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마음의 건반을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장필순, 한동준 '내 마음의 풍금'

by 작은노래


어느날 문득 그리움처럼

봄날의 향기 파고드네


어둠에 묻힌 내 맘의 풍금

잠에서 깨어 울려 오네


'내 마음의 풍금' 한 부분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은 아이들 자리 배치를 이상한 방법으로 하시곤 했다. 한 가지는 가장 공부 못하는 애들을 순서대로 앞 자리에, 잘하는 애들을 또 순서대로 맨 뒷자리에 앉히는 거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잘 하는 애들을 한 줄로 길게 그리고 공부 못하는 애들을 잘하는 아이 옆 자리에 한 줄로 죽 앉히는 그런 식이었다. 길게 앉힐 경우에는 키가 고려되기도 했다. 그 선생님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못하는 아이들의 멘토가 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분 나름대로는 획기적이며, 교육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앉는 게 얼마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지 또는 그릇된 우월감을 심어줄 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섬뜩하고, 끔찍하다.)


나는 공부 잘 하는 축에 들었다. 뒷자리에 앉았을 때는 공부 잘하는 몇몇 아이들과 '작은 책'이라는 걸 만들어 바꿔보곤 했다. 그 '작은 책'은 A4용지를 두 번쯤 접은 크기로 책처럼 만든 거였는데 거기엔 우리의 '창작 동화'를 담았다. 선과 악의 싸움이며 공주 이야기 등을 쓰면서 나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의 사귐은 '작은 책'의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어떤 아이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거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어린 내 마음에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남긴 아이는 길게 앉았을 때의 내 짝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 짝은 꼴찌였던 것 같다. 나는 키가 작아 잘 하는 줄의 맨 앞에 앉았고 내 짝은 못하는 줄의 맨 앞이었다. 그 애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고 얼굴은 무척 귀여웠다.


그때 학교 뒤쪽으로 '천막동'이라 불리는 달동네가 있었다. 정말 천막처럼 허름한 무허가 집들이 닥지닥지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 내 짝은 천막동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내 짝과 잘 지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지만 그 애에게 약간의 연민을 갖고 있었다. 자그마한 얼굴은 늘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옷은 남루했고, 수업 시간에 딴청을 부리는 것도 아닌데 늘 꼴찌라니. 어린 나는 동화책을 읽으며 세상의 나약한 존재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선하고 상냥한 삶, 올바른 삶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우리 줄 아이들에게 짝을 공부시키라고 하면 나는 그 아이가 쉽게 풀 수 있도록 힌트를 주어가면서 문제를 내곤 했다. 못 한다고 면박을 주거나, 잘난 척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아무튼 첫 음절을 반복하거나 연상할 수 잇는 이야기를 해서 그 아이가 자존심 덜 상하고 답을 맞출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게 나의 배려라면 배려였다.

그 애와 관련된 일들 중 명확하게 기억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랑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지 나를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 애의 귀여운 얼굴이 희미한 기억 속에 스쳐지나가고 조금은 주눅들어 있는 그 아이의 표정과 몸짓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느 날, 어린 내 마음을 그 애가 정말 아프게 만들었다. 정말 아프게.....

겨울이었다. 졸업 직전이었거나 졸업을 얼마 앞둔 어느 날이었을 거다. 내 짝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거 해. 실이 모자라서 작게 떴어."

아아... 그것은 털실로 뜬 마스크였다. 그 애가 직접 뜬 거였다. 약간 어두운 옥색의 털실 마스크! 몇 번이고 옷을 짜 입고, 풀고 했던 낡은 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스크는 정말 작았다. 내 코와 입을 겨우 가릴 수 있는 작은 거였다. 그 시절 난 꺼떡하면 감기에 걸리곤 했었다.


그 작은 마스크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를 향한 그 아이의 마음. 그 아이가 나에게 받았던 작은 위안……. 감기 걸려 콜록대는 짝을 그 아이는 유심히 바라보았겠지.


"아하.. 귀엽다. 마스크가."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는다. 난 약간 쑥스러웠고, 왠지 마음이 아파졌고, 그 아이가 너무나 좋았고, 많이 슬펐던 것 같다. (지금 그 장면이 시큰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그 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또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난 내 짝의 이름도 그 시간들도 하나씩 잊어갔다. 그러나 마스크를 받을 때의 그 깊은 감동은 이렇게 선명하다.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그 아이와의 추억이 피어난 것은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기를 거치고, 젊은 시절도 지나간 어느 날 뒤늦게 그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서로 이어지지 못한 애틋한 사랑의 사연, 그리고 정겨운 풍경들, 시골초등학교 모습과 함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추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 친구도…


내 마음 속 깊이 잠자고 있는 추억의 페달을 밟은 영화.

내 마음 속 그윽이 내려앉았던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노래.

그 누군가 내 마음 풍금의 페달을 밟고, 내 풍금의 건반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선율 속에서 마스크를 건네던, 가난하고 우둔한, 그러나 사랑스럽고 슬프던 그 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필순, 한동준 노래 '내 마음의 풍금

https://www.youtube.com/watch?v=CSfmk1MXT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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