까지 오른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다. 간간이 보이는 앞 선 사람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이 길이 맞다고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마치 탐험대와 같이 길을 떠난다. 길들을 따라간다. 빛들은 검은 날들을 깨우고 또 다른 별이 되어 서로의 방향을 잡아주는 길잡이가 되고, 어두운 새벽에 예기치 않은 상황에 서로가 있음을, 그래서 더 나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는 서로의 등불이 되어준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안심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 나아간다. 타인이 지나간 흔적을 좇아 길을 찾고 흰 눈발이 내리도록 가득 차도록 새 하얀 아침은 너무나 강렬하게 새하얗다. 흰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색색의 우비와 배낭들이 거대한 자연 아래 개미같이 작은 우리의 이동을 보여준다.


따뜻한 티 한잔에 몸과 마음이 활력을 되찾고 5000M의 고도가 넘고서도 그 희박한 공기를 공유하며 우리는 도전하고 있다. 저 멀리 나아가는 것, 개인들이 스스로를 이겨내며 나아간다. 너무나 멋지게 토롱라 정상에 올라갔을 때, 내리던 눈발이 멈추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그러면 그곳에 눈이 쌓인 산맥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은 더 하얗고 씻겨나간 하늘은 더 없이 푸른 장관을 연출한다. 그곳에서 내려가면  또다시 다양한 돌산들의 모양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물이 흐른 자국을 비롯하여 역사가 묻어 있는 땅이 숨 쉬고 있다.


힘들게 1600M를 뛰어 내려온다. 편을 가르듯이 한쪽은 사막 한쪽은 눈밭 다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마을을 지나 중국풍의 정체불명의 쾌적한 마을 묵키나트 Muktinath에 간다. 아주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혹사당한 내 다리를 동정하며 다독인다. 절정이 지나갔다.


한쪽은 땅이 푸르고 뜨거우며 다른 쪽은 거칠고 황량한 가운데 식물들이 살아가고, 저 멀리 산 위에서는 만년설이 가득하다. 트래킹 길 위에서 여러 종류의 마을을 만나고 사람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관광업에 뛰어들어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농업을 하거나 목축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신비로운 땅을 걸었다. 은하수가 보이는 땅, 길들 이 열려있는 곳,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생기는 숭고한 영역, 히말라야를 내려온다.


12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포카라로 돌아온다. 그동안 전기도 부족하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오지 않았으며, 인터넷도 잘 되지 않던 곳을 떠나 다시 문명을 즐긴다. 먹고 마시고 여유를 즐기며 다음 여정을 꿈꾼다. 네팔은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다. 착한 마음의 사람들이 살고,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다시 와보아야 할 곳.


그렇게 45일간의 네팔의 날들을 뒤로 하고 다시 유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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