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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따 Aug 12. 2024

서울에 살던 사람의 서울 한달살기

해외파견을 기다리며

2023년 2월의 이야기


곧 베트남에 파견직으로 일하러 간다. 그것도 몇 달 전 결혼한 남편과 함께. 월셋집 계약 종료일과 파견일 사이에 시간이 떠서 단기 렌트집을 구해 들어왔다. 한 때 번지듯 유행하다 이제는 라이프스타일로도 자리잡은 서울 ’한달살기‘를 이참에 해보게 되었다. 이미 서울에 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월셋집 이사도 조금 일찍 나왔는데, 이사를 약속한 날이 되니 집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이틀 늦게 주겠다고 한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집주인은 친한 사이라 그들은 중간에서 나를 구슬려 어떻게든 집의 비밀번호를 받아내거나, 보증금을 늦게 돌려주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입장이 곤란했는지 나에게 집주인한테 한 번 직접 연락해 주길 부탁했다. 나는 임차인으로서 당연히 월세, 관리비 단 하루도 늦어보거나 양해를 구한 적이 없는데, 임대인은 계약종료일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최대한 정중히 보낸 내 문자에도 임대인은 내 문자에 답장 한 통, 만나서도 미안하다 한 마디가 없었다. 우리는 완고하게 보증금 받기 전까진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절대 구할 수 없다’ 던 보증금은 하루 만에 내 계좌에 입금되었다.


베트남 파견 직전까지 단기렌트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에어비앤비, 리브애니웨어, 삼삼엠투를 돌아가면서 렌트집을 뒤져봤다. 오래되고 성에 차지 않는 집들도 월세 기본 200만 원이 넘어갔다.

파견일이 딱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서 며칠을 잡아야 할지 조금은 고민하다 결국 잠시 빌리게 된 이곳은 연희동의 한 오래된 복층 오피스텔. 풀옵션 집에서 풀옵션 집으로 이사 가는 거라 이삿짐은 이사박스 5개와 캐리어 몇 개가 다였다.


'리모델링하고 첫 입주'라는 말만 믿고 오피스텔에 들어왔는데,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곳곳의 켜켜이 쌓인 먼지였다. 때문에 이사 첫날부터 남편과 나는 함께 열불 나게 청소를 하며 신고식을 했다. 남편은 락스, 베이킹소다, 식초로 곰팡이를 공략했고 나는 청소기와 물티슈로 먼지를 닦아냈다.


청소 상태야 그렇다 치자. 단기렌트를 알아보며 늘 복층에 살아보고 싶었던 나의 사심을 채웠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이곳에 살아보니, 복층은 2인가구가 지내기에는 별로라는 결론이 금방 섰다. 공간분리는 되지만, 소음이 그대로 전달이 되어서 생활패턴이 다른 나와 남편에게 장기적으로는 좋지 못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카펫 처리가 안 된 계단은 상당히 위험하다.

집 상태는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연희동에서의 생활은 좋았다. 연남동이 바로 옆 동네였고 신촌, 홍대입구까지도 걸어서 30분, 버스로는 15분 정도였다. 날씨도 풀려서 숙소 돌아가는 길에 북한산 자락이 보이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졌다.


낮의 연희동 거리는 꽤 한산했다. 이곳에는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카페 레이어드, 이연복 셰프의 중식당 목란,  매뉴팩트 커피가 있었다.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 잘 가지 않았던 홍대, 연남동도 숙소가 가까이 있으니 종종 걸으러 다녀왔다.

하루는 연세대학교 캠퍼스에도 산책을 갔다. 학부 시절, 친구들을 보러 종종 가곤 했던 곳이다. 오랜만의 연대 캠퍼스는 더 예뻐진 듯했다. 나의 모교인 고대가 연대보다 캠퍼스 낭만으론 우세하다고 생각했는데,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그런가, 이제는 결혼한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가- 이날따라 연대 캠퍼스가 유달리 더 예뻐 보였다. 연세대 이름의 ‘연’자는 ‘연희대학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연세대 캠퍼스를 산책하던 이날, 나는 해외파견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연희동과 잘 지내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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