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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디 Aug 30. 2024

만 33세의 1인 가구 서울 생활비

언니 이야기 | 비구니 언니의 절약 없는 삶

동생은 비구니로 절에서 활동비로 월 5만 원을 받는다. 반면 나는 속세에서 10년 이상 직장 생활하면서 연봉을 착실히 올려왔고, 부모도 잘 만나 소비를 아낄 이유가 적은 1인 가구이다.


동생은 오늘도 농사짓느라 발이 아파 5만 원 정도 하는 수지침 발판을 사고 싶었나 보다. 당근마켓을 뒤지는데 매물이 없어서 못 사고 있다고 내 동네에서 찾아달랜다. 역시나 우리 동네에도 없다. 그런데 “그걸 뭘 또 중고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라며 새 거 사라고 용돈을 보냈다.


우리는 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너무나 다른 생활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좀 더 본격적인 비교 해보고자 우선 나의 소비를 분석해 봤다.




나의 소비 분석, 월 335만 원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는 대략 180만 원

보험비 13만 원. 실비 보험, 엄마가 물려준 어린이 보험, 내가 따로 든 암 보험까지 총 3개를 납부하고 있다. 전체 소득의 3~5%가 적정 수준이라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적정 범위 이내이다.


관리비 20만 원. 아파트 관리비는 계절에 따라 15~25만 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수도/가스 합치면 1만 원 정도. 에어컨이던 난방이던 딱히 아끼지 않는 편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보일러 폭탄을 맞아서 그래도 조절하려고 한다. 물가를 체감한다.


교통비 10만 원. 출퇴근으로 주로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만 이용하지만, 기후동행카드는 귀찮아서 신청 안 했다. 애플페이가 될 때까지 존버하기로 한다.


통신비 3만 원. 알뜰폰 15기가 1.2만 원과 집 인터넷 1.9만 원. TV는 없다.


구독비 4만 원. TV 없는 대신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유튜브 모두 구독한다. 넷플릭스 빼고 모두 지인들과 나눠서 구독. 유튜브 패밀리 계정을 위해 인도 갔다가 잘려서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로 이민 간 상태다. 이외에도 아이클라우드, 쿠팡, 크레마클럽(예스 24), 와이즐리 제로마진멤버십(회사) 등등 구독하는 멤버십을 합치면 대략 4만 원 정도.


기부금 7만 원.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모교와 동생이 있는 절간에 다달이 기부한다. 사실 귀찮아서 해지를 안 한 면도 없지 않다.



아끼려면 아끼지만 잘 아껴지지 않는 변동비는 대략 85만 원.

식비+식료품 60만 원.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면 아끼지 않는다. 정신적 여유가 있으면 요리를 즐겨해서 마트(쿠팡)를 잘 가고, 멘탈이 털려있을 때는 배달을 시켜 먹는다.


커피 5만 원. 현대인의 피는 3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 니코틴과 알코올을 즐기지 않으니 카페인에 몰빵 한다. 특히 요즘처럼 저가커피 브랜드가 성장하는 시대에, 카페인마저 포기할 이유가 점점 없어진다.


대인관계비 20만 원. 경조사, 생일선물 등등 나의 좁고 깊은 대인관계 유지하기 위한 비용. 이젠 지쳐서 더 이상 새로운 대인 관계를 위해 투자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남은 관계는 소중하다.


병원비 10만 원. 건강이 슬슬 걱정되는 나이이기에 내과, 치과, 산부인과, 정신과를 정기적으로 다닌다. 매달 내과에 가서 엄마에게 물려받은 혈압약을 받는다. 어릴 적 교정의 악몽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 치과가 싫어서 버티다가 충치 9개를 한 번에 치료한 이후로 치과도 부지런히 다니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산부인과 정기검진도 다니고,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정신과도 즐겨 찾는다.


