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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 #18
<에티오피아> 우리 모두의 고향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JC 아저씨

에티오피아 남부 특별한 부족들이 사는 작은 마을들은 큰 도시가 아니 라차 편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얀 12인승 봉고차는 정원이 찰 때까지 넋 놓고 기다려야 하거나 일주일에  한두 대 공용버스 날을 기다려야 한다. 정 안되면 일정 금액을 주고 히치 하이킹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도통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정보가 부족으로 고민하던 중 우연히 유쾌한 프랑스인 JC아저씨를 알게 되고, 동행이 시작되었다.


땅딸막한 탐험가. 손가락으로 희끗한 앞 머리카락을 뒤로 주욱 넘기며 경쾌하게 걷는다. 배낭 하나에 작은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하지만 전혀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달달 거리며 뒤뚱거리는 캐리어가 그의 개성을 보여준다. 그의 여자친구 TGV라는 작은 인형은 그 자신 대신 언제나 여행 지역을 배경으로 한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JC가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TGV에게 팔찌를 채워주어 그녀에게 추억을 더해준다. 그녀는 그의 여행 상징이다. 프랑스 남부 출신인 JC의 가방 안은 별천지이다. 종이들을 꺼내 사진을 뒤에 놓고 스케치를 따라 그린 뒤 물감으로 색을 입혀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여행기가 담겨 있는데, 뚜렷한 주관을 가진 그 자신과 호탕함과 재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조급하지 않는 유연한 태도, 현지인에 대한 관심, 농담과 유머가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고 심지어 강경해 보이는 상대에게도 웃음을 끌어내 일이 잘 풀리게 하거나, 지루한 기다림도 즐길 수 있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 


“Key Afar!케야파! Key Afar!”


봉고차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목청껏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현지인들은 키득대며 눈이 파란 서양인의 탑승자 모으기에 호기심을 갖고, 그는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넉살 좋게 친근한 농담을 던진다. 


누구보다 현지 사람들에게 툭툭 당황스럽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모종의 친근감을 느끼기 쉽다. 여행의 내공이 빛난다.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프랑스 말로 중얼중얼 길바닥에 말을 내뱉고 혼자 풀어버린다. 별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집에 천체 망원경이 있다. 두꺼운 손가락을 올려 들어 오리온좌를 설명해준다. 수학선생님을 오래 하다가 가이드로 자신의 직업을 바꾸고 자신의 나라를 독일인들에게 소개해주거나 아프리카(탄자니아를 중심으로) 몇 곳을 여행자들에게 안내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에티오피아의 흔해빠진 길거리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 아주 평범한 일상을 촬영한다. 자기만의 예술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만든 여행 스타일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Show &Reality 쇼와 현실

케야파 Key Afar

맑은 밤에 별을 헤아리며 춤을 춘다. 그리고 동물들이 우는 소리에 깨어난다. 동물과 사람이 섞여 산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소리의 혼합이 아침을 깨운다. 


쿵쾅 쿵쾅 차가 흔들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 사이로 몇몇 마을들을 지나가고, 어렵게 Key Afar까지 다가간다. 그곳에 매주 수요일마다 시장이 열리고 여러 다른 부족들이 모여 든다. 다양한 복장을 한 에티오피아의 각각이 다른 부족들이 그곳에 모여든다. 그들은 담배, 액세서리, 음식, 그릇 그리고 음료와 각 지역의 특산품을 모아 시장을 연다. 커다란 눈, 탄탄한 체격, 엉성하지만 강한 치열, 강렬한 에너지. 각 부족마다 다른 특색을 지녔다. 어떤 부족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진흙을 머리에 발라 그것을 꼬기도 하고, 액세서리의 패턴과 그것을 착용하는 법, 머리를 트는 방법 등 부족마다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디서 난 것인지 총을 들고 있기도 하고 상반신을 노출한 부족도 있다. 깃털과 각종 장식들, 그들이 뿜어내는 이미지는 이 전에 직접 본 적 없는 강렬한 것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은 쇼가 아니라 진짜다. 다만 그 이미지를 갖고 싶다면 그들과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예쁘장하게 차려 입은 아름다운 아이들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사진모델이 되어 그날의 수입을 얻는다. 몇몇 여행자 그룹이 몰려와 수 많은 에디오피안들을 모아 두고 그룹 사진을 찍고 돈을 지불하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공짜로 찍는 사진은 엄격하게 금지된 것이다. 그들의 이미지는 그들의 생계수단이고, 어떤 친분관계보다도 우선시되는 것이 바로 이미지이다. 아이는 이미 한 손에 펜을 쥐고 있어도 내가 쥐고 있는 펜을 보고는 달라고 해본다. 몇몇 아이들에게는 더 예쁘게 입고  선택받아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 바나나와 사진과의 교환은 안 된다. 오직 ‘돈’. 그 이미지를 마구잡이로 찍는다면 그들은 사진사에게 달려들 준비가 되어있다. 1달러로 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판다. 


