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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강제하기 전에...

어머니의 핸드폰

연로한 장모님이 요즘 핸드폰이 잘 안 된다고 하셨다. 혼자 사시는데 스마트폰이 먹통이면 얼마나 불편하실까 걱정되어, 화면도 크고 성능도 좋은 폰으로 바꿔 드렸다. 폰 지갑은 아내가 골라서 예쁘게 끼워놓았다.


그제 저녁, 어머니 아파트 관리실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셨다. 아침부터 집 전화도 안 되고 핸드폰도 먹통이라서 온종일 씨름하셨다고. 답답한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핸드폰 불통은 보통 막막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 폰으로 몇 번 전화를 해봐도 꺼져있다는 녹음만 들렸다. 며칠 잘 쓰셨는데 왜 안 되지? 괜히 바꿔드렸나? 유심칩이 잘못 끼워졌나?... 오만 생각이 들어도 당장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없었다.


30분 후 어머니 집으로 전화를 해봤더니 받으셨다. 아까는 집 전화도 안된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내일 동네 핸드폰 가게 가서 물어보시라 말씀드렸다.


잠시 후 어머니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자네가 전화했었네?"

엉? 이게 뭐지? 근데 어머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알고 보니 유심칩을 빼낸 옛 폰을 붙잡고 전화가 안 된다고 종일 끙끙거리셨던 거였다. 몇 년 동안 손에 붙었던 폰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장모님의 상태가 심심치 않다. 똑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방금 당신이 한 일도 전혀 깜깜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신다. 한때 html 언어로 홈피까지 만드신 분인데. 잔인한 시간이 야속하다.




어제 강의 피드백을 받았다. 대체로 유익했다는 평 속에 유머가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부정 편향이 발동한다. 유머 없다 -> 재미없다 -> 나는 고칠 수 없다 -> 나는 무능하다 -> 강의를 관둬야지.... 이런 나락으로 빠졌다.


아직 새로운 도전을 포기할 나이는 아니다. 세월이 강제하기 전에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힘내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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