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이야기 | 고졸과 석사졸 자매의 대학학벌론
이 글은 브런치북으로 엮기 위해 재업로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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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출장와서 13개국에서 모인 청년들과의 시간 마무리를 지었다. 함께 공부하고, 나누기하고, 발표하고, 그리고 틈만나면 춤추고, 노래하고.트랜스젠더, 젠더 플루이드, 게이, 힌두교, 무교, 불교, 개신교, 스님, 쿠테타로 잘린 망명온 교사, 교수, 사회활동가, 투자분석가, 환경 활동가 등 정말 다양한 배경에서 왔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출장 올 때는, 농사를 오랜만에 놓고 다른 일을 한다는 쉼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마친 지금은, 프로그램 이전의 나와 달라져있다.
오길 참 잘했다. 참 감사하다.
참가자 소개를 위한 자기 발표의 시간이 있었다. 대학을 때려치우고,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경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 경쟁 끝에 연세대라는 곳에 입학했지만, 경쟁은 평생 끝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한국 아이들, 학생들은 엄청나게 경쟁적인 환경에서 자란다. 자살율은 1만명에 24명, 출생율은 0.7명 - 둘 다 세계 1위(최고/최저). 뿐만 아니라 2위와 차이가 꽤 난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2위는 리투아니아로 18명, 최저 출생율 2위는 스페인 1.19명이다.
워크샵 참가국 중 출생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었다. OECD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봐도 최저 출산율 2위 국가는 말타 Malta 인데, 1.13명이다. 자살율이 이렇게 높다는 건 지금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다라는 거고, 출생율이 이렇게 낮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고 나는 해석한다.
경쟁사회에 대한 스트레스와 괴리감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이 스트레스를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고 있었다. 개인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문제임을 인지하게 됐다.
평생 그렇게 살 것이 아니라면 대안이 필요했다. 내 개인적 살 길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나아갈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 했기 때문에 대학 등교를 멈췄다.
일단 일시 정지.
다른 길,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했다.
한류의 영향 때문일까, '연대'라고 하자 청년들도 '오~'하며 연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내 발표를 듣고, 내가 대학을 어떻게 그만 둘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인 세계 청년들. 그들이 자란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아시아, 그 중에서도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렸던 대만, 싱가폴, 한국 등의 나라 참가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공감대가 높이 형성이 됐다.
더 높이, 더 많이 추구하는 사회의 흐름.
과연 이것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일까.
경쟁적인 사회에서 선두에 설 수 있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
우리 나라 대학 진학율은 2022년 기준 73.3%. 안 가는 사람 보다 대학을 가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 고등교육을 받는 인구 비율도 우리나라가 전세계 1위다.
고등학교 때 부터 알고 있었다. 로망했다. 이 세상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 법륜스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등 - 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 그들이 멋있었다. 대학 졸업장 따위 없이도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문제 없는 사람들. 하지만 다른 세계 이야기였다.
저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근데, 내가 대학을 감히 그만둘 수는 없지
그리고 핵심적으로, 내가 대학을 그만두면서까지 딱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세상의 흐름을 역류하면서까지 가고 싶은 길이 없었다. 부모님은, 주변 어른들은 어차피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일단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어쩌다보니 대학교 3학년이 됐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서 꼭 가보고 싶은 길을 만났다. 다름 아닌 수행자의 길. 책에서만, 영화에서만, 말로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났다. 진리를 추구하는 삶.
연세대 교훈은 유명한 문장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늘 자유를 갈망했다. 속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진리가 궁금했다. 진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학교 3년을 그냥 잠잠히 다닌 건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한만큼 대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놀러다녔다. 온갖 것을, 무언가를 했다. 대학교 가서는 전공 과목은 안 듣고, 철학과를 기웃거렸다. 해보고 싶은 연극부, 승마부, 학회, 배낭여행, 교환학생, 자취 등 다 해보았다. 나를 자유롭게 해줄 진리를 찾아서.
근데 우연히 한 계기로 마주하게 됐다.
진리를.
정말 단순했다.
"모든 괴로움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내가 겪는 속박은 다른 누가, 무언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죄는 것이다.'
이 말을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이다.
누구나 이 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냥 책 속의 이야기, 영화 소설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진리대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너무 귀했다. 이런 존재는 쉽게 만날 수 없다. 분명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놓칠 수 없었다.
그 길로, 100일 수행처에 들어가 살았다. 부족했다. 여전히 나는 괴로운 순간이 더 많았다. 행복한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괴로운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 100일 출가 끝에 1000일 더 공부를 해야 하나, 아니 평생 이 길을 가야 하나 선택의 순간이 왔다. 대학으로 돌아가서 졸업하고 돌아올 것인가, 쭉 수행을 이어나갈 것인가.
대학교는 1년만 하면 졸업장을 딸 수 있다. 그런데 그 1년이 아까웠다. 1년이라는 나의 귀한 시간. 1년 뒤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걸 찾았는데, 굳이 1년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1년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반면 1년을 투자하면 얻게 되는 것은, 졸업장.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 자체는 탐나지 않았다. 다만 졸업장이 걸렸다. 대다수가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는 세상, 그 중에서도 어느 정도 꿀리지 않는 브랜드의 졸업장. 이런 세파에 역류하려니, 엄청난 심리적 반대에 마주했다. 사실 그 누구의 반대도 아니었다. 가장 주저하게 만드는 반대는, 내 안의 불안감이었다.
내가 이 길을 선택했지만, 훗날 이 선택을 후회해 다른 길을 가고 싶을 때 졸업장은 나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안전망 없이 살 수 있을까. 졸업장은 내게 보험이었다.
'대학 졸업장'이라는 보험 없이 살 수 있을까
어렸을 부터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인생을 거는 사랑,
인생을 거는 삶의 방향성.
불나방처럼, 연탄재처럼 내 인생을 불사를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막상 다가오자,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훗날 이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면 어떻게 하나.'
근데 잘 살펴보니, 내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아무 선택도 못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지 않고 '아버지'에게 미뤘듯이. '대학 졸업장'에 내 '인생의 탄탄대로'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사실 졸업장 여부와 나의 행복과 인생을 사는 지혜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마치 졸업장이 있으면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지혜롭게 인생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자퇴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10년, 20년, 30년, 50년 후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 때 내 인생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해결이 되는 게 아닐까. 책임이라 하면,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겪는 패널티와 수모를 기꺼이 받을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대학 졸업장의 유무와 관계 없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지혜를 닦아 나간 것의 결과인 것이다.
과연 어떤 선택이 더 후회없는, 뿌듯한 선택일지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보험이라고 생각했던 대학 졸업장을 놓아보았다.
자유로워졌다.
역설적이게도, 이전보다 그리고 인생을 마주하는 데에 좀 더 당당해졌다.
고졸 주제에 말이다.
다만, 대학만 졸업하라던 가족들, 특히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이다. 당신의 요구를 못 받아드려서. 나의 1년이 너무 귀하게 여겨져서, 대학 졸업장만 따려고 보내기엔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건 평생 알고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