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나는 경상북도에 있는 작은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버스도 다니지 않는 마을, 겹겹 산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었다. 기차도 그곳에선 서지 않았다. 비둘기호만이 하루에 단 두 번 그 마을의 역에 선다고 했다. (비둘기호는 이미 2000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우리나라 최하위 등급의 열차였다.)
나는 그 마을에 사는 한 소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지 산골의 학교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아는 분을 통해 그 마을 분교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가을 풍경이 정말 '쥑인다'는 어느 선생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곳까지 가는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11월 초순의 가을 풍경은 내 넋을 빼앗아갔다.
저녁 무렵 마을에 도착했을 때 드문드문 두어 채 집에서 솟아오르던 푸른 연기와 어슴프레 짙어가는 하늘, 붉게 물든 산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작은 분교에는 분교장 선생님, 그리고 웃음이 아름답고 눈이 맑은 총각 선생님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11명이었다.
같이 간 두 명의 일행과 함께 총각 선생님의 방에서 비좁게 하룻밤을 보내며 이야기꽃을 피웠던 일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의 방에는 전지에 붓글씨로 쓴 성내운 선생의 시 ‘민중’이 붙어 있었다.
그렇다. 얼마나 치열하던 시절이었던가. 분교에서 열한 명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 깊은 산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더불어 사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자 했던 사람이다. 동료 교사들과 모여 교육이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했던 사람이다. 눈 맑은 선생님이 벽에 붙여놓았던 시의 저자 성내운 선생은 유신교육을 비판하다가 강단에서 쫓겨나고 온갖 고초를 겪은 뒤 잠시 복직했으나, 80년 광주항쟁 직후 또 해직되어 89년 세상을 뜬 분이다.
총각 선생님의 맑은 눈빛과 아름다운 웃음 뒤에는 치열한 젊음의 저항 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20대 중반 젊은 나이에 오지마을에서 겪는 외로움도 있었다.
그날 그 작은 방에서 몇 사람 사이에 끼어 자면서 나는 총각 선생님을 연모하는 어느 시골 처녀 이야기, 또는 오지의 연인을 그리워하면서도 세속적 현실을 택하는 도시 처녀 이야기, 동료 교사들과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논하고, 개혁의 길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그러다 의식화 교육이니 편향된 교육이니 하는 말을 들으며 고초를 겪는 이야기 등을 썼다 지우고 다시 쓰곤 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의 한 자락을 떠올린 것도 그때였다. 주인공 고다니 선생이 아름다운 눈동자의 선재동자를 보며 생각하는 대목이다. ‘저항하는 인간은 아름답다’고, 왜 선재동자가 아름다운지 알겠노라고.
산으로 둘러싸인 그 마을... 아름다움으로 둘러싸인 그 마을에서 나는 산 너머를 꿈꾸는 산골 아이들을 만났다. 겨울이면 무릎까지 덮인 눈길을 뛰어 토끼를 잡고, 여름이면 계곡물에서 가재를 잡는다는 아이들. 1시간 넘는 산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아름다웠다. 산은 아름다웠고, 아이들은 자연 속에 동화되어 까르르 웃으며 살고 있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도시로 도시로 떠나 비어가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가난했다.
아름다움 뒤에 외로움이 있었고, 힘겨운 삶이 있었고, 그리움이 있었다.
서지 않고 달리던 기차는 그 아이들의 꿈을 실어 나르는 꿈의 기관차였을까.
예민의 노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그 때 만났던 선생님, 아이들, 도시로 전학 간 친구를 그리워하던 소년을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소년은 이제 40대 장년이 되어 있겠지. 눈 맑은 선생님은 60 언저리 노년이 되어 있겠지.
노래 링크-예민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PT9s8BiTXw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