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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Aug 16. 2021

타인의 아픔

아내의 흉터

'꽝' 하며 머릿속까지 울렸다. 자다가 요의를 느껴 일을 보고 침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문틀 측면에 이마를 제대로 찧었다.


   얼마나 아픈지 한동안 끙끙대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누워서도 이마가 지끈지끈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가까스로 든 잠에서도 계속 머리가 아픈 꿈을 꾸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왼쪽 이마가 살짝 부어올랐다. 건드리면 아팠지만,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며칠 지나자 자연스레 나았다.



   몇 년 전, 나 때문에 아내가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 늘어져 있던 내 노트북 전원선에 아내가 걸려 넘어졌다. 아내는 문틀 모서리에 얼굴을 찧는 순간, 목이 꺾어지며 이제 죽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다행히 어디 부러진 곳 없이 아내는 일어났다. 나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고, 며칠 전 아내가 전선이 위험해 보인다고 얘기했었기에 더욱 미안했다. 당시 성령 충만했던 아내는 원망 한마디 없이 나를 용서해 주었다.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지금도 아내의 오른쪽 눈썹에는 모서리에 찍혀 눌린 자국이 깊이 남아있다. 얼마나 끔찍하게 아팠을까? 그때는 정말 조금도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없었다.


   십 분의 일도 안 될 세기로 내가 당해 보니, 당시 아내가 느꼈을 고통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만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보다. 그 경험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아니 모든 타인은 자기만의 기막힌 경험을 품고 산다. 내 기준으로 그 사람의 고통의 크기를 재단하고,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 이제 잊어버려라.' 같은 덜 익은 충고는 하지 말아야겠다.


   아내 이마의 흉터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너의 걱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일게. 너의 고통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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