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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 #11 <인도> 다시 만난 사람들

아시아 표류기 :: 배낭여행

인도 INDIA

3년 9개월 만에 다시 인도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만난 인도의 기차역 풍경이 익숙하다. 역사 근처에는 아무도 치우지 않은 더러운 물과 쓰레기가 고여있고, 군중들 사이로 몇몇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역에서 기다리는 다른 인도 사람들의 밤 풍경을 볼 수 있다. 의자가 아니어도 바닥에 천을 깔고 무리 지어 머리를 누이면 그것이 그날 밤 잘 곳이 된다. 어떤 아이는 포대기 속에 자신의 몸을 끼워 넣어 밤을 지새운다.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다. 시설은 적고 사람은 많으며, 모든 것들을 수용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러한 체면 신경 쓰지 않는 현상들은 아주 자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8시간을 기다려 새벽 4시 가까스로 2등석 야간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앉을 자리 좁은 곳 하나, 더 이상 누울 자리가 없으면 짐 싣는 칸에 올라가 머리를 누이고 몸을 쭈그리고 하룻밤을 지새운다. 피곤한데 직각으로 된 의자에 곧게 앉아 잠을 잘 만큼 내 체면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 몸은 인도의 규칙을 기억하듯이 자연스럽게 적응한다. 인도에 돌아왔다.


재방문/재회/기억

푸쉬카르 Pushkar

오랜만에 돌아온 푸쉬카르. 작은 히피들이 사는 이 하얀 건물이 가득한 아름다운 마을은 성스러운 호수 하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곳은 인도의 신성한 성지 중 하나로 꼽힌다. 주위는 성스러운 물로 씻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신을 숭배하는 가트(돌계단으로 되어있으며 그  아래쪽에 물이 고여있다.)들로 이루어져 있다. 새들과 소들이 그곳을 돌아다니고 길도 좁고 마을도 작아 모든 것이 걸어서 해결되는 곳이다. 지난 인도 방문 때 이 작은 마을 푸쉬카르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며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이후 한 번도 연락할 수없었던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그대로 푸쉬카르에 있는지 궁금해하며 그곳으로 향한다.


수만 Suman

정말 푸쉬카르는 작은 곳이다. 콧수염을 시커멓게 길러 이제는 완연한 아저씨 모습을 지닌 수만을 다시 만난다. 8살 때 길거리에서 외국인에게 우체국이 어디인지 알려주면서 영어를 배웠고, 그렇게 관광가이드가 된 친구다. 처음 만났을 때 철없는 20대 초반이었던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다행히 나를 알아보았다. 철딱서니 없고 명랑하고 거침없던 그는  지난해 결혼을 하려 했으나 실패하면서 삶에 대한 책임감을 더 배우고 지난 세월을 덧입어 성숙하고 진중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가족 소유의 사원에 가 아침부터 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것을 거르지 않고 있다. 수 많은 국가의 여행자들을 작은 마을 푸쉬카르에서 만난 그는 한 번은 영국에 초대된 적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원을 위해 자신의 책임을 위해 가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마을과 근방에 있는 큰 마을 아즈메르를 넘어서 어디도 가보지 않은 그가 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결혼 후 집안에만 갇혀 지낸다는 자신의 누나를 보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 또한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또 나의 안타까운 테두리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악스 Aaks

신발가게 주인인 악스는 나를 보자마자 알아본다. 그의 덥수룩한 수염과 초췌한 몰골, 대충 아무거나 입은 듯한 러닝셔츠에 사실 나는 그를 단박에 알아보진 못했다. 길거리에서 신발을 팔다가 길을 좀 안내해 준 것을 계기로 알고 지내며 오고 가다 스쳐 지나가며 이야기한 것이 전부인데,  지난날에 내가 내뱉은 말들과 행동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푸쉬카르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무한대로 뻗는 그런 꿈은 없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부양하며 소소하게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그 사이 딸을 두 명이 나더 나아서 딸 셋을 가진 딸 부자 가족을 이뤘다. 3년 9개월이란 시간은 그런 것이구나!


푸쉬카르 호수: 사념

더운 날 동네 어귀에 앉아서 나는 뚫린 콧구멍을 고통스러워하며 ‘코조리’ 잘하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상기시키며 내 발목에 들러붙은 파리를 내쫓는다. 아프다. 푸쉬카르는 그렇게 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편이 좋겠다. 해가 저문다. 이것은 익숙하고 낯선 햇살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타고 넘는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만을 생각한다. 더위가열기가 내 피부에, 그 우주로부터 온 에너지가 와 닿는다. 나는 새롭다. 낭만이 결핍된 여행은 너무나 외롭다 공허하다. 파리가 들러붙는 오후에 내 발 냄새를 상기해본다. 너무 더럽게 지냈나.


