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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08. 2015

야생 고양이 #23 <말라위> 안녕 말라위?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말라위 Malawi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 The warm heart of Africa

말라위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야 We are the warm heart of Africa.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는 그 사람들은 전쟁과 갈등을 싫어하고 소박하 고착하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나라에 자원과 인구도 적으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오후 5시쯤, 충동적으로 국경을 넘어 가까운 마을 카롱가까지 가기 위해 낡고 허술한 12인승 합승 봉고차에 올라타면 빽빽이 차오른 말라위사람들이 인사한다. 뒤뚱거리는 차창 너머로 바나나 나무들과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쭉 뻗은 아스팔트 양방향 1차선이 곱게 깔려 말라위의 남북을 관통한다. 대형 버스가 매우 적고 가로등이 없는 도로와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외국에서 온 중고 봉고차, 그 마저 숫자가 적어 도로에 다니는 대중 교통을 만나기란 너무 어렵다.  봉고차는 전부 일본 등 타지에서 쓰다 버려진 것들이 재활용되고 있다. 단 하나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승차 인원을 넘기는 것은 당연한일이고 후진해서라도 놓친 사람들을 다 태우고 차를 꽉 채운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만 없다. 이동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감수해야 할 일상이다. 그 긴 도로에서 합승 봉고차 이외 다른 차량을 보기란 어렵다. 심지어 가축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뻥 뚫린 길이 펼쳐져있다.


탑승 중 짧은 대화로 말라위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 경제를 걱정하지만 애국심이 가득하다는  것쯤 알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영국령이었던 말라위는 비교적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서로 마치 원래 알던 사이처럼 편안하게 대화하고 온화하게 웃는다. 덜컹덜컹 2시간쯤 갔을까, 카롱가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새 석양은 지나가 고어둠이 밀려와 있다. 짐을 챙기고 돌아서면 모두들 각자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밤에 도착할 것을 알고도 무작정 왔지만 당황스럽다.


계획 없음

카롱가 Karonga

이링가에서부터 1000m 넘게 내려온 대지는 다시 더위로 불타오른다. 승합차에서 내려 짐을 챙기다 시간을 지체해 오면서 짧은 대화를 했던 그 누구와도 인사하거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질문하지도 못한 채 터미널에 남겨졌다. 여행 책자를 뒤지며 방향을 찾으려 애쓰지만 인적이 드물고 저녁가로등이 없는 카롱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식은땀이었을까, 습한더위 때문인가 땀이 송글 송글 흐른다.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잘 보이지 않는 그 동네에는 우기로 인해 진흙바닥에 물이 가득하다. 지나가던 청년 무리를 붙잡아 길을 묻자 그들이 길 안내를 해주겠다며 앞서간다. 낯선이 들을 멀찍이 따라가다 컴컴해서 어디로 가는 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하자 무서워져서 몰래 숨어버린다. 그리고 극적으로 찾은 빨간 벽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는다. 몸 누일 곳이 주는 안도감. 그곳은 굉장히 지저분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이것저것 가릴 신세가 전혀 되지 못해서 그대로 그곳에 머물기로 한다. 2000원이 안 되는 초 특가 숙소다. 그 더운 날 하필이면 하수 처리 시설이 고장이 나 물이 나오는 곳은 어디에도 없고(물이 귀한 나라이다.) 방 문도 간신히 잠겨 신변에 위협을 겨우 모면할 수준이며, 말라리아를 보호해줄 모기장도 없고 선풍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불은 겉보기에 괜찮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퀴퀴한 위생상태다. 그래도 가로등 하나 없는 길거리에서 홀로제대로 된 숙소를 찾기 위해 떠도는 것을 상상하면 이 편이 훨씬 나았다. 계획도 없이 오늘 무엇을 볼지 모른 채 그저 모험을 했고 그런대로 나 자신이 얼마나 능글맞고 넉살 좋은지 볼 수 있었다. 가로등 없는 길을 걸어가며 숙소를 찾을 때 불안도 나를 찾아 왔지만, 결국 나 자신을 믿는 힘과 운들이 나를 도와 나는 안녕하다. 그렇게 말라위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늦은 시간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불안을 자극하는 반면  그다음 날 아침에 그곳의 실체를 보여주며 신선함을 건네주기도 한다. 카롱가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걷다 보면 예쁘게 다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진다. 분홍색 고운 살결로 자신의 모처를 떠나 대지로 내려온다. 망고는 어떤 주인이 키운 나무에서가 아니라 그 수없이 커다랗게 줄줄이 매달려 있는 자연스러움이다. 갓 떨어진 망고의 맛! 말라위의 호수는 에메랄드 빛은 아니지만 소박하고정 겨우며 짜지 않다. 겉보기에 호수는 바다와 비슷하게 드넓고 파도 치지만 사실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아프리카 사람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말라위 사람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길거리에는 망고를 한 가득 담아 머리에 지고 가는 소녀들에게 망고를 구매한다. 그리고 커다랗고 맛있는 망고를 길거리에서 우적우적 씹다 보면 얼굴과 손에 끈적함이 가득 묻어난다. 길거리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는데 어떤 아주머니는 나에게 자신의 집 수도꼭지로 안내해 준다. 망고를 깨끗이 맛있게 먹는 법은 무엇일까. 이곳은 물 부족한데 마음은 부족하지 않다. 자전거들이 돌아다니는 여유로운 동네에 비가 온다. 우산은 흔치 않은 물건이다. 더우면 옷을 벗고 수영을 하고 궁금하면 쫓아가 관찰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악의 없는 사람들은 내게 따뜻하지만 때로 조금 지나친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골마을에 동양인이란 흔한 일이 아니었나 보다. 동네 교회구석에 앉아 고요히 책을 읽는다.


