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뱅디 Nov 03. 2023

동생은 스님이지만, 저는 돈을 좋아합니다

언니 이야기 | 비구니 동생을 둔 언니의 투자론

* 제목의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스님"이라고 표현했지만, 제 동생은 엄밀히 말해 승적을 받지 않은 "출가 수행자"입니다.

동생은 무소유, 언니는 풀소유

내 동생은 비구니이다. 무소유를 실천한다.  

난 자본주의의 화신이다. 풀소유를 추구한다.


동생은 명예, 학벌, 돈 등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그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다며 종교로 귀의했다.

나는 돈을 쓰는 것, 버는 것 그리고 불리는 것 모두 좋아한다. 자본주의를 찬양한다.

그렇게 우리 자매는 대한민국의 평균을 맞춘다.




2년 전, 나는 지방 아파트에 투자했다. 전남친이 매수한 분당 아파트가 떡상하는 바람에, 헤어진 후 배가 아파서 투자한 건 안 비밀이다.


중공업이 호황일 거란 기대에 경남으로 갔다. 아파트를 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후 매매, 전세 모두 떨어졌고 계획한 일정에 매도하지 못했다. 나름 첫 투자도 아니었고, 상담, 공부 후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역시 시장은 예상하기 어렵다.


크흡... 가슴이 아리지만 영끌도 아니었고 가진 현금으로 투자한 것이었다. 추가 자금이야 땡겨오면 된다. 그렇게 주담대를 알아본다.


투자한 아파트 근처 카페 뷰. 나들이처럼 임장 갔다 왔다.


나는 사실 "주담대"라 하면, 주담보대출보다 주담보대출가 익숙하다. 내 주종목은 주식이기 때문이다.


주식을 한지 어언 10년이 돼 간다. 10년 전, 첫 월급을 받고 적금 대신 맥쿼리인프라를 샀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주식, 펀드, 공모주, 비상장, 코인, 부동산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의 비중까지 조절한다.


세상의 모든 투자를 다 해본다


현재 내 좌우명은 세상의 모든 투자를 해본다이다. 적은 돈으로나마 나의 성향에 맞는 투자상품을 찾기 위해서다.


일단 주식과는 잘 맞는 것 같다. 난 주종목인 주식으로는 엄청난 장기투자자다. 10년 동안 매도한 기록이 10번이 안된다. 어차피 현금이 있어도 쓸 데가 없으니 플렉스 할 돈이 필요할 때만 매도한다.


하지만 코인 세계에서 나는 달랐다. 단타로 그래프를 보며 시세차익뿐만 아니라 롱, 숏 포지션도 잡아보고, 스테이킹도 해봤다. 피가 마른다. 코인 탈락.


비상장 주식도 한다. 크래프톤 상장 몇 개월 전 비상장으로 매수했다. 상장하자마자 매도했다. 수익률이 꽤 괜찮았다. 음, 계속 시도해 보기로 한다.


당연히 부동산도 한다. 청약은 물론 부동산계의 장타인 재건축부터, 중타인 갭투자, 단타인 분양권까지 한다. 최근 장이 안 좋아서 마음이 쓰라리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쇼핑은 여전히 부동산이다.


재무 포트폴리오와 재무상황표. 난 엑셀 덕후다.


이것저것 맛본다고 굴리는 자산의 종류가 너무 많아졌다.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엑셀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매달 얼마를 어디에 넣고, 리밸런싱을 하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조절했다. 이래 봬도 P이다.


그리고 매년 12월 31일, 혼자 와인을 마시며 1년 결산을 하는 것이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커지는 내 자산을 보며 이젠 쓰는 재미보다 불리는 재미가 더 크다는 걸 안다.


20대에 투자를 시작한 건,
안 하면 아빠한테 혼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세금+주식 전문가인 아빠에게 혹독한 조기 경제교육을 받았다. 20대까지 아빠에게 거의 돈 얘기를 혼나듯이 듣기만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얘기는 천박한 게 아니라고,돈을 좋아하면 돈을 잘 알아야 한다며, 작게는 세금부터 크게는 자본주의의 원리까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잔소리하셨다. 그렇게 “투자는 꼭 해야하는 것”이라고 세뇌받았다.


30대에 들어선 후, 아빠에게 귀동냥으로 들었던 지식으로 차근차근 재테크를 시작했다. 아빠와 난 이제 세금, 미시경제, 거시경제, 주식 포트폴리오는 물론, 주식의 안녕을 위한 세계평화까지 얘기한다. 거의 모든 주제가 돈이다. 우리 사이엔 돈 관련 얘기가 안전지대가 돼버렸다. 다른 주제는 거의 지뢰밭이다.


아빠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이젠 인정한다. 아빠를 닮아 나는 돈을 매우 좋아한다. 이미 갖고 있는데도 더 가지려고 공부한다.


어릴 땐 아빠 닮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나에게 아빠는 돈, 돈, 돈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돈으로 괴롭히는 사람, 전업주부의 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딸들에겐 누구보다 경제적으로 관대했던 사람이다.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직접 물고기도 잡아준다. 나쁜 남편일지언정, 좋은 아빠였음을 이제는 안다. 아빠는 나에게 가장 믿음직스러운 전담 펀드매니저이자, 세무사, 회계사나 다름없다.


나는 아빠 덕에 여유로운 집안을 믿고 투자를 공격적으로 해본다. 잃으면 마음이 조금 쓰라릴 언정, 내 인생은 불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자본주의란 마이너스가 없는 게임이다.


이젠 이 자본주의 시장을 "게임"으로 만들어준 아빠에게 감사하다.


아빠를 닮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난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모든 걸 던져버린 동생의 출가 이야기▼

https://brunch.co.kr/@hhy134/8


▼풀소유의 시작, 나의 미니멀리즘 이야기▼

https://brunch.co.kr/@hannnn/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