그날 JC와 나는 아침부터 시장에 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지켜본다. 그 화려한 색색의 장식들과 그들의 살아있는 에너지는 어떤 쇼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방문자이다. 어쩌면 이 정도로 비즈니스와 화합한 수준이 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만남을 유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더 배척적일 수 있었다.) 다만 유목민 같이 떠도는 방문자들이 그들의 친구가 되는 일은 무척이나 높은 벽이다.

 

너는 낭만이 없니?

명확한 차편이 없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제 시골 마을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자체가 쉽지 않다. 지나가는 차들이 우리가 가는 목적지까지 가는 지, 그리고 그래서 우리를 태워줄 수 있는 지, 넋을 놓고 기다려야만 한다. 동네 사람들은 일상에 새로울 게 없어 지루했는지 길거리에 앉아 있는 웬 백인 아저씨와 동양인을 보고 다가와 말을 건다. 그들은 앉아 있는 우리를 둘러싸고 구경한다.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다. 그 중에한 아이는 어떤 부족에 속한 옷을 입고 있다. 나는 내 눈앞에 서 있는 그 아이의 강렬한 이미지를 종이에그린다. 쪼그려 앉아 있던 우리와 서 있던 사람들 사이, 모두가 나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가만히 서서 내 그림을 바라보고 나는 계속 그를 그린다. 그리고 그림을 다 그렸을 때 그는  “money!”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종이를 찢어서 아이에게 건넨다. 그러나 아이는 성질을 약간 내면서 거절하며 다시 반복한다. “money!” 낭만이 없는 가난은, 그 맹목적인 자본에의 추구는 다른 가치를 보지 못하게 한다. 우정과 이해와 감정의 확장보다 자기 자신의 가장 원초적인 노동의 수고를 줄여주고 권위를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 돈의 힘 때문에 내가 그린 그림은 가치를 잃는다. 이제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돈을 요구해버리는 많아 봐야  열네 살 정도인부족 아이의 태도에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열심히 테이프로 다시 붙여 공책에 간직한다. 너는 추억도 낭만도 없니?


그들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놓치고 있는 간과하고 있는 선입견은 무엇일까. 진정한 이해는 애정과 관심 인내와 관찰 그리고 이해심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나. 짐을 짊어지지 않은 당나귀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 자신이 얼마나 얽매이고 인위로 뒤덮인 강박적인 인간이지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뾰족한 어떤 것처럼 불완전하고 편견과 열등에 휩싸인 그 처량하고 망측한 줄자를 늘 허리춤에 차고 타인을 측정하고 자신을 판단한다. 그리고 다시 안일함으로 그러한 자신을 위로한다. 또 한 꺼풀 내가 가진 얄궂은 프레임을 내던져야 한다. 숨을 깊게 내 쉰다. 바람이 선선하다.



우리 모두의 고향 This is where we all come from.

저 멀리 나무가 있는 줄 알았다. 기우뚱하면서도 선명한, 낮은 나무가 보이는 줄 알았다. 언덕 너머에 여인의 실루엣이었다. 등에 한 가득 볏짚, 나뭇잎들을 이고 지며 인상을 쓰고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기우뚱하도록 오늘도 걷고 또 걷는 에티오피아의 여인이었다. 그들에게 노동은 일상이다. 가축은 재산이다. 자연은 벗이고 외국인은 돈이다. 복잡한 것 없다. 오늘도 걷고 일한다. 물이 부족하다. 이것은 좀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아직 푸르디 푸른 나라이다.  살찔 겨를이란 없다. 화나면 화내고 웃기면 웃는다. 처참하지 않고 처량하지 않다. 이방인을 궁금해하고 또 웃어준다. 색깔이 강한 애국인만 사는 이곳은, 몰라도 가난해도 아파도 당당하다. 내가 상상한 기근은 이곳 사람들을 상징할 만큼 만연하지 않다. 분명 쉽지 않은 살림살이이지만 내가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너무 싫기도 한 곳이었는데 정이 들었다. 여인과 아이들, 다른 달력과 다른 시계, 다른 세계, 고집불통 그리고 기묘한 그들만의 음악의 나라, 물 한잔 현지인 가격에 사본 적 없는 나라, 에티오피아. 그들은 가난하지만 서럽지 않다. 남루하더라도 우울하지 않다. 그리고 결국엔 돈보다 자존심이다. 버스를 타면 엉덩이가 아플 지언정풍경이 지루하지 않다. 에너지의 땅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렸다. 그저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셔보고자 이곳에 왔고, 마지막 한잔을 마시고 나는 케냐로 향한다.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커피가 시큰했나. 그런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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