제주도 비행기 9만 원. 1년에 4번 정도 제주도 집에 내려간다. 설날, 추석, 엄마제사, 기타 경조사 1회. 나의 소중한 연차를 아끼기 위해 주말 혹은 초성수기에만 내려가니 1년 제주도 비행기에만 100만 원 넘게 쓰게 된다. 대한항공 도민할인은 성수기에도 10%이기 때문에 저가항공과 얼마 차이 안 난다. 게다가 대한항공이 탑승 게이트가 가장 가깝다던가, 모닝캄 짐이 먼저 나온다던가 하는 소소한 서비스가 좋다. 아니, 사실 난기류 몇 번 세게 맞고 하늘에 계신 우리 할머님, 어머님 찾는 경험 몇 번 하다 보면 결국 대한항공 타게 된다. 비행기표에 많이 쓰네 싶다가도, 내려가면 아빠 찬스로 돈은 거의 안 써서 퉁.



안 써도 되지만, 그래도 돈 버니까 쓰는 사치비, 대략 70만 원.

운동 20만 원. 굳이 분류하자면 사치비용이지만, 고정비, 필수비용에 가깝다. 나의 정신 상태에 따라다니다 말다 하지만, 어쨌든 요가는 내 평생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바디프로필 열풍 훨씬 전부터 개인 PT 5년 받았었고, 1:1 필라테스도 1년 동안 해봤지만 평생 지출하기 어려운 금액이라 그만뒀다. 유행 따라 테니스도 해봤지만 실력 느는 재미가 적었다. 골프는 운동보다 사교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은 어렸을 때 배워 잘 하지만 그냥 재미가 없다. 발레는 내가 “예쁘게” 보여야 하는 게 낯간지럽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요가로 귀결되었다. 가끔 요가가 질리면 공원에 가볍게 뛰러 나간다. 러닝은 공짜니까.


운동 외 취미 20만 원. 요새는 피아노를 다닌다. 하농이라도 미친 듯이 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져 상쾌해진다. 요새는 브람스 인터메조(Op.118 No.2)에 꽂혀서 주말마다 2시간씩 연습 중. 친구들과 꽃꽂이 클래스도 가끔 듣는다. 여름꽃이 겨울꽃보다 저렴하고 다양해서 지금이 딱 시즌이다. 피아노이던, 그림이던, 꽃꽂이던 무엇인가에 집중하다 보면 심신의 평안을 찾기에 꼭 운동 외의 취미를 가지려고 하는 편이다.


가사도우미 12만 원. 격주에 한 번, 4시간씩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한다. 집안일을 해방시켜주는 비용으로 월 12만 원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세탁, 청소는 물론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처리, 욕실, 베란다 청소 등등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을 처리하며 나의 수면시간을 추가 확보한다.


쇼핑 10만 원. 오락가락하지만 지난 3개월 간, 쇼핑은 평균적으로 월 10만 원 정도한 것으로 보인다. 봄, 가을에는 안 사려고 버티다가 여름, 겨울에 참지 못해 지르는데 12개월 평균 내면 10만 원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내 미니멀리즘 신조 유지를 위해 산만큼 기존 옷은 내친다. 최근 1년 간 입지 않은 옷은 창고로, 창고에서 1년 동안 꺼내지 않은 옷은 기부한다. 화장품은 거의 사지 않는다. 화장품을 개발하는 사람이라 회사 샘플 사용하느라 급급하다.


미용 관련 8만 원. 쇼핑은 덜 해도, 미용실, 네일, 속눈썹에는 꾸준히 소비한다. 한때 탈색, 염색, 파마 등 머리에 돈을 엄청 썼었지만 뿌리염색하기 지쳐 결국 덮었다. 피부과는 자금 사정에 따라다니다가 말았다가 하다가 결국 귀찮아서 못 다니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울쎄라처럼 효과가 몇 개월 유지되는 비싼 시술로 화끈하게 지를 생각이다.




