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한영애 '여울목'
한영애의 '여울목'을 듣는다. 영혼으로 노래한다는 표현이 그에게 들어맞는 말인가? 노래의 선율이 여울처럼 흐를 때 나의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가족과 일 사이에서 동동거리던 시절, 열정 가득했던 젊은 시절,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던 20대 초반, 감성으로 가득했던 고교시절, 껍질을 벗으려 웅크리고 뒤틀리던 중학 시절,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던 초등학교 시절…. 순간 순간 내 삶의 물결은 여울목을 만나고 그때마다 울음소리처럼 물살의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헤아리던 나는 문득 한 아이의 영특한 그러나 비굴한, 그래서 슬픈 눈을 만난다.
영주라고 하자. 그 아이의 이름을. 초등학교 몇 학년인가? 5학년이나 6학년이라고 해 두자. 그애는 1학기에 나랑 가장 친했다. 눈망울은 초롱초롱했다. 꾀가 많고, 총명한 눈이었다. 발표력도 좋았다. 그 애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 애에게 끌려 친해졌다. 나랑 가까운 자리에 앉았던 것도 친해진 이유였다.
나는 그때 선생님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던 아이였다. 반항적 기질이란 전혀 없는 온순한 아이에다, 체구는 작았으며, 공부는 그런대로 했고, 엄마는 선생님이셨다. 그 당시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담임 선생님은 나를 편애했다. 아니,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다. 위에 열거한 것들이 편애의 이유였을 것이다.
가끔씩 난 그애 영주는 선생님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 친구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의도했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그랬는지 모른다.
한 두달이 지나고 아이들이 새로운 학년에 익숙해질 즈음 돈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이 생겼다. 잊을 만하면 또 그런 일이 생기고, 이제 사라졌나 하면 또 그런 일이 생겼다.
도난 사건이 날 때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책상에 엎드리라고 했다. 두 팔은 책상 위에 놓고 그 사이에 고개를 넣어 앞도, 옆도 보지 못하게 했다.
“자, 모두에게 비밀로 할 거야.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선생님만 알고 용서해 줄 테니 가져간 사람은 손가락 하나를 살짝 들어봐.”
"물건을 가져가면 그 주변에 지문이 남거든. 그걸 검사할 지도 몰라."
"경찰에 연락을 해서 조사하라고 해야겠구나."
" 특별한 약이 있거든. 그걸 바르면 도둑질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어."
반신반의하며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가져가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가락이 근질근질했다. 참 지겹도록 돈을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누군가 학교에 낼 돈을 가져왔는데 잃어버려서 또 명상과 손들기와 소지품 검사 등이 이어질 판이었다. 모두 눈을 감고 엎드리고 있는데 영주가 '앗'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사건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영주는 자기 앞의 옆쯤 되는 아이 책상 밑에서 무슨 봉투를 발견하고 그걸 가리킨 거였다. 거의 앞자리였기 때문에 선생님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훔쳐간 아이는 소지품 검사가 시작되려 하자 봉투를 떨어뜨린 거였다.
봉투가 발견된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그 증거 때문에 누가 보아도 명백한 범인이었다. 그 애는 오랜 심문과 추궁의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 애 엄마가 왔던 기억도 난다. 선생님과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했다. 아이는 안 가져갔다는데 왜 범인라고 하시냐, 난 그렇게 안 키웠다. 어머니, 반 아이들이 모두 있는데서 그 봉투가 나왔어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방과후 어쩌다 남아 있던 나는 복도에 서서 그런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사건이 어떻게 풀려나갔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반 아이들 대부분이 그 아이가 범인임을 확신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교실은 조용했다. 그리고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주와 나의 사이도 뜸해졌다. 나는 영주의 영악스런 모습에 염증을 느꼈고, 반의 주류라 할 만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됐던가 보다.
얼마 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선생님이 통장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고, 범인이 그때 그 아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영주가 결석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불러 영주네 집을 찾아 가자고 하셨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내가 영주네 집을 알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 애가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간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선생님과 함께 영주 집을 찾아갔다. 영주는 없었고 영주 어머니만 계셨다. 선생님과 영주 엄마의 언성이 조금 높아지다가 잦아졌다.
나는 문밖에서 사태의 전말을 꿰어 맞추면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영주였다!
그 숱한 도난 사고의 범인은 영주였다. 다른 아이 책상 밑으로 봉투를 슬쩍 발로 밀어 범인으로 몬 것도 그 애였고, 크고 작은 도둑질도, 선생님 가방에 손을 댄 것도 그 애였다.
영주의 엄마가 새엄마라는 것도 그때 알아버렸다.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일인데도 새엄마는 딸을 탓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맨처음 도둑으로 몰렸던 아이의 엄마와는 사뭇 달랐다.
선생님이 나를 그 집에 데려가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때도 내가 영주랑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셔서 이 모든 사실을 알아두라 하고 데려가신 걸까? 행여라도 가정방문에서 빚어질 오해 때문에 그러신 거였을까? 사려 깊지 못해서였을까?
아무튼 나는 아주 어두워진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애들에게 아무 말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소문은 스물스물 기어나와 아이들에게서 영주를 멀어지게 했다. 영주도 아이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나와 친했던 시절, 아득바득 말다툼도 잘하고 자기주장도 잘하고 밝아보였던 영주가, 그 이후 어둡고 초라해졌다는 것만 기억난다. 나는 거의 그 애를 모른 체했고, 그 애는 별로 어울리는 아이 없이 그 해의 나머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학년이 올라서는 또 어떻게 지냈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의 성장기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서일까? 그 시절 여러 가지 일들이 잘 맞춰지지 않는 퍼즐로 남게 된다.
한동안 나는 그 애를 잊어버렸고, 별 뒷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그 애가 떠오르면 봉투를 밀어 남에게 누명을 씌운 영악한 아이를 생각했다.
그런데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저녁 집에 없던 영주를 생각한다. 새엄마와 살면서 그 애가 느낀 결핍감을 생각한다. 그 애가 범인이라는 걸 안 순간 참 오싹했지만 그 애가 새엄마와 뒤틀린 삶을 살고 있음을 안 순간 내 안에 바람이 일었었던 걸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아득했던 그 시간.
영주에겐 분명 여울목이었다. 그 애의 초롱한 눈은 그 시점에서부터 비굴해졌다. 그 순간부터 그 애는 비루한 이름을 쓰고, 초라해져서 교실 한 귀퉁이에 웅크린 것이다.
내게도 그 시간이 거칠게 물살 흐르는 여울목이었다. 위협, 도난, 거짓, 힘겨운 가정사, 어른의 사려깊지 못함... 평탄하지 못한 물길을 넘어야했던 시기였다. 사춘기의 문턱에서...
난 어찌했어야 하나? 영주를 어찌 대했어야 하나? 지금이라면 조금 다르게 풀어갈 일... 그때 나는 외롭고 비굴하게 눈치보는 한 아이를 외면하며 그 시절을 지났다.
오늘 나는 툭! 한 방울 눈물을 오래 전 그 친구를 위해 떨구고 만다.
한영애 '여울목'
노래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gWBStkYWug