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러지셨다, 그리고

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1

by 작은노래

그때 엄마는 여든여덟이셨다.


그 전까지 엄마가 앞으로도 한참 동안 건강하실 거라는 착각, 또는 자기 위안 속에서 나는 무심했었다.

병원도 혼자 가시고, 지방에 사는 동생 집에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오시는 엄마는 강인하고 독립적이셨다. 그렇게 느꼈다.


언제쯤부터 전화를 자주 하셨다. 몇 시간 전에 전화를 하셨는데 또 하신 날도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데 얼마 뒤 또 하셨다. 나이 드셨으니 그거야 기본이지 스스로 위로하며 그냥 넘어갔다.


어느날..직장으로 동생이 전화를 했다.

"엄마 쓰러지셨어."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거였다.

처음에는 중환자실, 그리고 재활치료를 겸한 일반실...

처음에는 거의 못 걸으시다가,

화장실 정도 가시게 되었다가,

보행보조기를 잡고 조금씩 걸으셨다.

두 달여 병원 생활을 마치고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조금씩 걷게 되셨다.

그때 엄마는 여든여덟 살이셨다.


그때 이후 엄마의 시간과 공간 감각도 조금씩 무뎌져갔다.

현재의 기억은 축적되지 않았다. 강한 인상과 자극이 있다면 조금 지속되긴 했지만 또 사라져 갔다.

예전의 기억들은 아직 살아있지만 일부는 사라졌고, 현재에서 가까운 시간부터 조금씩 사라져갔다.

보행력도 조금씩 조금씩 약해져 갔다.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얘, 우리 아버지 어떻게 되셨니?"

"엄마,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어. 나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 살아계시면 백이십 살쯤 되시겠네."

잊었던 슬픔이 엄마에게 밀려온 듯했다.

"그래? 난 근데 왜 하나도 생각이 안 나니?"

"엄마가 뇌를 다쳤거든. 뇌 속에의 어느 한 고리가 끊어진 거야. 그래서 혼자 서고, 걷는 게 좀 불안해. 기억이 잘 안나는 일도 있고."


엄마의 병은 뇌경색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이다.

가끔 동네 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가서 엄마 상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어줍잖지만 영어를 섞어 쓴다. 엄마 앞에서 치매라고 말할 수 없어서다.

엄마는 혈관성 디멘시아를 앓고 계세요라고.


엄마가 쓰러진 날 이후, 난 엄마가 한참 동안 건강하실 거라고 믿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나의 무관심을 아주 아프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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