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BTS ‘봄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의 참사 소식이 전해진 후, 나는 한 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과, 그 아이를 포함한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겼을 노래 ‘봄날’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지하실에 같힌 아이>
오멜라스라는 곳이 있었다. 왕도 노예도 없고, 경찰도 폭력도 없는 안온한 도시였다. 사람들은 행복했고 풍요로웠다. 사려깊음, 조화, 평온, 아름다움, 축제…. 오멜라스는 그런 단어들로 설명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어느 건물 지하에 한 아이가 있었다. 공포에 질리고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한 아이다.
“ 그 작은 방 한쪽 구석에는 덩어리지고 엉긴 채 딱딱하게 굳어 악취를 풍기는 대걸레 두 자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녹슨 양동이 하나가 놓여 있다. 바닥은 지저분하고 습기가 차 축축한 것이 여느 지하실 창고와 다를 바 없다. … 태어나면서부터 그 지하실에서 갇혀 살지는 않았던 그 아이는 밝은 햇살과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으며, 이따금씩 말을 한다. “잘할게요! 절 내보내주세요. 잘할게요!” 사람들은 절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는 밤이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지 “으어어, 으어어” 하는 신음 소리만 낼 뿐이며 점차 말수가 줄어든다. 너무나 야윈 아이의 장딴지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는 불룩 튀어나왔다. 아이는 옥수수 가루와 기름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아이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곪은 상처로 가득하다. ”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중에서
놀라운 것은 오멜라스의 사람들이 그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지하실 구석에서 굶주리고 학대받아야만 오멜라스 사람들의 풍요와 행복이 보장될 수 있었다. 아이를 햇살이 비치는 바깥으로 데려나와 잘 먹이고 입힌다면 오멜라스 사람들이 누리던 것은 사라진다. 그것은 계약이었다.
“한 사람이 행복해질 기회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골방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다.”
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이 작품을 알게 되었다. 샌델은 이 작품을 인용하며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한 아이의 인권을 그렇게 유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찾아 읽으며 내 마음 속에서. 쿵 소리가 난 것은 마지막 부분 때문이었다. 아이를 본 청소년들 몇은 곧장, 어른들 몇은 하루이틀 생각에 잠긴 뒤 오멜라스를 떠나는 거였다. 아름다운 오멜라스의 관문을 지나 그들은 어디론가로 떠난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은 어디로 떠난 것일까.
* 작가는 오멜라스 Omelas는 도로 표지판을 거꾸로 읽은 거라 말한다. 'Salem Oregon' 살렘은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shalom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덧붙인다. ‘옴 엘라스!’아마도 homme alas (아아 사람). 어쩌면 이유없이 Luoes의 언덕배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보며 Luoes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BTS의 '봄날'을 듣는다. 그리고 뮤비를 함께 본다.
노래 속에는 '봄날'을 기다리는 '우리'가 있다. 내가, 또 우리가 그리워하는 '너', '너희'가 있다.
노래 속에는 아득한 눈발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 멀어지는 그 눈발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누군가 있다.
노래 속에는 온통 겨울뿐인 이곳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온통 겨울인 지구에서 봄을 기다리며 끝없이 달리는 설국열차가 있다.
그러면서 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 영원할 수 없다는
이 겨울도 끝이난다는
곧 데리러 간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 희망은 긴 안목에서 보면 희망이지만 순간순간 좌절이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봄날'과 함께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맞다. '봄날' 뮤비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곳곳에 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진의 모습, 아이들의 얼굴이 비치던 배의 창문과 닮은 세탁기의 유리문, 시계, 바닷가에서 운동화를 든 지민의 모습, 기차를 기다리는 뷔의 모습에서 나는 세월호 아이들을 보았다. 그것이 뮤비를 만든 BTS와 그 동료들의 의도에 딱 들어맞는지 어쩐지는 모른다.
나는 뮤비를 보며 오멜라스를 보았다. 기차가 지나는 길목의 역사인듯, 숙소인듯 omelas라는 전광판을 보았다. 'No vacancy'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소년들은 머물 수 없었고, 소년들이 가야할 길도 끝나지는 않았다. (아마 지하실 소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가 보다.)
뮤비의 첫 장면 일영 역이다. 일영 '해맞이'다. 그리고 기차가 향하는 곳은 포항과 의정부이다. 포항은 영일만에 있다. 해를 맞이하는 바닷가에.
소년들은 눈이 날리는, 그러나 봄물이 들어가는 나무가 서 있는 들판을 걸어간다. 그들은 겨울뿐인 지구에서 설국열차를 타고 가다가, 봄이 숨쉬는 걸 느끼고 열차를 내린 사람들일까? 오멜라스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인가?
나는 '봄날' 속 여러 목소리를 듣는다. 세월호 아이들을, 그들을 그리워하고 눈물 흘리는 우리들을, 지하실 속에 한 아이를 가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또 아파해야 할 일들을 본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어디로 떠난 것일까?
나는 나에게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friend? "
노래 링크- BTS '봄날'
https://www.youtube.com/watch?v=xEeFrLSkM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