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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22
<탄자니아> 무작정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Forward: 또 한 발짝

다르에살람 Dar es Saalam 에서 말라위 비자를 받아 갔어야 했지만, 고지대, 서늘함을 찾아 무작정 그저 지대가 높은 곳으로 향하며 그 더위의 도시를 탈출한다. 또 모르는 곳으로 그저 내달린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이 받은 축복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알 수 없기에 두렵지만 또 알 수 없기에 희망할 수 있다. 모르는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지, 기쁨을, 슬픔을 찾을 지 알 수 없지만, 어디서든 사는 곳은 비슷했다. 때로 상상과 너무 달라 꿈과 열기는 아프게도 현실에 닿지 못했고, 고독과 상처로 돌아왔다. 그것은 너무 컸던 상상의 대가를 치르고 시간의 소독약을 차갑게 바르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마음속에 또 다른 열기가 들끓는다. 그러면 다시 어쩔 수 없다. 상상이 경험이 되고 때로 상처가 되고 딱쟁이가 눌러앉아 새살이 돋을 때까지 부딪치는 수밖에.



MODERATO: 보통 빠르기. 

이링가 Iringa

이링가, 기어이 서늘한 산 중턱에 오르고 숨을 돌린다. 높고 붉은 땅 위에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산다. 모든 것이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조금은 부실해 보이는 집과 마을. 이제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그늘에 앉아 바나나를 먹는 것만으로도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해지는 태양 볕과 자두를 파는 아이, 골목골목 사람 사는 냄새가 밀려온다. 이들은 강인한 태양의 사람들이라서일까, 아니면 짧은 수명 탓일까,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을 보기는 참 힘들다. 


숙소를 찾고 마을 산책에 나선다. 여행자 발길이 적게 닿은 구석진 곳으로 갈수록 현지인의 진짜 자연스러운 생활이 나타난다. 산책을 멈추고 동네 어귀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본다. 후두둑 소낙비가 내리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비 피할 곳으로 손짓해주고 우리는 손짓 발짓으로 서로에 대해 몇 가지 것들을 알 수 있다. 얘기하고 웃는다. 동네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나 웃음이 유쾌하다고 모든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오늘 그녀의 친구 어머니가 죽었다. 그녀는 슬쩍 쓴웃음을 짓다 다른 유쾌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장대비가 후두둑 내린다.


물키Mulky

더위를 식히고 여행에 쉼표를 찍으러 이링가를 서성인다. 인터넷 카페에서 컴퓨터를 사용해 파일을 옮기고 금액을 지불하러 카운터로 가는데 익숙하고 낯선 음악이 흐른다. 처음 듣는 가락에서 한국말 가사가 흘러나온다. 이 작은 탄자니아의 인터넷 카페에 한국사람이라도 있단 말인가? 카운터에 앉은 그녀는 한국 드라마를 통달한 탄자니아(소말리아 출신) 여자 물키Mulky다. 키가 크고 모나리자와 같이 눈썹 숱이 없고 코가 낮고 눈은 초롱초롱하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몇 가지를  이야기하게 되고, 천연덕스럽고 너스레 좋은 그녀는 한국인인 나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녀는 화끈한 말투로 거침없이 술술 영어를 한다. 머리카락을 가린 무슬림 옷차림의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데 아이를 가진 유부녀다. 그녀는 나도 잘 모르는 한국 연예인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여주며 누구의 팬이고 어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며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다. 발음도 좋다. 

‘안녕하세요.’, ‘친구’, ‘예뻐요.’ 


이링가에 머무는 동안 그녀와 몇 차례 만나 한국과 탄자니아, 그리고 그녀의 고국인소말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 소말리아에서 이곳 탄자니아로 건너와 자라났으며, 할머니와 사촌들과 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둘러싸인 집에 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소말리아 사람들이다. 그 집은 세 가구가 가운데 마당을 같이 쓰면서 ‘ㄷ’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돌아가신 그녀의 부모님 사진과 그녀의 집에 있는 한국 드라마 CD를 내게 보여준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며 가족 모두가 아무런 자극적인 정보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연예인 이야기에서 성형수술에 관한 대화를 하는데 그녀는 한국은 참 좋은 나라인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인다.

 ‘탄자니아에서는 많이 아프면 케냐의 나이로비나두바이로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하는 데, 한국은 의사가 많아서 성형 수술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 


그녀의 남편이 다르에살람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고소한 맛의 쌀밥과 몇 가지 반찬으로 소말리아 음식을 대접해 준다. 나는 다르에살람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가 건네준 한국 라면을 끓여준다. 처음 라면을 먹어본 물키는 감탄사를 계속 쏟아낸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인터넷 카페로 일을 가는 그녀는 내가 만났던 그 어떤 탄자니아 사람보다 영어를 잘했고, 다른 문화에 열려 있는 유연함과  호탕함그리고 가족을 돌보고 책임지는 책임감까지 지닌 강한 여성이다. 그녀는 한국말을 배우며 언젠가 한국에 와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나를 배웅하는 물키, 우리는 한국에서 꼭 보면 좋겠다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또 다른 이동

떠돌아 다니다 보면 안정을 찾을 만한 어떤 공간과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리고 명확한 장소에 대한 목표의식이 없을 때면 여행은 더더욱 충동적이 된다. 혼자 여행하는 나로서는 낮에 도착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대체로 이 전 마을에서 숙소를 정하고 새로운 곳을 향한다. 숙소를 구하기는 아침이나 낮에 최대한 안전하고 편안하게 구하는 것은 중요했고, 저녁이 되어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는 것은 항상 피했다. 특별히 국경을 넘는 경우 숙소 예약이나 픽업, 예상 도착시간을 모른 채 무모하게 가진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여행이 충동질 해올 때면 그냥 두려움을 그대로 껴안은 채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라위로 가는 날은 그러했다. 


사실 가난한 나라이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 이외에 말라위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그저 아름다운 말라위 호수를 보고 싶었다. 붉은 집들 허술한 지붕바나나 나무와 아름다운 산 능선을 넘어 구름이 끝나는 곳에 국경이 있고 물줄기를 만나 말라위에 닿는다. 국경에 있던 탄자니아 환전상들은 말라위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며 그들의 가난을 비웃는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와 더위가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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