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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 #17
<에티오피아> 소소한 일상 여행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가난: 작은 마을 산책 

머리를 따 맨 아이, 귀여운 아이, 가만히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많다. 그런 낭만에 젖어 아이의 순수함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이 조차도 돈을 요구하고 만다. 내 몽상은 한 순간 산산조각 나고 당황스러움이 밀려온다. 아 우리는 돈 없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었지..


여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 지 모르겠다. 아프리카에 오고 싶어서 아프리카에 왔는데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 지 모르겠다. 모든 유명한 데를 천천히 다 둘러 보아야 하나.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온 것인데 현지인 친구 만들기가 너무 어렵고 마음이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내가 여기 먼 대륙까지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쉽게 부자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순수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나는 몽상가였고 여행은 현실이었다. 맨발의 아이들, 파리떼가 몰려든다. 어딘가에서 자주 보아온 더러운 발 위에 파리 몇 마리가 꼬이는 이미지는 지극히 이곳의 현실이다. 다만 미디어에서 더 비참하고 극단적으로 다뤘고,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돈’은 인간관계 따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이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 교육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이해와 여유가 내게 필요한 걸까. 그 먼 거리를 이동하며 풍경들을 스치며 그저 버스 안에서 졸고 마는 시간들이 내게 가치 있는가. 그 수많은 것들이 내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나, 난 무엇을 좇고 있지? 



바나나 잎을 우산 삼아 걷는 사람들, 백발이 되고 옷이 다 뜯기도록 끊임없이 노동하는 여자들. 삶은 가혹하다. 가난이 버겁다. 그 끈질긴 삶을 움직이는 발걸음들은 계속되고 있다. 전통과 다양성도 이제는 하나의 보여주기가 된다. 부단하고 끊임없는 노동의 족쇄를 풀어줄 것은 돈이고, 마땅한 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은 곳에서 그런 돈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샘터는 바로 ‘친절한 외국인 여행자’, ‘자비로운 손길’에 있다. 그래서 기부를 요구하는 행위가 하나의 장난으로, 어머니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기의 능력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작용한다. 구걸은 아니다. 오히려 요구에 가깝다. 


수 많은 여행자들이 지나간 자리에, 그 가난에 대한 시선으로 말미암아 던져진 바나나 하나가 두 개가 되고 그렇게 얻어진 수확들 때문에 이제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그리고 그런 외국인 여행자/자원활동가가 무언가를 그들에게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이것은 부끄러움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은 먼저 주었고, 그래서 요구하면 주었고, 이제는 당연히 무언가 주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친분과 인간적인 유대감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여행자는 여행을 잘 해야 한다. 여행자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이것은 아마 내 여행 방문지가 너무나 전형적인 곳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정보가 적은 아프리카 여행 첫 국가에서 많은 다양함을 시도하지 못했다.) 마땅찮은 신발을 신거나 그것마저 없이 흙먼지 날리는 평야를 달리며 축구공 대신 플라스틱 병을 구겨 차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희망을 꿈꾸고 있나. 


무표정한 짐을 한 가득 지고 가는 아저씨에게 ‘살람’하고 인사하니 자신의 모든 주름을 찌그려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아주 작고 사소한 사람들의 행동들이 힘이 되어준다. 작은 시골짝 마을 낭만을 찾으러 갔다가  또다시 계속해서 물질을 요구하며 귀찮게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피해 빠르게 도망가던 중 나는 진흙탕에 미끄러져 자빠졌다. 그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인간적이지 않은가? 난 돈주머니가 아니라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다. 살아온 그 어쩔 수 없는 다름으로 인해 쉽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나는 그들의 고군분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친구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에티오피아 여행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조금 유명한 작은 마을에 가면 외국인들을 상대로 말을 거는 현지인 여행 가이드들 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빤지도 그들 중 하나다. 투어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 그의 제안을 거절을 했지만, 그저 이야기라도 하자는 그의 완고함에 몇 가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한 달 동안 걱정 않고 세계에 있는 어느 나라 한 곳을 여행할 수 있어. 아무것 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면 너는 어느 나라에 가고 싶어?” 


별 뜻 없이 던진 나의 질문에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한다. 자신은 한 번도 어딘가를 여행해 보고 싶다 고생각한 적이 없다고 답한다. 스무 살 넘긴 그 성인 남자는 자신의 마을을 방문하는 여행자 들을 수 없이 만나면서도, 그들에게 여행을 권유하면서도 자신이 어딘가로 여행을 할 수 있다라는 가정을 세운적 조차 없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일을 하고 싶은 곳은 있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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