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간장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사노라면'

by 작은노래



반 친구 A의 집을 찾아가는 내 마음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자퇴서 용지에 도장을 받아오라니…. 이걸 어찌 내밀지? 그 애 얼굴은 어떻게 변할까? 나는 그 애 옆집에 산다는옆 반 아이 K와 함께 무겁게 무겁게 하교길을 걷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다. 오랫동안 결석을 하고, 등록금도 안 내고, 연락도 없던 K의 집을 내가 가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자퇴서 용지를 주며 부모님 도장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겁을 주려는 거였는지 진짜 자퇴를 시키려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중학교 1학년에게 그 심부름은 너무나 무거웠다.


나는 아이들에게 묻고 물어 K가 A와 한 동네 산다는 걸 알았다. K와 A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막 넘어가는 그 동네 산 기슭에 살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한 정류장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애들의 집은 경기도 주소였다. (그런데 인생은 참 묘하다. 서울 집을 팔고 무주택자로 살다가 집값이 치솟아버렸다. 깜짝 놀라 예산에 맞는 집을 구하다 보니 K가 살던 그 동네, 지금은 아파트 촌이 된 그 동네다. K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여기야."

막바지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간 곳에 두 채의 집이 나란히 있었다.

"아!'

낮은 신음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겉으로 내뱉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리 잘 살지는 않았지만 난 그런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가끔 보았던 우리 동네의 천막동(달동네) 집들보다 더 허름해 보였다. 흙집이었다. 흙을 찍어 만든 흙벽돌을 쌓아 얼기설기 만든 집이었다. 바깥에서 흙벽돌 틈새로 안이 조금씩 보일 것도 같았다.


A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도 A도 없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K집으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A는 그때 가출 상태였고 남학생들이랑 어울려 다닌다고도 했다. K는 그래도 A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똑똑해서 집안에 일이 있을 때 심부름 다닌 이야기 했던 게 기억난다.


6교시나 7교시를 마치고 갔을 테니 거의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13살 성장기니 한참 먹을 때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만큼 배가 고팠을 것이다. K는 내 시장기를 눈치챘는지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라면 괜찮지?"라고 물으며….


빨리 집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나는 엉거주춤 K의 집에 눌러 앉고 말았다. 얼마 뒤에 언덕 아래 가게에 갔다온 K는 라면을 끓여왔다. 한 개였다. 역시 엉거주춤 그 라면을 나 혼자 먹었다. 왜 너는 안 먹느냐고 K에게 물었다. K는 뭐라 변명하며 먹지 않았다. 점심을 많이 먹어 배 부르다고 했던가.


차라리 라면만 주었다면 이토록 긴 세월 동안 그날의 저녁 대접이 기억나지는 않았을 텐데…. 라면과 함께 나온 반찬은 간장 한 종지였다. 신문지로 도배를 한 흙집 단칸방에 앉아 그리 편한 상태가 아니면서도 나는 라면을 먹었다.

자기 집에 들린 친구를 위해 허겁지겁 가게로 달려가 라면을 사다가 끓여, 간장 한 종지를 반찬으로 올려준 그애의 마음을 나는 조금은 머쓱해하며 받았던 듯하다.


못사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긴 하나, 또 우리집도 그리 부자는 아니었지만 간장 한 종지는 내게 꽤 충격이었다.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김치만큼은 풍성했고, 김치 한 가지밖에 없을 때는 달걀이라도 부쳐 먹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중1의 나는 꼭 그러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라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먹고 K의 집을 나섰다. K에 얽힌 추억 첫 번째이다.


며칠 뒤 또 A의 집을 가야했다. 또 자퇴서 심부름이었다. 그때는 집을 알기 때문에 혼자 갔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담임 선생님이 참 원망스럽고, 그런 일을 학생에게 시키던 그 시절도 원망스럽다. 나중에 교사가 되었던 나도 지금 생각하면 야만스런 일들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역시 A의 집은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바로 옆에 있는 K집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그 이야기는 내 뺨을 붉어지게 했고, 나를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만들고야 말았다.

K가 엄마에게 돈 달라고 조르는 소리였다. 며칠 전 라면 외상값 갚아야 한다고…. 친구가 왔었는데 먹을 게 없어서 라면 외상으로 사다가 끓여줬다고…. 빨리 돈 줘, 빨리…. 가게 아저씨가 나만 보면 돈 달라고 한단 말이야….

울 듯이 조르는 K의 목소리와 뭔가 나무라는 K어머니의 목소리.


아아, 그 뒤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도망치듯 그 언덕을 내려왔겠지. 큰 빚을 진 듯한 느낌만이 생생하다. K에 얽힌 두 번째 아픈 추억이다.


내가 자퇴서를 받으러 갔던 A는 한참 학교에 나오지 않다가 다른 경로를 통해 학교를 자퇴했고, K와는 가끔 학교에서 마주치며 나머지 중학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졸업 후 나는 세 번째로 K에 얽힌 추억을 갖게 되었다.


중학 졸업 후 나는 이른바 전통 있는 명문 여고라는 L여고에 진학했다. 무시험이었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똑똑해서 거기 간 듯 대접을 해주곤 했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은 내 교표에 눈길을 보냈다. (시험으로 진학했던 이전 선배들은 우월감을 가졌을 듯도 하다) 주변의 이름 없는 고교 또는 실업고로 진학한 친구들은 내 행운을 부러워했고 자신들의 운 없음을 한탄(?)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나? 버스를 탔는데 뒷자리에 K가 있었다. 어? 나는 뒷자리의 K에게 다가갔다. 그 날의 만남, 그 비껴가는 느낌.

K는 진학하지 못했다.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었다. 몸집 작은 아이가 어른처럼 꾸미고 있었다. 흘끔 내 교표를 보는 K. 어색한 순간, 자랑스럽던(?) 나의 교표가 부담스러운 순간, 뭐라 말을 잇기 힘든 순간이었다. 뭐라 겉도는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허겁지겁 내가 내릴 곳에서 내렸다. K는 한 정류장 더 갔겠지.


나는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흙벽집과 라면, 간장 종지, 교복을 바라보던 K의 모습이 보였다. 어룽지며 흐릿하게.


대학생이 되어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를 알았다. 노래를 부를 때 떠오르는 얼굴은 K였다. 그리고 얼굴은 잊었지만 A도 생각했었다.


노래 링크: 전인권 ‘사노라면’ https://www.youtube.com/watch?v=-uOF4F9ymng&list=RDq8ZpRhfDGsU&inde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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