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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12. 2015

야생 고양이#27 <말라위> 망고 미소와의 작별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레닌 Lenin

레닌을 만난 것은 리롱궤Lilongue 버스터미널, 좀바로 향하는 대형버스 안에서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꽤나 혁명적인 인물이 되기를 기원했나 보다. 인도 남쪽 캐럴라 출신인 그는 천주교 선교활동과 주교를 위한 과정 공부를 위해 이곳 말라위에서 지낸다. 인도 안에서도 천주교민의 인구가 극히 적은데 아프리카 이 먼 땅 말라위까지 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급하지 않으며 인내심 많고 여유롭다. 정해지지도 않은 그 추상적인 버스 출발 시간을 마냥 기다리는 동안 지쳐버려 입이 삐죽 튀어나온 나와 달리 레닌은 끝까지 여유롭게 다른 말라위 사람들을 살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비 오는 날 이미 만석인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온갖 구석이 짐과 사람으로 가득 들어 찰 때까지 기다린다. 버스는 기다리는 내내 시동을 켜고 있었는데 레닌에 말에 따르면 시동을 켜두지 않으면 사람들이 버스가 곧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4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빈틈없이 가득가득한 대형 버스가 뒤뚱뒤뚱 움직인다.

레닌은 자신이 본 말라위 가난의 이유를 말해주었다.


1. 동기 부족(그런대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2. 산업 부족(일자리나 수출 없는 수입 의존형 경제구조, 농업 의존) 3. 부정부패의 정부 4. 의사 부족(늘 말라리아 약만 제공할 뿐이다.) 5. 건강의 이유 HIV/AIDS



쉼.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여행을 하면서 가장 필요했던 것과 아닌 것을 정리하고 좀Zomba 에서 쉼의 시간을 갖는다. 밀린 빨래로 오전을 보낸다. 구정물이 줄줄. 물이 부족한 국가인데 빨래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착한 사람들은 웃으며 물을 받는 것을 도와준다. 상쾌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호스텔 빨래 줄에는 나의 옷가지가 줄줄이 달려 있다.

하루를 즐겁게 하는 것은 찢어진 지퍼를 스스로 고치러 지퍼를 사고 꿰매는 시간, 그리고 너덜너덜한 시계줄을 수리공에게 맡겨 예쁘게 고치는 시간이다. 그런 소소한 일과들이  정신없이 이동하고늘 부산했던 시간 위에 잔잔한 일상을 쌓아준다. 시장에 가서 과일과 채소는 얼마인지 구경하고 사람들 은어 떤 얼굴로 장사를 하는 지, 쇼핑을 하는지 만나고 나면 별 대단치 않은 하루이지만 상쾌하고 즐겁다. 시장에는 신선한 파인애플과 망고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흥정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얘기들이 오간다. 사진을 뽑으러 사진관에 들리면 ‘코닥필름’ 글씨가 거꾸로 매달려있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글씨를 자연스럽게 거꾸로 걸어둔 것이다. 킥킥대며 그것을  바로 준다. 이런 동네는 심심하지 않다. 순수하게 웃어주어서 고맙다.

망고를 우적우적 씹으며 멀리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으른 시간이 온다. 여행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여행을 꽤 오래 하면서 다 보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그저 하나 하나씩 추억과 의미를 쌓으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농구 비슷한 게임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축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열심히 뛴다. 그들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아니, 이곳에서는 선크림을 팔지 않는다. 그들의 강인한 피부는 나이가 들어도 탱탱하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가 너무 거칠어서 내 머리가 부드럽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머리칼이 너무 가늘고 부드러워 구불거리는 것이다. 내것은 오히려 직모에 가까우며 거칠고 딱딱하다.



안녕 말라위

길다고 생각한 시간은 너무나 짧은 단편소설 같이 응축되어 추억으로 축적된다. 잡으려 했던 모든 순간들은 조금씩 흩어지고 몇 가지 강렬한 이미지만이 머리 속에 남는다. 따뜻한 미소와 달콤한 망고가 있는 말라위에서는 길고 번잡하더라도 상대의 안부를 묻고 웃고, 응답하며 헤어질 때도 적절히 인사하고 떠나는 것은 미덕이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겉치레처럼 보이고 용건이 간단하더라도 그런 예의는 모두에게 요구된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먼저 통하고  그다음에 길을 물어 볼 수 있는 곳이다.‘용건만 간단히’, ‘빨리 빨리’는 이곳에서 무례함을 뜻한다. 그렇게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끝난다. 30일 비자는 만료되고 나는 또 한 번의 국경을 넘는다.

여행에 집중한다고 느낄수록, 다른 집착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이것은 연습이다. 안전지키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살아남는 법, 화를 누르고 타인을 교섭하고 설득하는 능력 기르기, 웃으며 진정시키기, 타협과협상, 다른 식의 생각에 대한 열린 태도, 언어 이상의 교감, 전혀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는 것, 다시 흐름에 자신을 던지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바라보는 것 따위의 연습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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