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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11. 2015

야생 고양이#26
<말라위> 전기 없는 마을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르와르웨Ruarwe의 날들

마을 주민 터전과 좀 떨어져 있는 우리가 머물던 롯지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다만 저녁에 아주 약한 태양력 전기만으로 겨우 화장실을 갈 정도여서 밥은 해먹어야 한다. 롯지에는 낭만이 있다. 개미가 돌아다니는 나무 테이블과 고동색 재떨이, 대나무결로 짜여진 의자, 아프리카가 새겨진 나무 기둥, 인간미 넘치는 각각의 토기들과 못쓰는 카누를 개조해 만든 책장, 화분, 짚들로 이루어진 높은 지붕, 자연 색과 아프리칸식 추상적 문양의 쿠션, 밤마다 저 홀로 연주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피아노와 낭만이 넘치는 촛대들, 돌로 지어진 주방.


우리가 살고 있는 롯지에 듀이 아저씨는 수풀 길을 건너 빵 배달을 온다. 우리에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일상이다. 아침에만 판매하는 갓 구운 빵은 미리 예약해야지만 살 수 있다. 양쪽 눈이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는 듀이아저씨는 기묘한 매력의 웃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조금 단절된 듯한 영어가 친근하다. 그 스콘 빵에 티를 끓여 마시면 우리의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저녁에는 장작을 골라서 불을 피우고 부채질을 하면서 말라위 시골 식 밥해먹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나무를 태우고 숯을 만들고 뜸을 들이고 밥하는 법을 배운다. 두뇌에서 산소가 부족해 현기증을 느낄 때까지 열심히 숨을 내 뱉으며 나무에 불 붙이기를 시도한다. 역시나 쉽지 않다.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나서야 대충 물이 느리게나마 끓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그러면 다시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콜록 이면 한 끼 식사를 만들 수 있다. 불길은 제가 알아서 빛을 뿜어낸다. 밥 한 끼를 하는데 많은 노동력이 투입된다. 전기가 없는 곳에서는  그동안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일상을 입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다. 


낮에는 센터에서 리처드 다우든의  <아프리카>를 읽는다. 

They live for the moment and that's the feature of poverty.
그들은 순간을 위해 살고, 그것은 가난의 특징이기도 하다.

Richard Dawson <Africa>


비가 오려나 수평선이 흐리고 짙다.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 시골, 전기가 없는 곳에서는 일찍 자고 태양이 뜰 때 일어나는 일은 자연스럽다. 호수 물결에 암석이 침식된다. 지구의 수명은 꽤나 길어서 멈출 줄 모른다. 저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다시 상상의 영역이 된다. 가짜 같은 풍경이 판판히 내 망막에 걸쳐진다. 나는 1월의 더위에 살고 있다. 연두색이파리의 싯푸름이 싱싱하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땅은 푸르지만 척박하고 물은 지천인 듯 보이는데 깨끗한 물이(물 정화시설) 부족하다. 말라위는 좀 다르다. 그냥 보면 바다 같은 데 바다가 아닌 말라위 호수처럼, 그냥 보면 아프리칸인데 내가 겪어본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그들은 느긋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니고 있다. 그리곤 자신들을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고 부른다. 


밟힌 개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또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를 받는다. 개미를 죽이지 않고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다만 아등바등 살아간다. 안전지대는 없다. 운명 아닌 운명,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손을 비비는 파리, 먹이를 찾아 수풀을 헤매는 닭, 어미를 찾는 어린 염소, 아득히 아이 울음소리, 옅은 귀뚜라미 울음과 시냇물 흐르는 소리, 카이럴의 코 먹는 소리, 새들의 스테레오  노랫소리, 내 숨소리가 어우러진다. 상처 난 내 다리를 다독인다. 모기에 물린 자리를 긁은 것이 말라위 호수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낫지 않은 지 오래이다. 아프리카 여행이 35일 남았다. 

일상의 균열: 다른 세계

영국 음악이 흐르는 귀뚜라미의 밤이 찾아온다. 흔들리는 촛불이 나의 위치를 말해준다. 그리고 초가 조금씩 닳듯이 내 이 꿈들도 언젠가 깨어나 또 다른 현실을 말해줄 것이다. 양쪽 코 볼을 뚫은 이탈리안 히피와 말라위 안 히피 그리고 여행 계획 중인 코가 막혀 숨이 거친 룩셈부르크에서 일하고 아프리카 6개월 여행 중인 말레이시안 카이럴과 대화가 펼쳐진다. 허리가 아프도록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대한민국의 우울한 초상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촛불이 흔들리는 곳에 개미가 기어 다닌다. 시간이 촛농을 만들고 밝음을 불태 운다. 기울어진 촛대는 중력을 말해주며 녹아 내린다. 그 수많은 낭만 여행자와 의미를 찾아 고국을 떠난 이들의 삶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세계들이 충돌하고 대화하며 빛을 발한다. 모두들 다른 세계를  찾아다니고 있다.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 화장실을 갔다 오는 길에 하늘을 본다.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과 그 옆에 무지개를 보았다. 부연 하늘 너머 오리온이 보인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밤이 펼쳐진다.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상태로 그 동그란 달빛 무지개를 응시한다. 밤에 피어나는 무지개는 생전 처음 본다. 그런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밤, 달과 무지개 그런 친숙한 것들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신비를 만들어낸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며 신비로움을 기억 창고에 담아보려 애쓴다. 달빛 무지개가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는 것만 같다.

마요카 Mayoka!(안녕하세요!)

은바야 마삼비로 센터에서 일하는 선한 미소를 가진 똑똑한 레비의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싶었다. 그는 나를 초대하기 위해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갑작스레 떠나게 된 내 사정을 말하며 그의 마을을 방문하기로 한다. 동네 커다란 바오밥 나무를 지나 작은 산 두 개를 오르내리며 40분쯤 걸으면 그가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 가파른 길을 매일 같이 오고 갔을 레비를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안일한지 느낄 수 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나는 땅콩과 음료수를 대접받는다. 그 동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나를 구경한다. 마요카! Mayoka! 차량 이동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핸드폰이 터지는 곳을 찾아 언덕을 올라야 하는 마을에서 음료수는 사치품이다. 집은 단순하다. 레비는 아내와 3명의 아이들과 산다. 우기 때 비가 새서 걱정이라는 그는 지푸라기와 진흙으로 지어진 지붕이 아니라 양철로 된 지붕을 얻으려 열심히 일한다. 호기심 어린 동네 아이들이 20명 정도 모이고 우리는 웃고 떠든다. 수줍은 미소는 여전히 천진하고 영락없는 시골마을에서 단순한 하루하루가 흐른다. 


자원봉사자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이곳을 방문한다. 짧은 기간 그곳에 머무른 나는 농사와 페인팅을 돕기도 하였지만, 구체적인 역할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곳의 경험은 다음 기회를 위한 배움의 장소였다. 새 소리에 아침을 깨어나 푸른 호수 위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고 물결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고, 아름다운 신념을 가진 사람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뜨내기 같이 그저 떠나가는 미안한 마음을 슬쩍 놓아두고, 모두가 계속 희망하고 거친 삶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를 기원하며 다시 배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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