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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 #16
<에티오피아> 사람 인연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시골 마을의 비즈니스

랄리벨라 Lalibella

랄리벨라는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여행자들이 이곳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특별한 11개의 정교 교회가 있다.  그중 유명한 7개의 교회는 쌓아 올리고 덧붙이는 건축방식이 아니라 대지 아래 흙과 돌을 파 낸 뒤 그 대지를 조각하여 한 덩어리로 교회를 세운 것이 특징이다. 땅 아래 있는 교회는 약 10m 정도의 높이로 이루어져 있고 여러 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아주 작고 완전히 컴컴한 통로를 지나가면서(촛불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본능적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곳이 있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낮은 자세와 신성한 마음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랄리벨라 동네 근처에 있는 이런 유네스코 교회들과 별개로 또 다른 고지대에는 동굴 교회가 있다. 그 산꼭대기에 올라와 사람들은 하얀 에티오피아 정교도 복을 입고 예배를 드린다. 신비롭고도 신성한 기운이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를 느끼면서 독특한 구조를 볼 수 있다. 랄리벨라 이 작은 마을을 걷다 보면 많은 단체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다. 높은 곳에서는 푸르른 마을 산들이 첩첩이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랄리벨라를 방문하는 여행자 수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그렇게 유적의 입장료는 미화 50달러가 되었는데 그것은 2년 전 가격의 5배가 넘는 가격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입장료는 소수 관리부에서 모두 쓰여지고 그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산 속 작은 마을,  먹고사는 다른 방법이 다양하지 않은 척박한 환경의 시골 사람들은 몰려드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업은 어쩐지 비겁하다. 그 곳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여행자들에게 접근해 커피를 권유하고 현지 물가에 대비해 매우 비싼 가격을 요구하거나 자신들의 가난을 핑계로 기부를 권유한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내어준 옛 산타클로스들의 떠남 이후에 이들에게 외국인에 대한 인식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나쁜 습관을 남겨주었는데, 이제 이곳의 많은 현지인들은 당당히 여행자들에게 그 산타클로스가 되길 요구한다. 여행자들은 호기심의 대상이고 돈이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순수성을 잃고 있다. 대개 여행자들은 커다란 카메라 2-3개씩 매고단체로 와서는 마구 사진을 찍고 돈을 주고 이국성을 즐기다가 근처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호텔에 돌아가 멋진 음식을 즐기며 여행하는 ‘투어’ 단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나 진짜가 아니라 이국성에 관한 또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로 돌아간다. 


여행자들은 현지인의 이미지를 얻으려 하고, 현지인은 여행자들의 물질적 소유를 얻으려 한다. 이 곳에도 자본주의가 있고, 이곳은 이제 비즈니스의 현장이다. 이해타산의 거래이다. 잠시 왔다가는 뜨내기 여행자들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웃음과 마음은 별로 없다. 처음에 본 그들의 에너지와 색깔에 대한 매력과 달리 그들의 나에 대한 태도, 시선들에 지치고 있었다. 그래서 관찰된 대상은 아름답지만 그 곳에 직접 참여해 부대끼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는 내게 다가와 영어 공부를 핑계로 말을 걸지만 결국 눈물 섞인 슬픈 이야기로 500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 GNP(1년 소득)가 620달러(2015년)일때 500달러는 상당히 큰 돈의 요구이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그런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사람 관계

바히르달 Bahir dar

배낭을 메고 길을 걷다 보면 동네 영어 할 줄 아는 청년들이 말을 걸어오며 호스텔을 안내해 준다. 그리고 투어도 안내해주는데, 그 모든 것은 순수한 호의만은 않다. 때로 원치 않는다는 표시를 해도 걷다 보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계속해서 반복된다. 요하네스는 그렇게 만난 한 명이었고, 혼자서 알아서 찾으려는 나에게 숙소와 투어를 안내해 주었다. 투어 가이드 자격증을 들이밀며 바하르달에 관해 설명해준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많은 거짓말들 때문에 관계 형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나와의 관계는 돈에 관한 것이거나 자신의 답답한 미래의 해결책으로서 나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순수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묵언적 강요가 부담스럽다. 그들은 펼쳐 두고 요구하지 않지만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그들에게 건네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을 강요함으로써 욕망을 표현한다. 이곳 사람들은 나에게 매번 최선의 친절과 배려를 요구한다. 믿음이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마 지쳐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피곤한 아침이었다. 그냥 걸어가는 나에게 많은 사람이 인사를 해주었고, 응답했다. 안녕. 오늘 어떠니. 좋은 아침. 너는 어디에서 왔니. 중국인! 안녕. 어디가? 나는 단지 아침 일찍 버스 티켓을 알아보려 터미널에 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또 지나가는 덩치 큰 에티오피아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해서 응답을 했고,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했는데, 아침부터 많은 질문들에 시달려 그 질문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는 내 어깨를 잡고길 가는 나를 돌이켜 세우더니 자신과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명료하고 강렬하게 “FXXX XXX”이러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것은 곧바로 나도 소리치며 똑같이 그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정말 말이 끝나고 0.5초 동안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주위 사람들이 그 광경을 그저 웃고 넘겨서 나는 뒤돌아 가던 길을 걸어 갔다. 여행을 온 걸까 싸우러 온 걸까. 이게 뭐람. 또 걸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건다. 안녕. 어디 가니. 어디서 왔니.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들을 바라보며 정해진 시간을 넘겨 한 시간을 기다린다. 선불을 해 버린 투어조차도 정말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든다. 믿음이 없어지기 시작하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피곤하다. 아프리카에 온 이유는 ‘구경’이 아니라 ‘참여와 공감’을위해서였다. 아마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은 아직 여행자들로 인해 소위 ‘돈맛’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가 보다. 진정하고 진실한 만남이 아니라면 그냥 인연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든다. 친구인 줄 알았지만 결국 나는 너무 자명하게도 외국인이고 돈주머니가 되어 버리는 마지막을 맞이할 때마다 도대체 이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투어

