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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디 Nov 17. 2023

학벌,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언니 이야기 | 고졸과 석사졸 자매의 대학학벌론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쩔수 없이 학벌 덕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생이 자퇴한다고 할 때, 뜯어 말리면서 말했다. 혜민스님도 하버드를 나왔다고. 나중에 책이라서 써서 팔려면 졸업장 정도는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 후에 혜민스님은 풀소유 논란이 되면서 나의 주장은 그만 힘을 잃고 말았다.


결국 동생은 연세대 경영을 4학년 1학기에 자퇴했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벌 없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나는 속세에서 두 발 단단히 붙이고 서서 석사까지 땄다. 학벌 무용론을 주장하는 동생과 정반대로 학벌과 학력을 둘 다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졸 동생과 석사졸 언니의 학벌에 관한 생각을 각자 풀어보려고 한다.


졸업한지도 어언 10년. 이젠 학교 사진만 봐도 아련해진다.




학벌의 좋은 점 하나,

학벌이 있으면 본인이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 서울대 나왔어, 나 삼성전자 출신이야"라고 하면 어련히 그 사람이 똑똑하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 실력은 별개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똑똑한 사람일 확률은 올라가는 것을 모두들 안다. 그만큼 학벌이 불리할수록 경력, 포트폴리오 등으로 나 자신을 증명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학벌을 이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수단이다.


이렇게 아껴진 시간은 곧 돈이다. 연봉 2400으로 시작해야할 사람이, 연봉 4800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연봉이 두 배 되는데 시간이 절약되는 셈이다.


게다가 시간은 복리 효과를 가지고 있다. 초봉 2400만원이 저축할 수 있는 자금과 4800만원이 저축할 수 있는 자금은 다르다. 두 배를 번다고 해서 두 배를 저축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 생활비는 고정비용으로 별반 차이 없다. 1년에 2000만원을 쓴다하면 초봉 2400인 사람은 400만원, 초봉 4800인 사람은 좀 더 넉넉히 2400만원을 쓴다해도 2400만원을 저축할 수 있다. 연봉은 2배 차이일뿐이지만, 저축하는 금액은 6배이다. 게다가 돈은 복리로 불어난다. 10년 뒤에는 6배가 아니라 60배가 되어 있을 수 있다.


나처럼 돈, 돈, 돈하는 사람한텐 학벌이 있으면 유리하다.




학벌의 좋은 점 둘,

소중한 친구들이 어느덧 '인맥'이 되어 있다.


학벌을 갖기 위해선 대부분 비슷한 무리들과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면 고등학교, 대학교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라온 가정환경조차 비슷한 경우가 많아 속내를 털어놓기에 편하다. 그렇게 심적으로도 가까운 친구들이 내가 필요로 할 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어느덧 사회에 진출해 한 자리씩 하고 있다. 누구는 변호사, 약사 같은 전문직 뿐만 아니라, 대기업, 외국계, 공무원, 선생님 등 사회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그저 멋모를 때 사귀었던 학창시절 친구들이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서로 도움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인맥'이 되어 있다는 것은 꽤 든든한 일이다. 내가 곤경에 처해있을 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기꺼이 도움을 줄 친구이 가까이 많다는 것은, 분명 학벌의 좋은 점 중 하나이다.




학벌이 좋은 점 셋,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세상에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몇 가지 직업은 빡빡한 자격 요건을 들이민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학벌이 좋을수록 유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벌이 좋으면 "쉬운" 직업부터 되기 "어려운" 직업까지 모두 할 수 있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꼬셨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 공부하면 된다고. 그럼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을거라고.


그 당시에는 꼬시려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현실도 그랬다. 외국어를 잘 하니, 교환학생도 쉽게 갈 수 있었고,어떤 업무나 해외출장도 무섭지 않다. 뒤늦게 대학원을 가고자 할 때 학부만 좋아도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사회생활 하면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학벌은 언제나 도움되었다.




나는 한때 학벌이 내 삶의 목적인 삶을 살았고, 비록 그 덕을 보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대학교만 좋으면 인생이 살기 편해지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래서 학벌은 한때 내 인생의 목적이나 다름 없었고, 난 학벌 지상주의로 자라났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학벌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나, 졸업한지 10년이 지나도록 내 이력서 최고의 스펙이 학벌이라면 소용없다. 학벌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성취한 것이 없다면 고시폐인과 다를게 무언가. 우리는 여전히, 노력해야 했다. 처음부터 학벌은 수단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덜 허무하지 않았을까?


둘, 친구들이 잘 나가면,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들 잘 나가는데 나만 뒤떨어지는 것 같을때 오는 우울감은 상당하다. 물론 이 열등감을 극복하면 더 큰 세상이 열리지만, 그 열등감을 극복하는데 상당히 큰 힘이 필요하다.


셋, 좋은 학교를 나오면 좀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시류에 휩쓸리는 작은 존재들이다. 로스쿨을 가면 변호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고, 의대를 나오면 의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누가 의사나 변호사의 사명감을 고등학교 때 "주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적에 맞춰 그저 주어진 길이 다인줄 알고 걸어갈 뿐이다.




학벌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내 동생이 존경스럽다. 탄탄대로라고 여겨지던 학벌사회에서, 이미 기득권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알을 깨고 나와버렸다. 누군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나도 이젠 안다. 학벌도, 부모도, 그 무엇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 취향, 내 감정, 내 욕구가 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밖에 없다.


결론: 학벌은, 그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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