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이야기 | 최소를 필요로 하는 비구니 삶
이 글은 브런치북으로 엮기 위해 재업로드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hhy134/18)
월 10만 원.
연 120만 원.
제목의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월급'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정확히 밝히자면 월급이 아니다. 매월 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아도 되는 일정 금액이 주어진다.
나는 수중에 돈도 없다는 핑계로 가계부를 적지 않아서 그런지, 늘 통장이 가볍다. 매월 활동비를 받는데도,그 활동비가 어디로 쓰이는지 모르겠다
매월 초,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주어지는 100,000원.
지출 1. 천일결사비 30,000원
정토회는 천일결사라는 수행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위해 매일 1,000원씩 보시한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 달에 30,000원은 천일결사비로 기본 공제가 된다.
지출 2. 정토회원비 매월 10,000원
내가 속해 있는 정토회의 정회원은 회비 납부를 해야 한다. 기본 공제는 안돼서 CMS 자동 출금을 설정해 놓았다.
지출 3. 후원금 10,000원
좋은 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보시를 하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보시를 안 하면 빈말이니 나도 보시를 한다. 국제구호단체 JTS (Join Together Society)는 기부금이 그래도 들어오는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평화재단은 오히려 후원금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5년 넘게 평화재단에 매월 1만 원씩 후원하고 있다.
지출 4. 법회 보시금 5,000원
매주 수행법회에서 법회 후, 최소 1천 원을 보시한다. 부처님 당시, 법문을 듣기에 앞서 공양을 올렸듯이 우리는 법회를 들은 뒤 보시를 한다. 한 달에 수행법회는 4-5회. 5,000원은 법회 보시금이다.
지출 5. 특별 법회 보시금 2,000원
특별 법회가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성도재일법회, 백중기도, 동지법회, 출가열반일 등등 위에서 말했듯이 법회를 들으면 보시를 한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2회 있다고 볼 수 있다. 1,000-2,000원.
지출 6. 유튜브 1,500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여러 명과 함께 나눠 쓰고 있다. 그래서 월 1,500원을 지출한다. 여기까지가 고정지출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잔액 41,500원
그 다음은 계절에 따라 유동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내역이다.
지출 7. 간식비 10,000원
추워서 몸 풀러 목욕을 가거나, 더워서 아이스크림이나 그냥 사 먹고 싶어 과자 사 먹거나 경우. 평균 10,000원 정도는 쓰는 걸로 분석된다.
지출 8. 외식비 30,000원
위와는 약간 다르게 기력이 달려서 국밥을 먹으러 가거나, 여유가 된다면 같이 간 도반도 사주고 가끔씩 영양제를 사 먹기 위해 월 20,000-30,000원 정도 사용하게 된다.
고로 월말 내 통장 잔액은 카드를 잃어버려도 카드 재발급이 번다할 뿐, 걱정이 되지 않는 금액이 남는다.
가끔 이런 주제로 얘기를 하게 되면 왜 이렇게 사냐고,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신기해한다. 불안하지 않냐고, 노후는 준비할 생각은 안 하냐고.
왜 이렇게 사냐.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큰 뜻이나 결심이 있는 건 아니다. 정토회의 원칙 - 3무 원칙에 동의가 됐을 뿐이다. 3무란, 세 가지가 없다는 뜻이다. 월급, 휴가, 휴일. 이 말은 각자가 하는 활동의 대가로 월급을 바라거나, 각자가 하는 활동의 대가로 휴가나 휴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의 입장은 이렇다. 나의 24시간과 모든 활동은 공적으로 쓰인다. 나는 이 생활을 함으로써, 공인이 됐다는 입장이다. 휴식도 일을 하기 위해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하고, 밥도 일을 하기 위해 적절하게 먹어야 한다. 나의 모든 활동이 공적인 만큼 지출도 공금으로 쓰이고,영수증을 첨부해 지출결의서를 제출한다.
이렇게 보면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핸드폰 요금은? 병원비는? 보험료는? 새 옷은? 영양제는? 아무것도 안 사나?
절에 몇 년 살다보니 알게 되었는데 절에서 살다 보면 삶이 정리가 된다. 일단 새로 구입하는 물건은 없게 된다. 필요가 없게 된다.
옷은 남이 안 입는다는 옷 받아서 입어도 충분해서 옷을 새로 산지는 10년도 넘었다. 신발? 옷과 똑같다. 뭐 딱히 새로 살 게 없다. 내가 꼭 필요한 물건만 갖고, 필요한데 없는 물건은 좀 시간을 두고 살다 보면
남들이 안 쓰는 물건 갖다 써도 충분하다.
절에서 살다 보면 삶이 정리가 된다는 것의 다른 측면도 있다. 핸드폰을 사용하더라도, 통화의 99%가 업무용 통화이다. 문자, 메신저 등의 연락 90%가 업무다. 그래서 핸드폰 요금은 공금에서 처리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10,040원에 무제한 통화와 문자, 그리고 7GB + a 알뜰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또 나는 신경정신과에서 항우울제를 먹은 지 4년 차다. 2주에 한 번씩 가는데, 이 또한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논의를 통해 공금 처리를 하고 있다. 영수증을 첨부해 지출결의서를 작성한다.
운전도 업무를 위해서 한다. 내가 어딘가에 가고 싶어서 하는 운전보다는 업무로 필요에 의해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면허 적성검사를 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의 운전면허 적성 갱신 수수료도 공금처리를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원하는 지출이 생긴다. 그럼 1차로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해결한다. 돈이 부족하면 내 나름대로 지원받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쓰고, 가족이라고 읽는)에게 부탁을 한다. 해주면 감사합니다! 안 해줘도, OK!라는 마음으로.
불안하지 않냐?
불안하지 않나?
왜 불안할 거라고 생각할까?
결국 돈을 버는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다. 근데 돈이라는 화폐를 교환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다. 흔히들 큰일이 생겼을 때, 돈이 없으면 어떡하냐? 고 걱정한다. 큰일이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면 돈을 구해볼 수도 있고, 돈이 안 구해지면 그 현실 또한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노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이냐?
노후에 대한 최고의 대비는 무얼까. 혹자는 돈이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돈이 아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더욱 편리하고 좋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최고의 노후 대책은, 돈이 없어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불안하지 않는 마음상태로 사는 것이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을 수 있다. 돈이 있어야 안전하다며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나이 들어 돈이 없을 수 있다. 그 길은 언뜻 탄탄해 보이 지면, 결국 불안정해 보인다.
누구는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멋모르고 산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보이겠지만, 나는 지금 나의 현재와 미래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투자'를 하고 있다.
부처님은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음식은 빌어드셨고, 옷은 주워 입으셨다. 그 무엇도 그를 불안하게 하지 못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괴롭지 않고 자유로웠다. 그를 비난하는 자를 마주해서도 마음이 평정했으며, 칭찬하는 자 앞에서 평온했다.
죽음 앞에서도 담담했고, 어제 잠을 자듯, 오늘 생을 마감했다.
출가, 이 길을 간다는 것은 나도 부처가 되겠다는 삶의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