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4
-지금 저녁 때냐?
-네
-이렇게 하루하루 살면 난 어떡하냐?
어느날 잠깐 주무셨다가 깬 엄마는 어둑어둑해져오는 창문을 보며 물으셨다. 저녁 때냐고, 그렇다고 하니 잠시 침묵하셨다. 지금이 어느 해, 어느 계절인지, 어느 달인지, 며칠 인지 시간 감각이 이제 거의 없어지신 것이다. 잠시 침묵 뒤 엄마는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면 난 어떡하냐?"
그렇다. 엄마는 지남력이 저하되신 거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저하될 터였다.
지남력 (指南力)은 시간과 공간, 상황 등을 인지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 중국에서는 늘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 (지남거)로 방향을 가늠했다고 한다. 지남철이란 단어도 생각난다. 자기장의 방향을 알아내는 자석이 지남철이다.
엄마의 나침반이 고장난 것이다.
우리집에 며칠 계시다가 막내동생 집에 가셨을 때,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안방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고 했다. 저 문좀 열어보라며. 문을 열자 보이는 방안 풍경. 엄마는 나중에 그러셨다.
"문을 열면 너네집하고 통하는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집 거실 소파에 앉으면 안방 문이 보인다. 오른쪽이 부엌이다. 동생 집도 그랬다. 기억 속에 남은 우리집의 모습이 겹쳐져 저 방문을 열면 우리집이 나올 거라는 기발한 상상을 하셨다. 서울과 홍천이라는 거리는 엄마 상상 속에서 순간 이동하듯 겹쳐진 거였다.
그 이후 그처럼 기발한 상상을 자주 하시진 않지만.
엄마의 나침반은 고장난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면 어떡하냐는 엄마의 그 말씀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면 난 어떡하냐는 엄마의 말씀 속에는 지남력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자각과 그로인한 충격과 실망, 아니 절망감일 지도 모를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 나는 그런 엄마를 하루하루 지켜봐야 하는구나. 어떡하냐? 하는 물음이 내 안에도 싹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엄마의 그 말씀은 엄마의 지남력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지남력을 잃어가는 자신에 대한 자각,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자각... 그보다 뚜렷한 지남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또 그러나
잃어가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엄마는 슬펐던 것이다.
프랑스 작가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소설을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 그 작품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시작한다. 2차 대전을 겪고 얼마 지난 후 기억을 상실한 한 남자가 사진 한장을 시작으로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가고, 그것을 맞춰간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기억들, 아픈 기억들을 찾는다.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아픈 기억이지만 기억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엄마의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럼 엄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가?
나는 나를 위로한다. 엄마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그 기억들이 존재하는 한 엄마는 '그 무엇인 사람'이다.
"엄마, 하루를 즐겁게 살면 돼요. 엄마 이 순간을 살면 되는 거야. 또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면 돼, 엄마가 잊어버린 것 내가 다시 말씀 드릴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