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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 #21
<탄자니아>  향수병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해안을 찾아

“나이스 라하. 모야지냐니타” 스와힐리어와 새소리가 넘친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대화는 마치 각자가 각자의 전화를 하는 듯한 물결이 자주 겹치는 리듬을 타고 흐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면 아프리카의 상징 신비스런바오밥 나무가 차창밖으로 지나간다. 마을에 정차하면 버스 주위를 둘러싼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감자칩, 과자와 음료수들이 들썩인다. 버스 창가 사이로 손을 높이 올려 들고 과일이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버스를 둘러싸고 버스 안에 앉아서 물건을 사는 탑승객의 풍경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주유소에 들르면 그곳에서 짐을 나르는 어떤 아이는 ‘이경환’이라 한글로 쓰여있는 하얀색이었으나 이제는 더러움이 범벅인 꾀죄죄한 체육복을 입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한글에 정겨움을 느끼며 저 체육복이 가진 역사를 상상한다. 어디서 어떻게 돌아 여기까지 와서 저 옷은 여기에 왔을까. 아이는 저게 어느 나라 글씨인 줄 알기나 할까.


길 거리에는 이파리와 열매가 없는 그냥 나무대기 같이 주욱 뻗기만 개성이 잘려나간 야자수 나무가  여기저기 서 있다. 길가에 당나귀가 죽어있고, 불현듯 한국에 있는 누군가의 안부가 걱정된다. 지대가 낮아지면서 더위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망고와 야자수가 풍성한 땅, 아프리카의 해안을 찾아 가고 있다.


Your journey is seemingly an incredible odyssey through the realms of this beautiful planet!

너의 여행은 마치 이 아름다운 행성의 영역을 통과하는 놀라운 오디세이와 같아!



아프리카의 바다 마을

팡가니 Pangani

12월 팡가니 적도에 가까운 야자수가 우후죽순인 뜨거운 바다에 와 있다. 그리고 더 바랄 것이 없음을 느낀다. ‘둥근 지구’를 몸소 느끼며 인도양 너머를 바라본다. 서 인도에서 인도양을 바라보며 아프리카를 상상했었는데, 이제 동아프리카에서 인도양을 바라보며 지난 인도에 있었던 자신을 추억한다. 수평선이란 것은 참 아득한 것이라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래서 수 많은 탐험가들이 바다를 건너고 땅을 넘어 다니며 그 상상의 영역을 만나려 했을 것이다.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아무리 집에서 멀리, 또 오래 떨어져 있어도 어떤 밤에는 고향을 꿈꾼다. 낯선 이국땅에서 모국어로 꿈을 꾼다. 그 너무나 익숙해 원래 그곳에 계속 있었던 것만 같은 친숙함의 세계에 있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너무 낯설게도 나는 타국에 있다. 바다는 쉼 없이 끊임없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이 순간과 풍경을 오래 살아야 할 의무감에 빠진다. 역동적이고 강렬한 수평선이 펼쳐져 있다.

시골마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중 라쉬드 Rashid라는 탄자니아 청년과 대화를 하게 되고, 그의 가족들을 만난다. 스와힐리어를 호탕하게 쓰는 그의 엄마와 이모 그리고 딸과 사촌들(대부분이여성)은 초저녁에 밥을 먹으며 나를 응시한다. 우리는 라쉬드를 통해 유쾌한 대화를 한다. 대부분 나의 신상과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무슬림인데 여자인 나에겐 더 솔직한 자신들의 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마당 야자수에서 코코넛 하나를 따 반을 갈라 준다. 인심을 내어 준다.



그 다음날도 그곳에 방문해 빨래를 돕고 여덟 명의 어린이들과 네 명의 아줌마들 그리고 라쉬드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역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다. 노래를 불러주고 노래를 듣고 그 집 살림살이 구경도 하고 앨범도 구경하면서 느린 오후를 보낸다. 그들은 내 머리를 아프리칸식으로 따주고 나는 그 집 호탕한 엄마 하리마 Halima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낄낄대고 웃으며 많은 고민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은 시계 초침을 재어 효율적으로 돌아가던 도시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타오르는 대지,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누워있고 대화를 하고 느린 삶을 살고 있다. 이슬람에 관련된 영어로 된 책자를 건네며 이런 저런 설명도 덧붙여 준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를 꿈꾼다. 내가 만난 많은 아프리카의 청년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사랑하며, “WeAfrican우리, 아프리카인”이란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지만, 다른 나라에 살고 싶어 한다. 다른 대륙을 꿈꾼다. 아마 나도 그래서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막연하게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우리를 꿈꾸게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관없다. 그건 나중에 얘기할 희망사항이고, 지금이 순간에 우린 그저 한참을 웃고 떠든다.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서로 보여주고 카메라로 장난을 친다.