이렇게 다 쓰고 남는 돈은 보통 여행이나 투자를 한다.


1월에는 튀르키예 여행 다녀왔다.


2월에 있는 돈 끌어다가 갭투자한 아파트의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고, 공실인 상태로 매도 광고를 올렸다.


4월에는 뉴욕에 다녀왔다. 다녀오고 나서 보니 현금흐름을 잘못 계산해서 입출금 통장에 10만 원도 안 남았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사소한 통장 잔액에 패닉이 왔다.


다행히 5월에 공실로 둔 아파트에 월세입자가 들어오면서 집안 사정 좀 나아졌나 싶었다.


그래서 7월에 친구 찬스로 중고차를 저렴하게 양도받은 후 자동차 보험비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그런데 8월에 월세입자가 첫 달 월세를 내고 바로 잠적했다. 귀찮아서 변호사를 선임해 버렸다.


그렇게 나의 통장 잔액은 다시 사소해졌다. 아무래도 올해 해외여행은 더 못 갈듯 싶다.



나의 20대와 30대를 비교해 보며


지금 내 소비를 분석하니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필요한 것들에 잘 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적인 소비를 하는 30대에 안착하기까지 모두가 그렇듯 나도 내 20대를 바쳤다.


20대를 돌이켜보면 돈 없는 와중에 불필요한 물건에 돈을 썼다. 나의 취향도 모른 채, 그저 버리기에 아까워 온갖 물건을 그러안고 살며 나의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있었다. 결국 각성하고 30대에 들어서며 겨우 처분했다.


잡동사니를 처분하게 된 대장정은 여기서

https://brunch.co.kr/@hannnn/6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시절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행착오였다. 그때라도 많이 소비해 봤기 때문에 나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오히려 그때 소비하지 않아 내 취향을 이제까지 몰랐다면, 더 큰돈을 허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젠 더 이상 어두운 옷을 사지 않고, 밝은 옷을 산다. 난 파워 여름쿨톤이기 때문이다.

보세든 백화점이던 브랜드를 가리지 않지만, 마감과 재질을 본다.

명품백은 산다. 그래놓고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그냥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속눈썹 연장보다는 마음껏 세수할 수 있는 속눈썹펌을 한다. 마스카라 하기 귀찮다.

피아노 칠 때 불편한 네일보다는 샌들 신었을 때 예쁜 페디에 돈을 쓴다. 아예 안 쓰진 못하겠다.

한 달에 30만 원씩 화장품을 샀지만, 이제는 회사 샘플을 주워다 바른다. 내가 필요한 성분이 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쓰지 않았던데 돈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버는 돈을 오롯이 나에게만 쓸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싶어 쓴다.


월 2회 가사도우미를 부른다. 주말에 집안일하는 시간을 아껴 더 자는데 투자한다.

주 1회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하농을 미친 듯이 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주 4회 요가를 다닌다. 몇 년째 아쉬탕가만 하는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는 것을 체감한다.


특히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분야라면 기꺼이 쓴다. 사건이 생기면 변호사를 선임한다. 세무사도 필요하다면 쓴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줄 복비도 흥정하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쓰는 돈은 결국 나에게 더 큰 시간과 돈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돈으로 몸과 마음을 챙겨도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질 때도 있다. 월급은 언제까지나 받지 못할 테고, 가정이 없으니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은 없다. 직장 생활을 이미 10년 넘게 해와서 조금 지친 것 같은데, 앞으로 20년을 더 할 생각에 까마득해진다. 어른들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텨 은퇴까지 다 달았는지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내 인생에서 황금기가 아닌가 싶다.

10대는 하기 싫은 것들만 가득했어서 그립지 않고,

20대에는 불확실성이 가득해서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면,

30대인 지금은 안정되면서도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이 가득하다.




동생의 생활비 5만원은 어떤 곳에 더 알차게 쓰이고 있을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hhy1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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