“여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이라는  고통받는 편력군대 속으로 던져 담금질하여 부드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실컷 절규하게 놔둔다. 나는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완전히 잠기는 것, 야생성, 우리의 현은 지구와 똑같은 음높이로 맞추어져 있고, 우리의 리듬은 달의 온 구석구석처럼 우아하여 불가항력적이다. 학교는 세속적 만족을 지향하는 조심스러운 삶을 가르치는 훈련과정이지는 않은가. 감정은 살균되어 나왔다. 삶에 제공된 쾌적하고 수월하고 편리하고 편협한 방식에 대해 불가피하고도 확고한 거부반응, 그것은 인생을 주저하는 숨 막히는 불감증의 삶. 건물, 가게, 돈, 마을, 계획 없이 진정으로 산 때에 비록 좁은 오솔길이었지만 막힌 곳은 없었다. 순수하고 생생한 세계를 향한 충동.”  

스페인 기행–니코스 카잔차키스




순수하고 생생한 세계를 향한 충동

정전은 쉽게 되고 몇 시간이고 전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더위가 몰아 닥치면 그냥 부끄럼 없이 자연스럽고 그대로 호수에서 깔깔대며 웃고 논다. 가슴을 내어둔 여자아이들의 영어는 짧고 호기심은 많다. 나무 기둥을 베어 그 안을 패 카누를 만들어 고기 잡이를 나서고 동네 애들과 실컷 뛰어놀면 그만이다. 시장에는 채소와 과일이 가득하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동네 빵집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 서 기다린다.


붉은 땅에 커다란 나무들이 울창하다. 나무 집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지붕은 지푸라기로 막아 둔 황색 벽돌집들이 있다. 신기한 점은 아주 가난해 보이는 동네에서도 좋은 성능으로 음악을 뿜어대는 스피커를 때때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꽤 알록달록하고 패턴이 있는 화려한 천을 몸에 두르고 다닌다. 무릎을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고 다 찢어지고 헤졌어도 과거에 가장 멋스러웠을 모양의 옷을 입는다. 자전거는 일상의 이동수단이고 자전거 택시에는 색색의 바람개비며 뒷자리 쿠션의 독특한 모양, 여러 가지 색상과 패턴 장식으로 시선을 모은다. 마을 어귀 어디엔가 어딘가에서는 최신 나이지리아 음악이 흐르고 맨발로 뛰어다니던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춤을 춘다. 가난 보다 더 강렬한 음악이 흐른다. 더욱 현재 그 순간을 즐기기에 충실하다. 말라위에서의 삶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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