아프리카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소소함과 진심이 담긴 만남이 필요했을 뿐이다. 어떤 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순수한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진심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추억거리가 된다. 이것은 얄궂은일상이 겹겹이 쌓여가며 더 오래 서로를 알아가며 만들어가는 생활적 관계가 아니라 왔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주는 호기심과 관심이고 다만 아쉬움만을 남기는 관계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중하다. 이렇게 그 사람들이 그 장소와 함께 한 장의 기억의 사진에 담긴다.



12월의 더위, 향수병 homesick

다르에살람 Dar es Salam(Heaven of Peace, 평화의 천국)

아프리카 와서 처음 한국 사람을 만나고, 오랜만에 한국말을 할 수 있다.


37도를 육박하는 더위, 바다에 의한 높은 습기, 끊임없는 갈증이 몰려온다. 그늘에 있어도 땀이 난다. 선풍기 앞에 계속 있어야만 어느 정도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끈적하고 짜증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더위를 먹어서 멍한 날이다. 나는 이 먼 땅 아프리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마음속 간절히 선풍기가 돌아간다. 가방을 가볍게 할 핑계로, 더 긴 자유로운 활동 시간(낮 시간) 위해 내 여행은 계속 여름이었다. 여름을 찾아서 나라들을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적도와 해발고도 0에 가까운 곳에서 땀을 삐칠 흘리며 그늘에 앉아 바람도 없이 그대로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끔찍이도 12월의 겨울을 그리워한다. 손 발이 꽁꽁 얼어붙을 거 같아서 바깥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실내를 찾아 헤매던 한국의 겨울, 그래서 들어간 커피숍에서 비싼 코코아 한잔의 사치가 너무나 그리운 시간이 이 더위와 함께 찾아왔다. 갑자기 향수병에 걸린다. 추운 겨울이 오기를 기대한다. 추운 곳에 가고 싶다. 길거리 군고구마를, 편의점 싸구려 호빵을, 어묵 국을 먹고 싶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 적이 거의 없다. 겨울을 기다린 적도 없다. 늘 한 해가 끝나고 시작하는 시기는 새로움을 주기보다는 무기력함이나 졸업 혹은 이별 등을 겪는 경우가 더 허다했고, 메마른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뱀처럼 똬리를 틀고 동면에 빠지고 싶었을 뿐이다. 늘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가득한 시간을 더 사랑했으므로, 겨울은 결코 선호하는 계절이 아니다. 그런데 겨울을 그리워지게 하는 더위가 나를 덮친다. 지난 모든 겨울들에 있었던 소소한 추억들이 나를 찾아와 노크하기 시작하고, 그 공허함, 우울함 무기력함과 힘없는 태양, 얼어붙은 그 모든 것까지 다 그리워하는 지점이 찾아온다. 한국에 가고 싶다. 모두의 12월, 한국의 겨울에 나는 너무 뜨겁다. 내가 사계절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더 또렷하게 느낀다.  난생처음으로 향수병을 겪는다.



나에게 다르에살람은 바다도 해안도 항구도 아프리카도 인도도 중국도 한국도 아닌, 그러나 질식할 것 같은 더위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선택한 현실을 바꿀 수 없고 이 뜨겁게 고독한 적도를 견뎌야 한다. 땀이 주룩주룩 나고 더 없이 초라한 행색이다. 아침에 구름이 껴도 몸의 온도보다 뜨거운 기온에 땀이 대책 없이 솟구친다. 먼지가 흩날리는 도로에 차들이 너무나 많다. 그 긴 도로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끼어 기다림에 지쳐간다. 다르에살람에서보고 싶은 것도 처리할 것도 있지만 주말을 기다리기엔 그 도시를 전혀 사랑할 수 없었다. 아주 짧은 방문을 남긴 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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