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뱅디 Nov 11. 2023

동생이 살고 있는 폐교에 갑니다.

동생이 비구니이면 좋은 점

나는 멘탈이 흔들릴 때 찾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사주. 주로 회사일이 힘들 때 간다.

정신과. 주로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 때 간다.

종교. 총체적 난국일 때 찾는다.


난 여전히 마음이 힘들 때 스스로 치유하기까지는 어렵지만,

아, 지금은 정신과/종교/사주를 볼 타이밍이다.

라고 나름 자가처방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익숙해졌다.




나는 주로 회사가 힘들 때, 사주를 보러 간다.


도대체 이 힘듦이 언제 끝나는지,

언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아예 자리를 옮겨야 하는지.

사주는 비교적 확실하게 답을 내려주는 편이다.


주로 힘든 사람만 사주를 보러 가기 때문인지, 당연하게도 언제쯤 이직하면 좋다고 얘기해 준다.

그래서 옮기겠다고 판단한 후 사주에서도 옮기라고 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물론 이직하고 말고, 버티고 말고는 나의 판단이다.


나는 답정너다.




관계가 힘들 때, 정신과를 간다

병원 가면 생각보다 금방 괜찮아지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자주 찾곤한다.


엄마와의 이별, 아빠와의 트러블, 남자친구와의 신경전 등 그 관계의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내가 잠을 설치고, 식욕을 떨어져 일상생활이 힘들 때 찾아간다.

약물은 내가 잠을 잘 수 있게 하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정신적인 어려움을 이겨낼 체력적인 힘을 돌려준다. 그리고 상담을 하면, 생각보다 내 마음은 빠르게 안정을 찾는다.


최근 들어, 계절이 사람의 감정에 끼치는 영향이 꽤 크다고 느꼈다.

겨울이 다가오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 차가운 날씨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러다가 처방약을 먹고 상담을 하고 나온다. 선선해진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호르몬의 노예다.




내 인생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느낄 때 종교를 찾아간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고, 좋은 사람에 둘러 쌓여 있어도 인생은 힘든 법.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때 무작정 간다. 단지, 쉬고 싶을 때 가기도 한다.


그렇게 삶의 의지처가 필요할 때, 나는 동생이 머물고 있는 폐교에 간다.

동생 찬스로 다녀오는 일종의 무료 템플스테이다.


가면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찍는 것 같다.

농사일도 돕고, 공양간에서 밥도 먹는다.

예불 시간과 농사 2시간 빼고는 자유시간이다.


일감은 그때그때 다르다.

동생 따라서 고추를 따기도 하고, 예초기를 돌리기도 한다.

농사일이 아니더라도 수확한 더덕을 다듬기도 하고, 창고 정리를 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농사일을 돕다보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시간이 좀 뜨면 자전거를 빌려서 시골길 바람을 쐬며 달린다.

정말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가 된 것 같다.


동생이 사는 리틀(빅) 포레스트와 내가 배정받은 방

하지만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출가자 마냥 딱딱한 바닥에 침낭 깔고 자는 건 괜찮다.

공기가 차가워 코는 시린데, 등은 뜨거운 극단적인 온도 조절력도 괜찮다.

샴푸, 린스를 못 쓰기 때문에 뻣뻣해진 내 긴 머릿결도 괜찮다.

식초를 실수로 들이부어 시큼한 냄새가 나는듯한 내 머리카락도, 그럴 수 있다.

밤이면 빨간약, 파란약 줄까 하며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푸세식 화장실도 나름 견딜만하다.


내 딜레마는 매일 새벽에 불상 앞에서 드리는 예불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한다.

그때 현타가 온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남은 3박 어떻게 매일 4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지.

아니, 이 사람들은 어떻게 만 배를 하고 여기 들어와 있지. (여기는 출가하려면 만 배를 해야 한다.)

역시 난 속세가 좋다.


아, 난 출가할 만큼 힘든 게 아니구나. 돌아가자.


그렇게 다시 포근하고 따뜻한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 이제까지 힘든 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동생이 스님이면, 내가 살고 있는 속세에 감사하게 된다.



▼ 동생이 폐교에서 살고 있는 이야기 ▼

https://brunch.co.kr/@hhy134/5


▼ 동생이 출가한 이야기 ▼

https://brunch.co.kr/@hhy134/8


매거진의 이전글 금수저, 녹여버렸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