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6
5년이 흘렀구나!
뇌경색으로 2개월의 병원 생활 후 엄마는 홍천 막냇동생 집으로 가셨다. 거기서 3개월 가까이 머무셨다. 가끔 홍천에서 며칠씩 머문 적이 있지만 그야말로 잠시 머무는 거였는데 3개월은 엄마에게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몸은 이전과 달라졌으며, 생각의 고리들도 부분 부분 손상되었으니.
엄마는 온전한 기억에서 버려졌다.
엄마는 건강한 몸과 정신의 일부분을 잃었다.
엄마는 왜 당신이 서울집이 아닌 홍천에 머무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우리 집으로 오셨다. 큰동생이 이사를 하고 집이 정리될 때까지 잠시 머무르실 터였다. 이제 곧 당신이 살던 집으로 갈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오랜만에 만난 딸이 반가워서였는지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길게 이어갔다.
"홍천 방 침대에 누우면 산등성이가 보여.
어슴푸레한 새벽빛 속에서
산등성이 모습이 드러나면
나는 한없이 그걸 바라보면서 생각했지.
뭔가를 찾고 있는데 그게 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산등성이를 바라보면서 한없이 생각을 이어갔어. "
어? 아! 나는 독백하듯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며 깜짝 놀랐다. 엄마는 시인이 되신 걸까? 엄마의 말에는 운율이 담겨 있었다.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엄마에게 나오는 이야기 이야기가 그냥 시 같았다.
"기억들이 떠올랐어.
S동 살 때 쌀독이 비어가던 일
가장 가슴 아파.
쌀독에 쌀을 가득 부어 놓으면
독에 구멍이 난 것처럼 술술술술 줄었어.
쌀이 술술 빠져나가듯, 조바심이 나고....
그 기억이 떠오르면 또 창문밖을 바라봤지.
구불구불한 산등성이를 따라서 옛날 시간들을 돌아봤지....."
엄마 눈에는 슬픔이 고이는 것 같았다. 이어지지 않는 기억들을 맞춰가며 엄마는 이전의 시간들을 살았고,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엄마가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생활을 꾸려가던 S동 시절. 우리 4남매에 할머니, 도움을 줘야 하는 친척들... 먹을 입이 (식구가) 10명이 넘었다. 성장기의 우리 형제들은 밥에 김치만 있어도 엄청나게 먹어댔다. 주변에 살던 친척들도 가끔씩 입을 보탰다. 엄마의 타는 속도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친척 어른들을 불러 함께 술도 마시고, 식사도 대접했다.
어느 날, 엄마가 밀가루 한 포대를 사 놓으셨다. 그 후 하루 한 끼는 밀가루 음식이었다. 그렇게라도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한 거였다.
어린 우리는 살림의 어려움도 몰랐고, 경제 관념도 없었다. 우린 별 어려움 없이 학교에 다녔다. 자주 먹는 수제비가 좀 싫었을 뿐. 그러나 엄마는 온몸으로 생활의 무게를 짊어졌기에 그 시절이 힘겨웠고, 두려웠던 것이다.
시는 마음 속 깊은 곳 설움과 그리움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생각의 고리가 끊어져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들 중 가장 먼저 솟아올라 엄마 가슴을 아리게 만든 것은 힘든 시절이었으니....
엄마는 그 이후 한참 동안 쌀독이 비어갈 때면 가슴이 너무 쓰렸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그 아픔을 시처럼 한참 풀어내신 다음에 그 일을 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