인터넷이 준 것,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더 인간적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속해 있는 그 신비를 발견할 수 없게 만들었고, 더 자극적인 것들만이 보이는 세상을 창조해냈다. 그 다른 세상이 주는 다른 유희의 형식들이 ‘지루함’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더 빨리 더 자극적으로 더 확실하게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에 익숙해져서 응시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때로 어색하다. 그래서 이런 석양을 보고 가만히 있을 때, 더 인간적이 된다는 느낌을 갖는다. 밤의 체증이 가라앉는다. 새 아침이 떠오를 것이다.


아침부터 남의 집 담장을 넘는다. 푸쉬카르의 개미가 내 공책을 타고 넘는다. 개미에겐 인색하면서 타인의 문은 열려지기를 기대한다. 출구를 찾던 여자, 인도인에게 나를 말하고 그녀의 문밖으로 나선다. 약속이 있어 새벽부터 잠긴 호스텔 문을 열 생각은 않고 다른 집으로 뛰어넘은 탓이다. 나는 이상한 사람. 그렇게 새벽부터 바라본 호수는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세수도 양치도 안 한 채 소의 걸음소리를 듣는다. 내 지난 세월과 여행의 흔적을 변해버린 나 자신에게서 찾는다. 누군가가 기도하는 소리가 새들 지저귐에 버무려져 울려 퍼지는 아침이다.


인사하는 것, 작별하는 것, 다시 떠나는 것, 여행자의 숙명 같은 것. 점점 그런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더 이상 예전만큼 시큰하고 서럽진 않다. 다시 푸쉬카르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


우다이뿌르Udaipur

지투 Jitu

지투를 보기 위해 우다이뿌르에 다시 방문한다. 지투는 마흔이 넘어 몸이 왜소하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지투는 유머가 넘치고 유창한 영어 소통능력에도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다. 3층짜리 건물에 부모를 부양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옛날에 방문했을 때 지투와 재미있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녔으며 아주 간간이 연락이 닿았기 때문에 나를 당연히 기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투는 나를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맞이한다. 그 어떤 기억도 없다는 듯이 나에게 행동한다. 그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진짜가 아닌 것처럼, 마치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정말 놀랍고 슬프게도 그는 나에 대해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지투의 입장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자신을 지나갔으며, 그것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기억이 없는 사람 앞에서 난 그저 당황한다. ‘친구’란 무엇일까. 한쪽만 가지고 있는 기억은 그저 이야기에 지나지 않은 걸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와 다시 기억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지나간 시간들은 그저 나만의 기억이 되어 버린 건가.


우다이뿌르는 참 덥다. 호수에 앉아 석양을 보며 사념에 젖는다. 낮은 너무나 뜨거웠다. 시원한 공기. 친구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서로를 믿고 어떻게 또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나. 저녁 음악이 들려온다. 박쥐가 날아다니고 해 가 지나간 곳에 별이 반짝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투의 부모는 집에서 하루 종일을 아무렇지 않게 보낸다. 세상은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제각각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하루를 정리한다. 목수, 옷 가게, 야채, 과일판매상, 철제 기구제조자, 운송업자, 관광업 종사자, 음식점, 사원 운영자, 가정부, 학생, 가이드, 매표소업자, 무직자, 릭쇼맨. 지평선이 붉게 물들어 간다. 어둠이 땅을 감싸고 하루의 열기가 점점 가시고 있다. 난시가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지만 그 아른거리는 것 사이에 진짜를 보고 있다. 아니 진짜를 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혈액 속 흐르는 리듬 Rhythm in the blood 

페인팅의 떨림. 자유로움, 긍정적인 사고방식, 어떤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 지투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르던 인야 Enya라는 덴마크 여자는 예술가이다.  50대가 되었지만 가녀린 몸과 가볍고 빠른 몸동작이 그녀를 상징한다. 낭만을 추구하며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세밀화, 만들기, 춤을 이곳에서 느리게 하나씩 배우며 지내는 그녀는 더 많은 이해를 추구하는 법, 즐기는 법을 안다. 저녁에 식사를 만드는 동안 음악을 틀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부드럽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자신의 몸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페인팅 작업을 하는 그녀는 그림의 마무리는 작품이 마지막으로 생기를 가질 때 그 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피 속에 흐르는 리듬을 따라 경쾌하게 살기의 행복감을 표현한다. 게스트하우스 마당 마당, 달빛 아래 춤을 추면 경직되었던 나도 절로얼씨구나 춤을 춘다. 뭐 대단한 것 있나. 내 핏 속에 흐르는 리듬을 따라 흐르면 된다. 낭만이 흐르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잊힌 기억은 어쩔 수 없고 우리는 다시 새 기억을 색칠한다. 지투도 덩실거린다. 이번엔 잊혀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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