나일강은 파란 나일강과 하얀 나일강으로 분류된다.  그중 이곳에 있는 파란 나일강의 상류지점(바히르달)에 있는 섬들을 구경하는 투어에 참여한다. 각 교회 유적들이 남겨진 섬 구경을 간다. 수풀을 지나가면 대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 각종 독특한 목재 수공예 제품과 그림들을 판매하는 몇몇의 상인이 있다. 물은 투명하지 않고 길은 멀었지만 멋진 풍경과 오두막 형태로 지어진 특이한 교회들이 그곳에 있다. 아프리카 특유의 정글과 동물들 교회에는 성경 내용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이전에 보지 못한 그들만의 페인팅으로 가득 차 있다. 진한 원색 빨강, 노랑, 초록, 파랑으로 그려진 눈이 커다란 흑인 천사가 있는 교회 그림들과 유대교의 영향들이 뒤섞여 독특한 교회 형태를 이루고 있다. 종교는 지역문화와 섞여 새로운 형태를 녹여낸다.



리끼 엄마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에게 투어를 소개하여준 요하네스가 나를 기다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기다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그저  이곳저곳을 가고 싶은데 계속해서 쫓아온다. 그래서 같이 투어를 한 폴란드 친구들을 좇아 그를 피해 상업적 중심가에서 더 멀리 더 멀리 거리를 방황한다. 궁극적으로 어떤 이득을 취하기를 기대하는 모든 의도된 친절과 배려들 속에 있는 암묵적 강요로 현지인들과의 관계는 맺어지기 힘들었고, 이 신뢰가 없는 여행에 나는 좌절했다. 가혹함과 스스로 이겨나가야 할 것들의 버거움이 봇물 터지듯 밀려나와 나는 완전히 지쳤다. 그리고 그저 골목골목발길이 닿는 곳으로 완전히 그저 주민들만 지내는 여행자가 없는 곳을 헤매다 어느 푸른 벽 나름 깨끗한 계단에 주저앉아 이제는 내가 걸어 다니는 그들 에디오피안을 바라본다. 길거리에는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신발을 닦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등으로 가득 차 걸어 다니는 나에게 헬로 라며 말을 걸었던 그들에게서 벗어나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동네 어귀에 앉아 행인들을 응시한다. 


쭉 뻗은 내 발이 거칠다. 얼마나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모진지를 보여낸다. 이렇게 여행한다는 것은 참 거칠고 흔들리는 것이다. 물에 비친 나무가 흔들리는 것이 마치 나의 내면이 외부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모든 지친 마음이 땅으로 꺼지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나를 응시하며 어떤 말을 건다. 그건 짧고 부드러운 표현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괜찮다는 표시를 한다. 지친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다. 이곳을 여행하는 법이란 무엇일까. 여러 생각의 고리가 돌아다닌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 옆에 2m 정도 거리를 두고 가만히 앉는다. 그저 아무 말없이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같이 앉았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지만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런 그녀의 조용한 위로가, 그런 마음이 내게 와 닿아서 나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나의 눈물을 보자마자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나는 그녀를 안고 운다. 같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 삶에 가장 끝 귀퉁이 아픈 지점에서 가장 크게  위로받는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주위 행인들이 모두 몰려와 우리를 둘러싸며 무슨 일이라며 묻는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위로였다. 우리는 언어가단 하나도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로 건너 자신의 집에 초대해 달콤한 차를 주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곳에서 만났던 그 많은 이들 모두가, 친구라고 하면서 다가왔던 그들이 내게 대접했던 차 한잔과 커피 한잔은 단 한 번도 진심이고 그냥 마음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티는 너무 깊고 달콤했다.  그때에 그녀는 내게 엄마이고평화였다. 그녀의 이름은 리끼이다. 그녀로 인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녀의 그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다시 여행을 할 힘을 얻는다. 그녀는 내 아프리카에 있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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