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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Aug 15. 2020

쓰고 뱉다.

내 안의 찌꺼기 처리 방법

공장 다니던 시절, 겨울에 스팀 라디에이터로 사무실을 따뜻하게 했다. 밸브를 열면 치이익 치이익 따뜻한 증기가 돌면서 금방 열기가 올라왔다. 그러다가 가끔 땅 땅 하는 굉음이 들린다.


   난 좀 무딘 편이라 그런 소음이 들려도 무시했는데 내 사수는 달랐다. 사수 신 대리님은 공고 출신으로 공대를 나왔고 실무에 강한 분이었다. 배울 게 많았다.


야, 이 기사. 너 이 소리 뭔지 앓아?
잘 모르겠는데요.
이거 워터 해머라는 거야. 왜 이런 소리 나는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 초년생은 정말 아는 게 없다)
이리 와봐. 스팀을 돌리면 응축수가 생기는데 ....


    결국 스트레이너(거름망)라는 부품에 찌꺼기가 생겨서 순환이 원활치 않을 때 문제가 생기므로 가끔 청소해 줘야 한다는 거였다. 스팀을 잠그고 스트레이너를 분해 청소했다. 과연 라디에이터가 조용해졌다.


    우리 몸은 폐쇄 시스템이다.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처리해서 내보낸다. 그런 와중에 내부 시스템에 찌꺼기가 쌓인다. 찌꺼기가 어느 정도 커지면 흐름을 막고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찌꺼기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다행히 상당 부분 각자 처리할 수 있다. 운동도 좋고 대화도 좋다. 어떤 이는 달달한 먹거리로 푼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쓰고 뱉다'라는 모임에서 공동체적 글쓰기를 통해 찌꺼기를 처리하는 경험을 했다. 수십 년 묵어 나인지 아닌지 피아식별도 안되는 특수 찌꺼기까지 처리할 수 있었다. 글쓰기와 나눔으로 1차 처리된 찌꺼기는 공동체의 수용과 격려로 발효되어 나를 성장시키는 양분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내 속에 감춰져 눌러 붙어있었던 것에 빛을 쐬는 작업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살릴 것은 취한다.


  달팽이가 껍질에서 나와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며 꿈틀꿈틀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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