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5
"거기에 정**가 있어. 아침마다 차 운전해서 데리러 오잖아."
어느 날 데이케어에서 돌아오셔서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어? 무슨 말씀이지? 예전 우리 동네 살던 사람인데... 엄마랑 같은 교회를 다녔고... 어느 회사 임원이라는 이야기 들은 것 같은데.. 은퇴해서 데이케어센터 운전기사를 하는 건가?
"엄마, 운전하는 선생님은 40대밖에 안된 것 같던데... 정**씨는 언니보다 나이가 많아, 60대야."
엄마는 그 사람이 맞다고 주장하신다.
아, 닮았구나. 약간 긴 얼굴에 안경을 쓴 모습이 정** 씨를 닮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분한테 직접 당신이 정** 맞냐고 묻지 않으신다. 대면할 때는 그냥 데이케어 선생님이다. 그러나 우리한테 이야기하실 때는 다른 사람 정** 씨다.
데이케어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예전에 알던 그 누구라고 마음 한 구석에 상상하면서 낯선 환경 속에서 위로를 받으시는 건지도 몰랐다.
한 번은 데이케어 센터에 예전 다니던 노인정 회장님도 나오신다고 했다.
"와 그거 참 신기하네. 그분도 이쪽으로 이사하신 거야?"
"그런가 봐."
이상했다. 예전에 노인정 이야기 들을 때면 그곳 할아버지, 할머니들하고 친하게 지내신 것 같은데... 센터에 나오신다는 그 회장님 이여기를 할 때는 그냥 멀찌감치 지켜보시는 듯 말씀하신다.
나중에 동생한테 물었다. 노인정 회장하시던 ** 할아버님이 이쪽으로 이사오셨는지?
"무슨 소리야. 그 분 돌아가셨어, 엄마가 아프기 전에."
마음이 서늘했다.
엄마가 데이케어 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예전 우리 앞집 살던 ** 엄마도 있었다. 나는 또 긴가민가했다. 엄마보다 조금 나이가 적긴 하지만 그 분도 데이케어에 올 만한 나이였다. 아, 그 꼿꼿하고 성깔 있던 ** 엄마가 데이케어 올 만한 장애노인이 되었단 말인가?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 전화를 해 봤다. 그분 이름을 대며 물어봤지만 그 성을 가진 사람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사촌동생의 처가 그곳에서 배식하는 일을 한다는 말씀은 그냥 웃으며 넘기게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 기억 속의 사람들을 데이케어에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셨다. 물론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닌 근거를 대며 말씀드리면 그러냐고 수긍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노인정 할아버지나 앞집 **엄마 이야기는 굳이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흐르자 그 말씀을 하신 기억도 희미해졌으니까.
실제로 데이케어에서 만나는 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남는 분은 쭈꾸미 할머니다. 말씀을 재밌게 하시는 할머니였다보다.
"그 사람 동네에 쭈꾸미가 많이 나나봐. 쭈꾸미 많이 잡아서 돈 벌었대. 주꾸미 식당도 했다는데, 손님이 아주 많았대. 차 타고 올때, 그 사람은 나 내리고 더 가니까, 바닷가 쪽 마을이겠지."
엄마, 쭈꾸미 잡는 바닷가 마을로 가려면 차 타고 두 시간은 가야겠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쭈꾸미 할머니 이야기를 신나게 듣고, 또 나한테 재미나게 말씀해 주시는 그 시간은 너무 귀했다.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그 만남이 생활에 활기를 주니 그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가끔 쭈꾸미 볶음을 엄마 밥상에 올리고, 쭈꾸미 할머니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쭈꾸미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엄마가 전해준 이야기)
'우리 마을이 경치도 너무 좋아. 바닷가가 길게 이어져 있고, 새벽이면 쭈꾸미 배들이 바다로 나가는 거야. 배에 가득 쭈꾸미를 싣고 오면 식당하는 사람들이 가서 큰 다라로 사 가지고 오고... 우리도 배가 있는데 돈 많이 벌었어.'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고, 추억은 현실 속에서 살아난다
상상과 실제가 뒤범벅되고, 또 만나는 이의 추억과 현실이 섞인 만남들이지만 엄마의 만남은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만남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은 엄마의 기억과 감정이 뛰고 있다는 신호였으니까.
시간은 흘러 엄마는 데이케어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신다. 말씀도 적어지고, 기억도 더 흐려진다. 엄마의 사회 생활은 점점 축소된다. 어쩌다 화요일에 오는 강사 선생님이 재밌다거나, 엿장수처럼 가위를 철걱거리며 공연한 사람들이 와서 흥겨웠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다. 반갑다. 엄마가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을 만나 교류한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